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이청산 2015. 12. 30. 14:23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친구의 부인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 가려는 사람 좀 붙들어 달라는 친구의 절박한 한밤중 전화를 받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달려갔을 때는 벌써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다. 심근경색이라 했던가. 삶과 죽음의 거리가 이토록 지척일 수가 있는가.

불과 삼십여 시간 전만 해도 친구와 부부 모임 자리에 함께 앉아있던 사람이 지금은 장례식장의 영정으로 앉아있다. 병을 걱정하던 가족들이 졸지에 상주가 되고, 문병을 왔던 사람들이 별안간 문상객이 되었다. 모두가 황당하고 황망하기 짝이 없다.

친구는 근 한평생을 나와 함께 마음을 나눠온 죽마고우요, 그와 부인은 대학 동기로 나와 더불어 젊은 시절 숱한 추억들을 함께 쌓기도 했었다. 부인은 학교를 졸업하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다가 친구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두게 되자 기르기를 위해 직장을 그만 두었지만, 가계를 위한 일에 잠시도 손을 놓지 않을 만큼 억척스럽게 살던 사람이었다.

그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살림도 제법 일구고 아이들이 장성하여 모두 성취시키고 손주도 얻어 이제 좀 살만하다 싶었는데 돌연 세상을 떠났다. 애써 일군 살림으로 유족히 살면서 아이들도 잘 기르고 했겠지만, 스스로를 위한 세상은 얼마나 누리다가 갔을까? 친구는 그런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이 얼마나 애잔하고 애통할까. 학창 시절에 푸른 꿈을 안고 희희낙락을 함께 했던 기억의 단편들이 허망하게 뇌리를 스쳐간다.

내가 사는 한촌 마을 모개나무할매가 돌아가셨다. 집 울에 수령 2백년도 넘은 모과나무 노거수가 서있어서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모개나무할매라 불렀다. 할매는 오래된 모과나무처럼 연세도 많지만, 둥실한 모과처럼 넉넉한 성품에 인정도 깊었다.

할매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5남매를 훌륭히 성가시켜 모두들 제 노릇 잘 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늘 베풀며 살기를 애썼다. 할매는 메주가루와 고춧가루를 찰밥에 섞어 집장을 빚는 솜씨가 유달라 마을 사람치고 할매의 그 장맛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느 날 할매가 나를 위해 맛있는 나물국을 끓여 오셨다. 아내가 서울 손주를 보러가서 한 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봄나물이 하도 좋아 몇 움큼 뜯어 국을 끓여 보았다며 가지고 왔다. 내가 끼니를 어떻게 잇는지 걱정이 되더라고 했다.

그 할매가 시름시름 앓으시면서 병원과 아들네 집을 드나드시더니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아들딸들은 굴건제복을 하고 꽃상여를 상두꾼에게 메여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는 마을 뒷산에 정성들여 장사를 지냈다. 온 마을 사람이 문상객이 되고 일손이 되어 할매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백수 세상에 아직도 더 사실 수 있는 연세임에도 돌아가신 것을 모두 아쉬워하였다.

누구의 죽음인들, 어떤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고 슬프지 않으랴만, 아직 칠십도 안 된 나이에 황망히 떠난 친구의 부인이며 우리 곁을 떠난 그 인심 좋은 할매가 모두들 애통하기 이를 데 없다고 했다. 죽음은 언제나 애통한 것이지만, 누군들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장자(莊子)는 노담(老聃, 老子)이 죽어 문상을 간 진일(秦佚)의 이야기를 앞세워 죽음도 삶도 자연현상에 불과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죽음을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을 두고 옛 사람들은 자연을 어긴 죄악[遁天之刑]’이라 한다면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가 되어 태어나고, 죽을 운명이 되어 죽는 것이기 때문에, 편안히 여겨 자연의 도리에 따르면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 끼어들 수가 없는 것이니, 이러한 경지를 하늘이 매단 것을 푸는 것[帝之縣解*]’이라 한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가 일찍이 아내를 잃은 친구에게, 자모를 잃은 자식이며 인심 좋은 이웃을 잃은 사람들에게 무슨 위안이 될 수 있을까만, 누구나 마땅히 맞이해야 할 죽음임을 생각하면, 거울에 모습을 비추어보듯 그 말씀에 생사를 비추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태어남도 죽음도 어차피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삶이 버거워 자진을 택하는 이도 왕왕 있긴 하지만, 대컨 사람이란 모두 자연으로 태어나서 운명으로 이 세상을 떠나지 않는가. 이런 생사를 두고 넘치게 환호할 일도, 애타게 슬퍼할 일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용한 축복 속에 태어나서, 사는 동안 좋은 사람 만나 아름다운 사랑으로 살다가,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도 없을 터이다. 이리 순탄한 생애를 바라는 것이 삶의 허무를 자초하는 과욕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찌하였건 철 되면 잎 돋고 꽃 피어 철 이르면 꽃 지고 잎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자연의 생리처럼, 삶도 죽음도 자연의 일로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닐까.

오늘도 해거름 산을 오른다. 가으내 내린 낙엽이 찬 겨울 산을 오히려 정겹게 한다. 이 마른 잎들이 새 생명 되어 다시 봄을 부르게 될 것이다. 나도 저 잎 중의 하나가 되고 싶다. 정겨운 산이 되고 싶다. 하늘의 매닮으로부터 조용히 풀려나고 싶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자연이 아니던가.(2015.12.25.)

 

*현해(縣解) : 거꾸로 매달린 것이 풀린다는 뜻으로, 생사의 고락을 초월함을 이르는 말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속박되어 있는 상태에서 풀려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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