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산을 오른다.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은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생리적 일이며, 정감 있는 노래를 듣고 좋은 글을 읽는 정서적 일 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것들과 함께 나의 산행도 늘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상이 되어있다. 오늘 하루의 그 일상을 위하여 쌍지팡이 가볍게 짚고 해거름 산을 오른다. 해거름은 산행으로 내 하루의 마지막 과업을 수행하는 시간이면서 편안한 휴식으로 들기 위한 통과의례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이 아늑하고 즐겁다. 언제 올라도 정겨운 손짓으로 맞아주는 나무들을 보며 오르노라면 숲 사이로 연홍빛 노을이 내려앉는다. 노을빛으로 치장하고 선 나무들이 고즈넉해 보인다. 푸른 하늘 바라며 싱그럽게 선 나무를 보면 생동감이 느껴지지만, 해거름 노을에 물든 나무는 편안한 고요에 젖게 한다.
산을 오르노라면 모양이며 크기를 가리지 않고 한데 어울려 우뚝우뚝 서있는 나무들이 정겹고도 미쁘다. 소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굴피나무, 생강나무……. 그런 이름들이야 일없는 인간들이 붙일 것일 뿐, 저들에게는 아무 상관없다는 투다. 서로 함께 어울려 살다 못해 어떤 것들은 마치 한 몸에서 난 것처럼 서로 가지를 어우르고 있는가 하면, 숫제 뿌리를 한 곳에 같이 박고 어깨까지 나란히 겯고 서 있는 것도 있다. 저들에게는 사삿일도 없는가.
나무 생김이 다르니 잎인들 어찌 같을까. 다 다른 잎들이 떨어질 때도 너나없기는 마찬가지다. 저들 한 잎끼리 혹은 큰 잎, 작은 잎끼리 따로 가려 내려앉지 않는다. 모두 한데 떨어져 함께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나문들 잎인들 도무지 저들에게는 셈 가림이란 없는 것 같다. 저들은 서로를 가리지 않고 함께 사는 것은 물론, 죽살이조차도 가림이 없는 것 같다. 저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자리가 따로 없다. 죽을 때도 나고 살던 자리에서 그대로 내려앉으면 된다. 산 것도 죽은 것도 한 볕을 쬐고 같은 바람을 품을 뿐이다. 저들의 가림 없는 삶과 죽음이 부러울 때가 있다. 사람은 왜 살 일을 고민해야 하고, 죽을 일은 더욱 고뇌해야 하는가. 살 자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어야 하고, 죽을 자리를 얻기 위해서도 고단한 짐을 져야 할까. 삶도 죽음도 나무처럼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어느 철학자는 사람이 죽을 때의 필수 선택 세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감성적 정서적으로 죽음에 임하여 고통스러운 슬픔의 장이 되게 하는 것이고, 하나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생명의 철칙에 순응하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종교적 선택으로 생사를 어떤 영원한 섭리의 한 부분 현상으로 보는 것이라 했다. 그 죽음의 선택은 어느 것이든 부담스럽다. 죽음을 두고 왜 그리 고통스런 슬픔으로 느껴야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고뇌해야 하고, 섭리를 깨닫기 위해 고행의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저 나뭇잎이 떨어지듯, 나무가 제 난 자리에 말없이 드러눕듯 할 수는 없을까. 
나무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산 나무와 함께 쬐고 품던 볕과 바람 속에서 썩어 흙으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나무로 나지 않는가. 그런 나무를 보라. 어찌 삶과 죽음이 따로 있다 하겠는가. 삶과 죽음에 무슨 절차며 구분이 필요하다 하겠는가. 나무처럼 살다가 나무처럼 갈 수 있다면 이 산이 다 내 터가 되지 않으랴. 노을 짙은 해거름 산을 내린다. 하늘을 다홍으로 물들인 빛이 나무에도 땅에도 짙게 내려앉는다. 서있는 나무 누워있는 나무를 가리지 않고 곱게 내려앉고 있다. 하늘이며 땅이며 나무며 풀이 어찌 이리 고요하고 편안하게도 보일까. 걸음이 점점 가벼워진다. 등을 적신 땀도 상쾌하게 말라든다. 나뭇잎이 손을 흔든다. 나도 받아 흔든다. 새도 이제 잘 곳을 찾아 나는가. 경쾌한 소리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날아간다. 바스락이는 나뭇잎 소리가 나는 새를 따라 함께 나는 것 같다. 이 노을이 다 지기 전에 어둠이 발목을 적시기 전에 이 산을 내릴 것이다. 곱게 내려앉은 노을빛 속에 고요히 서고 누워있던 나무들의 편안한 기억을 안고, 내일의 해거름 산 빛을 다시 그리며 내려갈 것이다. 집에 이르면 향기로운 술 한 잔 그윽이 기울여도 좋겠다.
알맞추 데워진 물에 따듯하고 시원하게 몸을 잠그고, 밤이 이슥해지면 포근한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삶의 일상인 것처럼, 그렇게 흘리는 땀이 몸의 일상인 것처럼, 그 일상의 잠속으로 내밀하게 들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일상 아닌가. 노을빛에 편안하게 누워있던 나무처럼 아늑히 잠들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모습으로 올까.♣(2019.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