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길 찾아 가는 길

이청산 2018. 3. 14. 10:59

길 찾아 가는 길

 

새 학교에 부임하여 첫 수업을 들어가는 날이었던 것 같다. 용모를 추스르고 있는데 곁의 누가 빨리 수업에 들어가기를 재촉했다. 서둘러 교재를 들고 교실을 찾아 나섰다. 까마득한 언덕 위에 서있는 학교 건물이 보였다. 회랑을 오르내리며 찾아갔지만 교실은 나오지 않았다. 높고 낮은 길을 한참 헤매다가 가파른 층계를 힘들여 올라가다 보니, 녹슨 쇠관 같은 것이 내리 누워 있고 그 꼭대기에 무성한 잡초가 계단을 덮고 있었다.

하릴없이 다시 내려와 어느 모퉁이를 돌다가 한쪽에 보이는 사람에게 내가 찾는 교실을 물으니 자기도 처음 온 곳이라 모른다고 했다. 낙심이 되어 밖으로 나오는데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쳐나왔다. 수업 시간이 끝난 모양이었다. 나의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이 걸 어쩌나! 안타까워하며 몸부림치다가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또 이런 꿈을 꾸었구나. ·공간 배경은 다를지라도 교실을 찾아가다가 못 찾고 안타깝게 깨어나는 꿈을 몇 번 꾸었다. 꿈을 꾸다가 눈을 뜨면 거의 다 잊어버리지만 이런 꿈은 비교적 생생히 남아 기억의 방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왜 이런 꿈이 자꾸 꾸이는 걸까.

아이들이 있는 교실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탓일 것이다. 그 학교며 교실을 떠난 지도 강산이 바뀔 햇수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그런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 아주 강박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 같다. 그 기억 속의 교실은 나에게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어쭙잖게 살아온 내 지난날의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은 소망의 표현이라고 했다. 내가 찾고자 했던, 그러나 찾기 어려웠던 소망들의 잔해가 꿈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투사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헤매기만 하다가 한 생애를 마감했던 것 같다. 내가 찾아 헤맨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생애를 돌이켜 보면, ‘이 게 나의 길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길 위에 나를 얹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한 업으로 한생을 살아오긴 했지만, 과연 그 길이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될,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길이었던지는 모르겠다. 그 게 진정한 나의 길이었다면, 지금 왜 그리 강박한 꿈을 꾸어야 할까.

내가 들어야 할 교실에 들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누며 앎과 삶을 주고받는 아늑한 꿈은 왜 꾸어지지 않는가. ‘꿈은 마음의 그림자다.’, ‘꿈속에서의 일은 바로 세상의 일이다.’라는 말이 있듯,내 살아온 세상이 그리 녹록지 못했고, 그 세상을 돌이키는 내 마음이 그리 아늑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꿈에서처럼, 나는 늘 헤매기만 했던 것 같다.

그 한 생애를 내려놓고 사는 지금도 나의 헤맴 길 찾기는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딴은 모든 것을 다 떨치고, 새소리며 바람소리와 더불어 살겠노라며 물이 있고 산이 있는 한촌을 찾아와 살고 있다. 그 세월이 지금 흘러가고 있다. 세상이란, 언제까지나 새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님을 타이르듯 가르쳐 주면서 흘러간다.

내가 한촌살이에 젖어들면서 아침마다 거니는 강둑길은 사시사철 꽃길이었다. 우거진 수풀 속에 철따라 일매지게 피어나는 갖가지 풀꽃들이 그리 고울 수가 없었다. 그 꽃들과 속말을 나누고 걷는 길이란 그리 행복할 수가 없었다. 옳구나, 이 길이 내 길이로구나. 길 찾아 살아온 보람이 있구나. 잠식간의 고즈넉한 꿈이었다. 어느 날 그 길에 회반죽이 덮이면서 내 행복의 풀꽃은 저만치 나앉아야 했다. 그리고 팍팍하게 굳은, 땅 아닌 땅의 길을 걸어야 했다.

새소리 바람소리도 좋지만 예술이며 문학이 있는 사람 세상도 그리웠다. 한 주일에 한 번쯤은 대처로 향하는 차를 타고 나가 향기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시 낭송을 함께하고 문학을 더불어 하며 예술의 향취에 젖었다. 낭랑한 목소리를 모아 콘서트도 하고,진득한 삶을 담아 책도 펴냈다. 마치 나에게 삶의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듯 행복했다. 그러나 세월은 그곳도 들고 나기를 밝게 헤아려야 할 사람살이의 장임을 모르게 하지 않았다.

사람이 있는 곳 어디든 희로애락이 있음을 어찌 모를까만, 진정 내가 찾고 싶은 길이란, 찾아서 걷고 싶은 길이란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또 어디로, 무슨 길을 찾아 나서야 할까.

옛날 영국 에버딘셔 지방의 디(Dee) 강가에 한 방앗간지기가 살고 있었다. 그는 온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분주해도 늘 흥겹게 노래를 읊조렸다. 왕도 이 행복한 사나이가 부러워 찾아와 보니, “아무도 아무것도 부럽지 않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니까./ 아무도 나를 부러워하지 않으니까.”라고 노래하며 방아를 찧고 있었다.

왕은 자네처럼 밝게 살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자리를 내어 주겠다.’고 했지만, 방앗간지기는 그저 강가에서 방아를 찧고 사는 게 더없이 행복하다며, 또 이렇게 노래했다. “,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여라./ 나는 디 강가에 살고 있으므로!”(제임스 M 볼드윈, ‘디 강의 방앗간 주인’)

어쩌면 그 방앗간지기는 지금도 부지런히 방아를 돌리며 행복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나 더 살아야 그 길을 좇아갈 수 있을까.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쯤이면 그 길을 알아 그의 노래를 내 노래가 되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세상의 길이 훤히 보이는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렇게 길 찾아 가는 길을 가고 가다가 세상을 다하는 날, 남이 부러워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기꺼워하며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여라./ 새소리 바람소리 더불어 이 한촌에 살았으므로!”

(2018.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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