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이나 길가에 또는 어느 집 정원에 홀로 서있는 나무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떤 연유로 저리 홀로 쓸쓸히 서있는 것일까. 혹 인간의 비뚤어진 사랑 때문에, 그 허욕 때문에 저렇게 서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무는 제 혼자 잘 살 곳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기름진 흙을 찾아 들판으로 가려 하지도 않고, 인간세상을 그려 인간들의 길로 나설 일도 없다. 따사로운 손길을 받고 싶어 뉘 집 정원의 조경수가 되려 할 까닭도 물론 없다. 나무는 언제나 나무와 함께 산다. 나무가 나무를 낳고 나무가 사는 곳에 나무가 난다. 나무는 볕 바른 등성이며 그늘진 골짜기를 가려서 나지도 않고, 편편하여 뿌리박기 좋은 곳이며 가팔라 뿌리내리기 힘든 곳을 가려 살지 않는다. 나무는 난 곳이 제 자리일 뿐이다. 나무는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가는 것이든 굵은 것이든, 제 이름이 소나무든 노간주나무든, 상수리나무든 물푸레나무든 같은 이슬을 받아먹고 살고 한 바람을 안으며 산다. 더 맑은 이슬을 머금겠다고 나서지도 않고 더 포근한 바람을 안겠다고 서둘지도 않는다. 나무는 볕을 받아 크기도 하고 살도 찌운다. 좀 더 많고 따뜻한 볕을 바라며 애써 솟기도 하지만 남의 볕을 빼앗으려 하지는 않는다. 오직 하늘을 향할 뿐이다. 볕을 향하여 오직 곧게 뻗어 오를 뿐이다. 나무는 한 자리에 조용히 서있지만 결코 가만히 머무르지는 않는다. 언제나 부지런한 생명 작용으로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잎을 돋우어내며 무성해지다가 잎을 곱게 물들여 떨구며 다시 돋을 새봄을 기약한다.
나무는 철을 따라 꽃과 잎을 피우고 지울 뿐, 철모르고 제 혼자 오뚝하니 피고지려 하지 않는다. 함께 피어 만화방창을 사랑하고, 함께 물들어 만산홍엽을 자랑 삼는다. 더불어 푸르러 무성한 녹엽으로 어깨를 겯고,더불어 갈잎 되어 낙엽으로 지는 길을 같이 간다. 나무는 꽃과 잎을 피우는 일만으로 제 생명 작용을 삼지 않는다. 열매 맺는 일에 더욱 늡늡하다. 어쩌면 나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란 열매를 맺기 위해 해야 하는 작용들인지도 모른다. 그 열매가 있기에 새로운 생명들을 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나무는 열매를 맺는 일에도 결코 제 분수를 넘지 않는다. 아무리 탐스럽게 보일지라도 결코 다른 열매를 탐하는 일이 없다. 모양이며 크기며 여물기며 여리기며, 제 몸이 만들 수 있는 대로, 새 몸으로 태어나기에 좋을 대로 빚을 뿐이다. 나무는 역사에도 무관심하지 않다. 제 역사를 제 몸에 다 새긴다. 한 해를 살고 나면 제 몸에 테 하나 긋고 또 한 해를 살면 또 하나 긋는다. 그 속에는 제 나이 뿐 아니라 제 사는 산천의, 그 산천을 안고 있는 온 자연의 신비를 다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무는 거듭하는 생애를 살면서도 결코 쉬이 늙거나 죽지 않는다. 나무는 풋풋한 소년이 되기도 하고 방장한 청년이 되기도 하고 원숙한 장년이 되기도 하면서 거듭나는 제 철을 잊지 않다. 어쩌면 나무는 불사신이라 할까. 그런 나무가 어느 날 쓰러진다 치자. 쓰러진 나무가 비바람을 맞으며 풍화되어 가다가 잦아져 흙이 되어 간다 치자. 그러나 그것은 죽음이 아니다. 다만 한 줌 흙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다. 그 흙이 곧 다시 나무가 되어 나는 것이다. 나무에서 떨어진 잎을 보라. 어디로 가는가. 제 태어난 흙으로 스며들어 저를 피워준 나무로 다시 돌아간다. 봄이면 다시 잎이 되어 피어나고 꽃이 되어 세상을 밝힌다. 그리하여 나무는 영원히 나무로 살 뿐, 나무에게 죽음이란 없다. 그러므로 나무는 나무로 날 수밖에 없고, 나무는 나무와 더불어 서로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다. 누가 나무의 자리를 함부로 파헤치는가. 누가 나무의 자리를 옮겨놓고 혼자만 보고 즐기려 하는가. 그 즐거움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친구 한 이가 다른 세상으로 갔다. 큰 욕심 없이 세상을 살던 맑은 친구였다. 함께 만나 담소 화락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가 그 친구를 데려가서 혼자만 친하려 하는가. 아니면 다시 꽃으로 피기 위해 흙으로 내려앉은 건가.
나뭇잎처럼 떨어졌을 것이다. 봄이 오면 꽃으로 피고 잎으로 돋아나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니면 언젠가 우리도 잎 지듯 떨어져 함께 꽃으로 잎으로 피어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나 더불어 살아야 하지 않는가. 나무처럼 늙지 않고 죽지 말고 푸르게 살아야 하지 않는가.♣(201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