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모든 것은 다 같다

이청산 2016. 1. 27. 12:58

모든 것은 다 같다

 

 

오늘도 해거름 산을 오른다. 내 하루의 절정이기도 하면서, 하루를 장엄하게 마무리 짓는 순간이다. 마루에 올라 세상을 조망하며 하루 삶의 절정을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비치는 다홍의 찬연한 노을빛으로 내 하루의 장엄한 마무리를 짓는다.

늘 해거름을 오르는 이 산이 내게 없었다면 나는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산은 나의 평온한 안식처인 동시에 삶의 생기다. 산을 오를 때라야 하루의 모든 속진을 떨쳐내는 듯하고, 내일을 살 수 있는 찬연한 생기가 돋아나는 듯하다.

내가 늘 오르는 산은 여느 산처럼 높지도 않고, 기암 명승이 있지도 않고, 청정 계곡수가 흐르지도 않지만, 언제나 내 발길을 정겹게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내 깃들어 사는 마을의 나지막한 뒷산이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줄기가 높고도 웅장했다면 내 어찌 날마다 올라 오늘의 삶을 씻고 내일의 삶을 그릴 수 있겠는가. 높다란 산만 좋은 산이 아니고 풍광 거룩한 산만 명산이 아니다. 나에게는 우리 집 뒷산이 세상 어느 산보다 좋은 산이고 명산이다.

좋은 산, 명산이 따로 있을까. 높은 산은 높은 대로 좋고, 낮은 산은 낮은 대로 좋다. 풍광이 좋은 산은 대찰이 들어설 수 있어 좋고, 집 뒷산은 쉽게 오를 수 있어 좋다. 좋다 좋지 않다 하는 것도, 높다 낮다 하는 것도 사람의 눈에 비치는 허상일 뿐, 모든 산은 다 같은 산이 아니랴.

어찌 산뿐일까. 산의 크고 작은 갖가지 나무들도, 작은 시냇물이며 큰 강물도, 조그만 조약돌이며 커다란 바위도 모두들 저마다의 모습으로 서 있고, 흘러가고, 세상을 채우고 있다. 무엇에 좋고 나쁨,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이 있을까.

사람 또한 이와 같지 않으랴. 높고 낮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잘 나고 못난 사람이 어디 있는가. 모두들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 뿐임에도 사람들은 어린아이보다 어른이 더 높은 인격체인 줄 알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은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보다 더 거룩한 존재인 줄 안다. 그리하여 어른이 아이들을 학대하여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식의 목숨까지 앗아버리는 무도한 부모의 모습도 보인다. 높은 자리 사람은 낮은 자리 사람의 인격도 낮은 줄 알아 마구 짓밟는 만행을 부리기도 한다. 끔찍한 일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자리가 높든 낮든 저마다 사는 모습들일 뿐 다 같은 사람이 아닌가.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나도 세상 물색 모르던 젊은 부모였을 때, 아이들을 매질로 가르치려 한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 때 나의 매질에 아팠을 아이들이며 나의 언행에 아픔을 느꼈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모든 것은 다 같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지난 세상이 아리고도 부끄럽다.

사람이 사람을 헤칠 수 없듯, 자연인들 사람이 헤쳐서 될 일인가. 사람도 자연 속의 한 존재가 아닌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같다고 한다면 산이며 물을, 나무며 흙을 어찌 함부로 대할 수가 있을까. 자연이 과연 사람의 이득과 편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늘 오르고 있는 산에 끔찍한 산판이 벌어져 나무를 마구 잘라 산 한쪽을 초토화 시킨 일이 있었다. 그 상처가 지금도 오롯이 남아 있는 처참한 산자락을 보면 끓는 상심을 다스리기가 어렵다. 사람이라고 저 나무들을 마구 베어낼 수가 있는가.

내 사는 마을 앞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그 물을 보듬고 있는 강둑이 있다. 강둑길 길섶에는 왕벚나무가 줄지어 서서 봄이면 해사한 꽃을 현란하게 피우고, 길에는 온갖 풀이며 갖은 풀꽃들이 철철이 일매지게 피어 강둑은 온통 꽃의 세상, 풀의 천지를 이룬다.

사람들은 그 강둑길을 포장해 달라며 관청에 민원을 넣었다. 요즈음 같이 좋은 세상에 잡초 성성한 흙길을 어찌 두고 볼 것이냐는 것이다. 차도 별로 다닐 일이 없는 길이건만 관은 민의 말을 들어 강둑길 한 자락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남은 자락도 회반죽으로 마저 휘덮을 것이라 한다. 강둑길을 아름답게 수놓던 풀꽃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 꽃을 즐기며 걷던 내 아침 강둑 산책길의 발길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둑길 씌우는 일을 안타까워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고루하다고 한다. 낡은 관념이나 습관에 젖어 고집이 세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는 말이겠다. 내 생각이 낡은 관념일까.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옹고집일까. 고루하지 않기 위해서는 저 민둥산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야 하고, 잡초 무성한 비포장 강둑길이 편리하게 포장되었다고 박수라도 쳐야 할까. 내 비록 고루한 사람이 될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든, 사람과 자연 사이든 차별 지울 일, 헤칠 일 없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거두고 싶지 않다.

나는 오늘도 내 하루의 절정을 바라며 해거름 산을 오른다. 나무가 잘려나간 산자락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숲속 길로 든다. 풀과 나무가 있고 새소리 바람소리가 살아있는, 나를 언제나 정겹게 싸안아 주는 이 조그만 산이 좋다. 명승 절경을 가진 높은 산이 부럽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은 다 같지 않은가.

오늘은 차별도 없고 헤침도 없는 세상에 마음을 오로지하며 오르고 싶다. 무도한 사람살이가 없는 세상, 모든 것이 다 같은 세상을 그리며 하루를 장엄한 노을빛으로 마무리 짓고 싶다.(201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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