청우헌수필

당신이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이청산 2020. 10. 20. 14:59

당신이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8회 구미낭송가협회 시낭송 콘서트를 마치고

 

  코로나가 오래도록 세상 곳곳이며 삶의 여러 가지 일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짓뭉개기까지 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 낭송 콘서트를 앞둔 우리의 일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해마다 해내던 일 앞에서 절망하기는 더 고통스러웠다.  

연습할 장소를 얻지 못해 어느 강변 누대 아래의 그늘을 찾기도 하고, 공공시설의 야외공연장을 이용하기도 하고, 어느 회원은 집 거실이며 사무실까지 내놓아야 했다. 그런 곳이라고 마냥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스크를 끼는 것이며, ‘사회적 거리 두기등의 과제를 비켜 갈 수는 없었다.

  주제를 정하는 일에도 여느 해와는 다른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코로나 시국에 무엇을 주제로 해야 위안과 용기를 얻기도 하고, 그런 것을 남에게도 줄 수 있을까. 코로나는 모든 것을 갈라놓고 멀어지게 했지만, ‘마음만은 결코 멀어질 수 없었고, 멀어져도 알 될 일이라는 깨달음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다가왔다.

고민과 궁리를 거듭하다가 선물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의 선물만은 어느 때보다도 따뜻하고 넉넉하게 주고받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선물을 주제로 한 낭송 시를 찾는데, 나태주의 선물이라는 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시의 한 구절을 다듬어 당신이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로 콘서트의 주제를 정했다.

​​  고심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예정하고 있는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냐, 그것보다 비대면을 진리처럼 받들어야 할 처지에 과연 콘서트는 열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속을 더 죄게 했다. 고심과 불편을 의지와 열정으로 바꾸며 팀별이며 전체로 한 것을 모두 합쳐 육십여 회의 연습을 줄기차게 해나갔다.  

우리의 걱정은 빗나가지 않았다. 재유행 조짐을 보이는 코로나가 예정해 두었던 예술회관 무대와 객석을 쓸 수 없게 했다. 다른 무대를 구하기 어려워 어느 커피숍의 작은 무대까지도 노심하다가 다행히 도청에서 운영하는 새마을회관 강당 무대를 얻으며 우리는 환호했다. 객석은 제한을 받았지만, 무대는 여느 공연장 못지않았다.

  드디어 우리의 고심을 무대 위에 얹어야 할 날이 왔다. 오후 4시부터 예정된 무대였지만, 회원들이며 스텝들은 오전 10시부터 모여들었다. 음향 기기를 설치하고 현수막을 걸었다. 회원들은 봄여름 땀 흘려 닦아온 기량을 돌아보며 팀별로 다시 점검해나갔다. 김밥으로 준비한 점심을 때운 후 오후에는 프로그램대로 펼치는 전체 리허설 시간을 가졌다.

모든 준비며 무대에 임하는 결의는 굳세게 갖추어졌다. 비어 있는 게 한 가지가 있었다. 관객이다. 비대면 방침을 따라 무관중으로 하되 영상으로 담아 온라인으로 배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관객 대신에 영상 카메라가 객석에 섰다. 출연자가 관객이고, 관객이 출연자가 되었다. 그 몇 안 되는 관객도 뚝뚝 떨어져 앉아야만 했다.

  드디어 오후 4,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힘들고 어려운 처지 속을 살고 있을수록 마음으로는 모두 좋은 선물을 나누며 살자는 회장의 인사로 막이 올랐다. 관객은 출연을 기다리는 회원들뿐이었지만, 환호와 갈채는 상상으로 그리기로 했다. 구름처럼 모인 관중이 장면 장면마다 뜨거운 갈채를 쏟아낸다.

네 사람의 여회원이 등장하여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라는 주제를 걸고 너를 위하여(김남조) 등 네 편의 시를 나누어서, 혹은 함께 낭송하는 윤송으로 무대를 열어나갔다. 옥빛 의상을 차려입은 여 회원이 등장하여 오늘의 주제 시라 할 수 있는 선물(나태주)을 낭송하고, 음악을 전공한 남 회원의 기타 연주와 노래를 배경으로 하여 회장님의 목소리로 얹혀 그대(정두리)가 낭랑하게 흘러나왔다. 작은 것을 위하여(이기철) 등 네 편의 시를 엮어 보석처럼 묻어둔 노래라는 주제로 무대를 꽉 채우는 역동적인 연기와 함께 펼쳐내는 시 퍼포먼스로 제1부 순서가 엮어졌다.  

2부에서는 사회자를 바꾸어 음악 회원이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로 무대를 열어, 오 분간(나희덕) 등 두 편의 시에 노래와 창을 곁들여 네 사람이 엮어내는 합송에 이어졌다. 수필 나무의 행복(이일배)을 남녀 두 회원이 듀엣으로 낭독하고, 현직 교육감인 회원께서 우화의 강(마종기)을 낭송했다. 회원의 각본 연출로 시극 선물 같은 산등성이가 네 사람의 회원이 시와 어우러지는 극을 펼치면서 한 시간여에 걸친 순서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부문마다 출연자들은 시의 주제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소품과 함께 색색 의상을 갖추어 입고, 더욱 생동하는 낭송을 위해 적절한 연기도 곁들였다. 퍼포먼스 팀의 무대를 압도하는 폭발적인 액션들은 콘서트의 열기를 한층 뜨겁게 하고, 시극에서는 노부부의 걸쭉한 사랑 이야기를 코믹하게 펼쳐내면서 절정을 넘어섰다. 성악가의 고아한 연주, 학생들의 특별 낭송 무대로 콘서트를 한층 신선하게 만들려 했던 계획이 코로나 때문에 무산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조건 없이 베푸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 고난과 역경을 꿋꿋하게 이겨내면서 이루어가는 희망적인 삶, 행복과 이상의 세계에 대한 염원, 서로 주고받는 선물 같은 사랑 들이 프로그램들이 담고 있는 주제며 내용이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코로나라는 두렵고도 고통스러운 바이러스를 극복해 내려는 굳센 의지를 담은 것이기도 했고, 어렵고도 힘든 상황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안아주려는 맑고 밝고 따뜻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우리 낭송협회 노래를 다 함께 부르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회원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시 낭송의 아름다움과 그 의의, 그것을 구현해 내고자 하는 회원들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마치 광복된 세상의 해방가를 부르듯 희망과 의지를 담아 힘차게 불렀다. “……따뜻한 삶을 위해 정겨운 세상을 위해 좋은 시 찾아가는 구미낭송가협회~”라는 노랫말을 끝으로 노래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는 회원들 모두 북받쳐 오르는 감격과 감동으로 가슴이 뜨겁게 끓었다. 

모두가 선물이었다. 오늘 우리가 무대에서 펼쳐낸 그 뜻과 마음들 모두, 우리 서로서로 주고받는 선물일 뿐만 아니라 이웃과 세상에 바치는 따뜻한 위안이요 굳센 의지의 선물이기도 했다. 그 마음들은 세상에 내놓을 영상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온라인 바다에 펼쳐져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으며 쏟아질 환호와 갈채를 환상으로 그린다. 우렁찬 박수가 해일처럼 무대를 휘덮고 있다. 얼마나 거룩한 선물인가.

  그랬다. 당신이 가장 좋은 선물이다. 당신이,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고운 당신, 아름다운 세상, 그 당신과 당신의 세상이 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그윽한 선물 속을 살고 있다. 당신이 있어 오늘 우리의 콘서트는 참 따뜻했다. 행복했다.

  “당신이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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