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산처럼 살다보면

이청산 2015. 12. 14. 11:30

산처럼 살다보면

 

오늘도 해거름 산을 오른다. 내 하루를 장엄하게 정화하는 시간이다. 오솔길도 걷고 가풀막도 올라 능선 길에 서면 삶의 번다한 모든 일을 다 털어버린 듯한 정밀감이 온몸에 스며든다.

그 편안한 고요 속을 걸어 마루에 이르면 일망무애로 보이는 세상의 풍경, 정경들-. 멀고 가까이에서 큰 울바자처럼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산, 산들이 정겹다. 그 기슭에, 비탈에, 골짜기에 몸을 붙이고 있는 집, 집들이 따뜻하다. 그 집들 사이에 뻗은 길이며 펼쳐진 들판들이 아늑하다. 그 길을 달리고 있는 장난감 같은 차들이 즐겁다.

세상의 자유와 평화를 다 모아 놓은 것 같다. 아니, 저 풍경들이 바로 원시의 자유 천지요, 평화 세상이 아닐까. 저 정경들 속에 어찌 시기며, 쟁투며, 증오며, 분노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누구를 미워해서, 누가 누구에게 아픔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저 어느 마을, 그 집들을 들러보면, 산마루에서 감격에 젖던 자유와 평화가 사랑과 행복을 안고 고즈넉이 깃들어 있는 집들이 모여 살고 있지만, 증오와 분노의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집도, 그런 사람도 없지를 않다.

우거진 숲을 내려다본다. 소나무, 벚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으로 울울한 산은, 지금은 거의 모든 나무가 질 잎은 다 지고 맨살의 가지들만으로 서 있지만, 이런 철에도 푸른빛으로 산의 생기를 지키고 있는 것은 언제나 푸른 침엽의 소나무, 향나무 들이다.

온갖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울긋불긋 현란한 꽃을 피우기도 하고, 푸름으로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란, 우리에게 그 얼마나 아늑한 황홀감이며, 싱그러운 청량감을 주는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생명감이 절로 솟구친다. 특히 매운 설한풍에도 끄떡없는 저 소나무를 보고, 사람들은 세한삼우(歲寒三友)의 하나로, 절의 굳은 오우(五友) 중의 하나로, 또는 철갑을 두른 듯한 모습으로 찬탄해 마지않았다.

나무들의 세계에도 마냥 청량감과 생명감만으로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시샘이 있고, 쟁투가 있어 그것을 용기 있게 이겨내는 건 살고 그렇지 못한 것은 죽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산을 오르다 보면 죽어가고 있거나, 죽어있는 것은 거의가 그 독야청청(獨也靑靑)의 소나무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산에는 참나무 무리와 벚나무 같은 활엽수들이며, 노간주나무, 소나무, 향나무 같은 침엽수들이며 온갖 푸나무들이 섞여 살기 마련이다. 그 중에 소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우점종(優占種)이 되지 못하면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판판이 져서 급기야 말라서 죽고 만다. 또한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햇빛요구도가 높아서 활엽수들에 가려 햇빛을 원하는 대로 못 받으면 고사하게 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소나무여! 여느 나무들처럼 잎과 꽃이 필 때 피고, 질 때 져서 서로 어울려 생사를 함께 함이 어떠할까. 다른 나무들보다 우점도(優占度)가 높아야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단한 삶의 행태인가? 햇빛요구도가 높아 다른 나무들보다 많은 햇살을 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더불어 살지 못하는 외고집의 성질 탓이 아닌가.

소나무가 그렇게 죽어갈 때 다른 나무들을 얼마나 증오하고, 그 분노 또한 얼마나 컸을 것인가. 지난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니 오늘 산에는 고사목이 된 둥치 커다란 소나무 하나가 맥없이 넘어져 있다. 질시와 분쟁(忿爭)의 간난한 한 생애를 마치고 쓰러져 누워버렸다.

살다보면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있고, 센 사람도 약한 사람도 있고, 향기로운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만이 뛰어나려고 하다보면, 자기패들만이 어떤 힘을 더 누리려 하다보면 소나무처럼 저렇게 스러져가야 할 것 아닌가. 증오며 분노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시기와 쟁투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자기만을 위하려는 데서 회오리치는 게 아닐까.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모여 놀며 모둠밥도 함께 먹는데 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 물론 자기 형편을 따라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오지 않는 사정이 오늘 이 곳엔 한 사람만 빼고 다 왔습니다.”라는 수레국화(이규리)’ 시구(詩句) 같은 애틋한 모습이면 차라리 정겹지 않으랴만, 마을사람들은 그를 두고 다른 나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소나무 같은 성질 때문이 아닐까 하며 안타까워했다. 철을 따라 잎이 져도 다시 피고 무성해지는 여느 나무 같은 사람일 수 있기를 바랐다. 살다보면 무슨 일이 없으랴며-.

어떻거나 역시 산이 좋다. 산에는 모든 것이 어우러져 산다. 나무도 살고 짐승도 산다. 큰 나무도 살고 그 사이에 작은 풀도 산다. 산 것도 살고 죽은 것도 산다. 철을 맞추어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지고, 잎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새롭게 돋아난다.

산처럼, 산의 나무처럼 어우러져 살다보면, 꽃도 피고 잎도 피고 한철 돌아 다시 살 수 있을 것도 아닌가. 넘치는 생명감으로 청량감을 안고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그 장엄한 산에서 내 하루를 장엄히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정 많은 사람들 어우러져 살고 있는 마을, 새 햇살이 번져올 고샅으로 내려간다.(201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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