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나무의 은혜

이청산 2020. 9. 9. 13:56

나무의 은혜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를 만나러 오른다. 산은 언제 올라도 고즈넉하고, 나무는 언제 만나도 포근하다. 산에는 나무가 있고, 나무는 산에 살기 때문이다. 들에도, 길가에도, 뉘 집 뜰에도 나무는 살지만, 그건 본디의 자리가 아니다. 손을 타서 옮겨 앉았을 뿐이다. 그 산의 그 나무를 그려 산을 오른다.

어미와 그 붙이가 한 몸이듯 산과 나무도 한 몸이라 할 수 있다. 산은 나무를 낳고 나무는 산에서 나고 산다. 어미가 붙이를 붙이이게 하고 붙이가 어미를 어미이게 하듯이, 산이 나무를 나무이게 하고 나무가 산을 산이게 한다. 산과 나무의 사이 같은 어미와 붙이의 사이는 여기까지다.

붙이는 어미의 품을 떠날 수도 있지만, 나무는 산의 품을 스스로 떠나는 일이 없다. 못된 붙이는 어미를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나무는 결코 산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붙이는 어미의 모든 것을 취하여 나고 자라지만, 나무는 산의 무엇도, 이를테면 흙도 돌도 축내는 일이 없다. 나무가 많아 산이 고단해지는 일이 있던가.

오히려 나무가 있어 산은 더욱 늠름할 수 있다. 산은 그 나무를 위해 너그러이 품을 벌린다. 그 품 어디에서나 저 뻗고 싶은 뿌리며 가지를 원 없이 뻗어나게 한다. 나무는 산이 늘 고맙다. 산은 그 나무가 언제나 사랑스럽다. 나무는 저 낳은 산을 위해 제 할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무는 하늘의 정기를 받아 산에서 태어난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무는 하늘의 바람과 빛과 물을 받아 살기 때문이다. 나무는 하늘이 내려주는 그것들을 어느 하나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바람으로 숨결을 가다듬으며 빛으로 싱그러운 잎과 고운 꽃을 피워 낸다. 물은 뿌리에 간직하여 저의 자양으로 삼으면서 산의 모습을 한결같게 해준다.

나무뿌리가 흙 사이사이로 뻗어 나가 부피를 키우면, 사이가 더 벌어지면서 많은 빈틈이 생기게 된다. 흙과 흙 사이의 이 틈을 공극(孔隙)’이라고 하는데, 이 공극이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게 한다. 품고 있던 물을 서서히 흘려내어 정갈한 계곡수가 되게 하고 사람의 마실 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

뿌리에 간직한 물을 두고 녹색댐이라고 한다. 숲이 마치 댐처럼 많은 비를 흡수해서 땅에 갈무리했다가 지하수로 서서히 흘려보내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녹색댐이 없다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한꺼번에 하천으로 흘러들어 심하면 홍수가 나기도 하고, 흘러내리면서 흙을 쓸어가 사태가 지기도 하는 것이다.

뿌리가 건사하는 녹색댐으로 산은 제 모습을 지킬 수 있고, 그 산은 나무를 아늑하게 안아 준다. 서로 은혜를 주고받는다고 할까. 나무는 결코 저를 낳아준 산을 배신하는 법이 없다. 아니, 산을 위해 제 온몸을 다 바쳐 그 흙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산도 안다, 그 보은의 마음을. 그래서 산은 나무를 한껏 포근히 품는다.

그 마음은 저들끼리만 주고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은혜는 은혜를 나아 저들을 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마음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친 자에게는 그늘을 주어 쉬게 하고, 사랑이 그리운 이에게는 꽃과 향기로 그 정념에 젖게 해고, 양식이 필요한 이에게는 열매를 주어 유족을 누리게 한다. 누군들 산과 나무를 보면서 마음 너그러워지지 않는 이가 있을까.

너그럽지 못한 마음으로, 탐욕에 찬 상념으로 산과 나무를 바라보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은혜의 마음을 훼방하는 무리가 있다. 바로 사람이다. 사람들은 저들의 목적을 좇아 나무를 마구 베어내고 산을 함부로 깔아뭉갠다. 그 은혜들을 잔인하게 짓이기는 것이다.

눈앞의 작은 이득에 눈멀어 그리하는 것이겠지만, 자연의 이법을 거스르고서 얻는 이득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소용이 될까. 여럿을 들 것도 없다. 태양 빛을 전기로 바꾼다며 나무와 산을 무참히 해치고 설치한 구조물이 큰비에 어떻게 되고 있는가. 사태가 나게 하여 이를 데 없는 큰 피해가 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지 않는가. 나무의 은혜를 짓밟은 재앙이다. 그 은혜를 짓뭉갠 과보다.

오직 은혜로 사는 나무는 은혜를 갚을 줄도 알고 은혜를 베풀 줄도 안다. 수많은 미생물이며 날짐승, 길짐승에 이르기까지 나무의 은혜를 따라 사는 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베푸는 나무의 은혜는 또 어떠한가. 이런 나무는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사람아, 우리는 누구의 은혜를 푼푼하게 갚아 본 적이 있으며, 누구에게 은혜를 넉넉하게 베푼 적이 있던가. 그렇지는 못할지언정, 나무의 은혜, 은혜의 나무 앞에서는 돌아서지 말자. 우리가 돌아갈 곳도 쉴 곳도 정녕히 산이요, 나무가 아니던가.

정녕 나무는 내가 안은 게 아니라 / 나무가 나를 제 몸같이 안아 주나니, / 산에 오르다 숨이 차거든 / 나무에 기대어 / 나무와 함께 / 나무 안에서 / 나무와 하나 되어 쉬었다 가자.” (김형영, 나무 안에서)

오늘도 산을 오른다. 은혜의 나무를 만나러 오른다. 나무의 은혜에 깃들이려 오른다.

나무 안에서 나무와 하나 되려 오른다.(20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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