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1)

이청산 2018. 7. 31. 11:20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1)

 

류근 시인의 어쩌다 나는을 읽는다김광석이 노래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시인, ‘세상이 아름다워서슬퍼서외로워서부끄러워서 시도 때도 없이 울었고낮밤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는 시인의 시다이 시가 근원적인 자아성찰의 시일지애상적인 연시일지또 다른 정념을 담은 시일지는 시인 자신만이 알 수 있겠지만이 시를 내가 음미하고 싶은 대로 읽어본다.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이 명랑한 햇빛 속에서도 눈물이 나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이 깊은 바람결 안에서도 앞섶이 마르지 않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이 무수한 슬픔 안에서 당신 이름 씻으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이 가득 찬 목숨 안에서 당신 하나 여의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이 삶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 건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어디로든 아낌없이 소멸해버리고 싶은 건가//

                                                                   -시집 어떻게든 이별에서

 

이 시를 읽다가 보면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라는 구절에서 당신의 자리에 다른 어휘를 넣어서 음미해 보고 싶어진다사람은 물론 나무며 풀꽃 같은 사물을 넣어도 좋겠지만시를 쓰는 사람은 수필을 쓰는 사람은 수필을 넣어서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다 나는 시(수필)가 좋아서이 명랑한 햇빛 속에서도 눈물이 나는가// 어쩌다 나는 시(수필)가 좋아서이 깊은 바람결 안에서도 앞섶이 마르지 않는가

 

(수필)’를 좋아하는데왜 눈물이 나는 걸까깊은 바람결에도 앞섶이 마르지 않을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걸까그 눈물은 곧 대상(소재)’에 대한 감동이다.모든 예술작품의 창작이 다 그러하겠지만 시(수필)를 쓰자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대상이다. ‘대상이 곧 (수필)’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지만물론 대상이 곧 시가 되고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대상이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감동이 있어야 하고 형상화 과정이 있어야 한다감동을 느끼지 못할 때는 대상이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형상화는 더욱 이루어질 수 없다대상을 보면서 많은 눈물(감동)을 흘릴 수 있을 때 감동적인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다음 구절을 본다.

 

어쩌다 나는 시(수필)가 좋아서이 무수한 슬픔 안에서 당신 이름 씻으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시(수필)가 좋아서이 가득 찬 목숨 안에서 당신 하나 여의며 사는가

 

슬픔으로 씻는 이름이란 얼마나 애틋하고도 달콤한 이름일까얼마나 아리고도 가슴 깊숙이 새겨진 이름일까그런 애틋하고 아린 마음 없이,달콤하면서도 깊게 각인된 사념의 결정체가 없이 우리는 어찌 한 편의 시(수필)를 바랄 수 있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목숨들이 있지만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목숨은 (수필)’그 사랑을 나는 늘 여의며 산다. ‘여읨은 그리움이다늘 그리워하며 사는 것이다그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 시가 태어나고 수필이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그 슬픔으로 씻는 이름이며여읨으로 그리는 목숨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대상이 아닐까.

이제 류근의 시는 절정을 넘어서 모든 것을 소진해 가고 있다.

 

어쩌다 나는 시(수필)가 좋아서이 삶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 건가// 어쩌다 나는 시(수필)가 좋아서어디로든 아낌없이 소멸해버리고 싶은 건가

 

우리가 한 편의 시(수필)를 쓸 수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감동 때문이라 했다그 감동은 대상에 대한 겸허와 겸손에서 올 수 있다내가 아무것이 되어 대상을 섣부르게 대할 때그것은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어느 시인은 자기 시론을 이렇게 설파한다. “어떤 이유로든 시인은 대상에게 군림하여서는 안 되며 멋대로 대상을 왜곡해서도 안 되지요시인에게 대상은 언제나 주인입니다더 낮고 누추한 곳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듣고 말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일 것입니다그러할 때 대상은 자신의 내부를 열어주고 우리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대상의 본질에 다가서게 되지요.(이규리)”라고 했다.

나를 철저하게 소멸시켜 버릴 수 있을 때 감동은 더욱 깊어질 것이란 담론이겠다그토록 우리는 대상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어야 한다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대상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앞섶이 마르지 않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다비로소 한 편의 시(수필)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과연 어떻게 수필을 쓰고 있는가내가 늘 걷는 강둑길은 우거진 수풀로 온갖 풀꽃 천지를 이루고 있던 곳이었다그것이 좋아 아침마다 늘 걸었다어느 날 그 길에 육중한 기계가 와서 모든 풀꽃들을 짓뭉개버리고 그 자리를 회반죽으로 휘덮어버렸다그 날로부터 나는 참 많이 울었다앞섶을 얼마나 흥건히 적셨는지 모른다떠나간 그것들을 속 깊이 그리워하며 얼마나 애태웠는지 모른다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그것 말고는 아낌없이 나를 소진해버릴 길이 없을 것 같았다.

그 눈물그 그리움그 소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꼭 맞는 글 한 편을 보듬을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아직도 더 소멸해야 할 것이 남았기 때문일까.(2018.7.26.)

                                                                   

 


'청우헌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전기 문집을 펴내며  (0) 2018.09.08
나의 한촌살이(2)  (0) 2018.08.30
낙망의 길이 희망의 길로  (0) 2018.07.19
당신에게 바라는 모든 것  (0) 2018.07.11
더 먹지 그래  (0) 2018.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