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찢어진 느티나무

이청산 2015. 10. 13. 21:19

 

찢어진 느티나무

 

 

강둑 곁에 느티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서 있다. 나무에 끼인 세월의 이끼며 더께로 보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이테가 그어져 있을 것 같지만, 누구도 나이를 정확히 아는 이가 없다.

마을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이 가는 한 나무는 밑동의 굵기가 세 아름 남짓 되는데 삼십여 년 전에 보호수로 지정하면서 나이를 삼백 년 쯤으로 추정한 것을 보면, 삼사백 년 연륜은 실히 감겨 있을 것 같고, 한 나무는 한 아름 남짓 되니 그것도 백 년 세월은 거뜬히 품고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작은 나무는 큰 나무의 씨로 이 세상에 태어났거나 큰 나무에서 번져 나와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두 나무는 서로 살붙이의 관계를 이루고 있을 법한데, 어쨌든 그들은 나란히 어깨를 겯고 정답게 살고 있다.

원래는 강가에 서서 물에 그림자를 지우며 강의 정취를 돋우어주었다 하나 둑을 쌓으면서 강 밖으로 나앉게 되었는데, 강둑에 그늘을 드리워 여름이면 마을사람들의 시원하고도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다. 지난봄에는 관서에서 나무 밑에 정자를 놓아주어 그늘의 운치를 한층 그윽하게 한다.

사방으로 듬직한 가지들을 우람하게 뻗고 오랜 세월을 의젓하게 서 있는 큰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지나온 내력들을 다 품고서 마을을 은근히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존재로 우러르며 밑동 둘레에는 항상 금줄을 쳐 놓고 주위를 정갈하게 가꾼다.

작은 나무도 숱한 비바람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이테를 더해가는 사이에 많은 가지를 뻗게 되었는데, 큰 나무가 서 있는 북쪽으로보다 남쪽으로 더 커다란 가지를 뻗어나갔다. 따뜻한 남쪽을 좋아하는 속성을 따라 그렇게 가지를 뻗었겠지만, 혹 큰 나무의 그 신성에 차마 범접할 수 없어 다른 쪽으로 가지를 뻗은 것은 아니었을까.

밑동에서 올라온 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난 가지 하나는 제게 감겨오는 세월의 무게와 함께 굵고 크고 길게 묵직한 몸피를 이루고 뻗어 있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앙상한 가지에 봄이 오면 잎눈이 트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우거진 잎으로 두터운 그늘을 드리운다. 사람들은 정자에 앉아 그 청량한 그늘을 즐기며 가문 여름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부터 고대하던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밤새 내리던 그 비를 생광스럽게 여기며 맞은 아침은 밝은 해가 뜨면서 하늘도 들판도 눈부시게 맑고 깨끗했다. 나뭇잎들이 한결 푸르러 보이고 새소리도 한층 새뜻하게 들렸다.

여느 때처럼 아침 산책길을 나섰다. 달맞이꽃이며 무릇꽃, 칡꽃 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윤슬 반짝이는 강물을 따라 강둑 정자께를 지나는데, 큰 가지 하나가 떡하니 주저앉아 길을 막고 있다. 누가 일부러 베어와 길을 막았나? 주위를 둘러보니, 아뿔싸, 작은 느티나무의 남쪽 가지가 둥치에서 찢어지면서 땅으로 내려앉아버렸다.

모처럼 내린 큰비를 맞고 더 이상 제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같다. 가지라 하지만 그 밑동 굵기도 근 한 아름은 될 듯하고, 길이 또한 열댓 발이 넘을 것 같다. 그 무게를 지탱하기가 얼마나 힘이 들면 원줄기에서 찢어지면서 내려앉았을까? 원줄기의 찢어진 자리를 보노라니 마치 내 육신 어디가 찢겨나간 듯 섬뜩한 아픔이 저미는 것 같다.

이 나무가 저 큰 나무의 살붙이라면, 좀 더 가까이 안아주지 못했던 것을 마음 아파하고 있을까. 반듯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살뜰히 살펴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을까. 커다란 몸의 한 부분이 찢겨나간 저 나무는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자발없이 한쪽으로만 몸피를 키운 우둔을 뉘우치고 있을까? 그리 찢어질 때까지도 버팀목 하나 받쳐줄 줄 모르던 인간의 몰인정을 탓하고 있을까?

인간의 비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거목의 가지가 내려앉아 길을 막고 있다고 관서에 알렸더니, 사람들이 기계를 가져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원줄기에서 완전히 떼어내어 토막토막 사정없이 잘랐다. 잔가지는 흩어놓고 쓸 만한 토막은 어디론가 싣고 가버렸다. 가지가 잘려나간 통나무에는 속이 썩은 텅 빈 구렁만 휑하게 남았다.

사람만 어찌 정 없다 하랴. 나무는 가지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지를 못했을까. 한 쪽만 그토록 키워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까. 이쪽저쪽이 균형을 이루어 반듯하게 살지 못해 한 쪽이 찢어져 내려앉아야만 했던가. 내려앉아 길을 막고 있는 일을 어찌해야 할까. 찢어진 한 가지만의 아픔이 아니라 몸의 한 부분이 찢겨나간 저 온 나무의 불행이다.

찢어진 가지를 잘라내고 사람들은 다시 남은 그늘에 앉았지만, 가지를 잃은 나무는 서 있는 품조차 아릿하게만 보여, 아픔을 다스리지 못한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나라에서는 균형 잡힌 역사교육을 부르짖고 있다. 나라가 가지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해 한 쪽이 찢겨 내려앉아야 했던 저 나무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201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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