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이청산 2019. 10. 22. 19:16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다만 음표를 충실히 읽어 정확하게 부르면 되는 것일까. 가수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작곡가가 주는 곡을 받아서 멋지게 불러내기만 하면 되는 걸까. 멋지게 부른다는 것은 또 어떻게 부르는 것일까.

소리만 듣기 좋아서 멋진 노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감동을 주는 노래가 되기 위해서는 노래를 잘 해석해야 한다. 곡과 가사의 흐름이며 풍기는 분위기를 잘 잡아내어 자기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지게 해야 한다.

노래도 예술의 한 장르다. 예술이란 예술가의 삶을 현현해 내는 일이다. 자신의 삶을 노래를 통해서 해석해 내고 재구성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수가 한 곡의 노래를 부르는 데는 그 속에 자기 삶의 모습이 어떻게든 드러나야 한다. 노래에 대한 관점이라든지 인생관 같은 것이 잘 투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노래든 척척 잘 부른다는 가수를 본 적이 있다. 그것도 가수의 재주고 능력이겠지만, ‘노래하는 기계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트로트, 발라드, , 재즈 등 모든 장르의 노래에 자신의 혼을 온전히 담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혼을 담아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노래와 가수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래 속의 삶이 곧 가수의 삶일 수는 없지만, 그 속의 삶이 가수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가수가 품고 있는 정조와 이념이 노래 속의 그것과 속 깊이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연유 때문일까. 가수가 부른 노래를 따라 가수의 삶이 달라지는 경우도 보게 된다.

우연의 일치일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부르고는 자진으로 생을 마감하고,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는 슬픈 삶을 살다가 가슴앓이 병으로 많지 않은 나이에 운명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노처녀로 지내던 노사연은 만남을 부르고 행복한 결혼에 이르게 되고, 송대관은 해 뜰 날을 불러 불운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가수 박재란(1938~ )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가수는 대개 자기의 가장 히트한 곡대로 산다.”라고 했다.

가수 박재란노래를 따라 불행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기가 추구하는 예술 세계를 위하여 온몸을 다 던져넣은 그 열정만은 높이 기려야 할 것 같다. 가수가 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생계의 방편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도 노래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고서는 될 일이 아니다.

가수가 노래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서 한 노래를 보통 2,000~3,000번은 부른다고 한다. 그렇게 혼신의 열정으로 부르다 보면 노래에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지 않을 수 없고, 곧 자신의 삶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곡의 노래가 히트해서 대중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것은 결코 우연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 낭송 콘서트시 낭송을 사랑하는 모임이 있다. 십 년 가까운 연륜을 함께하며 수시로 모여 연찬을 하고, 한 해에 한 번 무대를 빌려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시를 낭송하는 것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갔다. 삶의 어떤 장면에 닿을 때마다 그에 어울리는 시를 떠올려 내기도 하고, 좋은 시를 만나면 그 시 속의 삶처럼 살고 싶어지기도 했다.

낭송할 시를 고를 때는 자신의 삶에 비추어 공감이 가는 시를 선택하겠지만, 가려 뽑았다 하면 그 시와 자신의 삶을 맞추어 나가려 한다. 나름의 해석을 통해 시 속에 자신의 삶을 넣거나, 시를 자신의 가슴속에 완전히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택도 중요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삶이 될 때까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읽고 외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시의 삶이 나의 삶이 되고, 나의 삶이 바로 시가 이루고자 하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요즈음 나는 유안진 시인의 먼 훗날에도 우리는에 심취해 있다. “훗날/ 먼 훗날에도 우리는/ 서로 잠 없는 별일까/ 새벽마다 어룽지는 풀잎의 이슬일까라는 구절처럼 세상의 아름다운 인연들과 서로 그리는 별이 되어, 이슬처럼 맑고 영롱하게 길이길이 남고 싶은 꿈에 젖는다.

꿈만으로 될 일인가. 열심히 욀 일이다. 아침 산책길에서도 외고, 나들이할 때 탈 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외고, 달리는 차 안에서 외고, 밥을 먹으면서도 외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왼다. 이렇게 마음을 쏟다가 보면 시 속의 삶이 곧 나의 삶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어찌 가수의 노래며 시 낭송뿐일까. 세상의 모든 삶이 다 그러하지 않으랴. 어떤 일이든 고스란한 집념으로 마음과 뜻을 다 모으다 보면, 내 바라는 삶이 나에게 정겨운 걸음으로 다가오지 않으랴. 자기계발서에서 논함 직한 무슨 성공 비결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아늑하게 녹아드는 포근한 정서 세계를 동경할 따름이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처럼, 그렇게 살면 그리될까?(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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