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치유의 산을 오른다

이청산 2015. 1. 11. 21:55

치유의 산을 오른다

 

오늘도 노을을 뿌리는 해를 안으며 산을 오른다. 내 일과의 정점을 향해 걷는다. 이 시간을 바라보며 오직 낮의 시간들을 살았다.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면 내 하루는 정리기에 들어 내일을 예비하게 된다. 늘 맞이하고 보내는 나의 일상이다. 산에는 나무들과 바람소리, 새소리뿐이지만, 그러나 산에는 내가 바라는 것이 다 있다.

세상에는 사랑할 일도 많지만 미워할 일도 없지 않다. 즐거운 일도 많지만 고달픈 일도 없지 않다. 세상을 흘러가는 뉴스들은 또 어찌 그리들 시끌벅적한가. 온전할 날이 없다. 어디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어떤 이들은 서로 무슨 아귀다툼을 하고,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해코지하고…….

낮은 그런 것들이 세상을 얼룩지우는 시간이라면 내가 산을 오르는 시간은 그런 것들을 걷어내는 시간이다.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산을 향해 발자국을 옮기는 순간부터 그것들은 나에게서 걷혀 나간다. 나를 범접할 엄두도 못 낸다.

산으로 들어선다. 내 감각을 소란스럽게 하던 세상의 모든 일들은 나에게서 떨어져나간다. 이제 나는 나무만 보고, 바람소리, 새소리만 들으면 된다. 그 속에 들어 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면 된다. 아니, 내가 그들이 될 것이다.

내가 오늘 보는 나무는 어제의 그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어제와 오늘 불어온 바람이 다르고, 가지며 잎의 모양도 어제 같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무는 어제 그대로 서있다. 바람이 아무리 사나워도, 그 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좀 떨어져 나가도 초연히 서있을 뿐이다.

조금 싫다고 되바라지고, 조금 좋다고 엎어지는 이는 누구인가. 정은 무엇이고 샘은 무엇인가. 득은 무엇이고 실은 또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고 너는 어디서 무엇인가. 무엇을 가르고 찢으려는가. 나무는 의연하게 서서 흐르는 세월을 맞고 보낼 뿐인 것을-.

숲속을 든다. 소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노간주나무. 벚나무, 생강나무……. 나무의 종류는 인간의 종족보다 많다. 그것들이 나서 살면서 서로 무리는 지을지언정, 어떤 것들은 서로 좋아해서 가까이 하고, 어떤 것들은 서로 싫어해서 물리치려하지 않는다.

나의 산길 어느 한 곳에 뿌리 자리를 함께 두고 태어난 소나무와 벚나무가 있다. 백여 년 수령은 되었음직한 이 나무들이 조금씩은 굽고 휘어지기도 하면서 서로 가지를 결어가며 정답게 살고 있다. 나는 그들을 부부목이라 부르며 즐거이 바라본다.

나무라고 다 곧게 뻗기만 할까. 굽고 휘고 비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할지라도, 때가 되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그 순명이 바라볼수록 외경스럽다. 때로는 거친 비바람이며 쌓이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퀭한 몰골로 제자리에 드러눕는 때가 오더라도, 제가 지키던 자리에서 다시 생명의 거름이 되는 것을 오히려 즐거운 순명으로 여길 그들이다.

바람소리가 지나간다. 어느 시인은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기도하는 것(이문재, ‘오래된 기도’)이라 했던가.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마치 어느 현악기가 맑게 연주하는 노래의 한 구절 같다. 바람도 산에 들면 숨을 죽인다. 미친바람도 산속에 들면 청량한 노래 소리의 한 구절 되어 지나간다.

무엇이 바람을 저리 다소곳하게 만드는가. 깊고 얕은 골짜기며 높고 낮은 등성이, 보드라운 잎들을 자욱이 달고 있는 나무들이 아니던가. 거친 바람이 때로는 나무를 쓰러뜨리고 가지에 생채기를 지울지언정 끝내는 순해지고 만다. 세상에는 그런 산이 없을까. 세상의 험한 바람을 착하게 다스릴 수 있는 그런 산이 없을까.

새들이 지저귄다. 잘 어우러진 합창곡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새소리는 새가 우짖어 내는 소리가 아니라 나뭇잎이 만들고 나뭇가지가 조율하는 소리 같다.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서야 비로소 음률을 만들고 화음을 이루지 않는가. 산은 조용히 그 소리를 품어 울림을 만들고 메아리를 우려낸다. 산의 그윽한 선물이다. 모든 소리를 품어 아름다운 화음을 엮어내는 그런 산 같은 세상이 어디 없을까.

산을 걷는다. 나무들 속을, 바람소리 새소리 속을 걷는다. 걷다가 보면 내가 어느 새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된다. 내가 이들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한소끔 풍경이 된다. 절로 그리 되고 만다. 세상 어느 곳에 원망과 저주가 있고, 애탐과 몸부림이 있다던가.

산은 모든 것을 씻어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치유해 준다. 아내의 쟁쟁한 잔소리마저도 아주 아늑한 사랑의 소리로 만들어 준다. 산은-.

 

나의 치유는 너다.

달이 구름을 빠져나가듯

나는 네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는 내게 그 모든 것이다.

                                 -김재진, ‘치유

 

실로 나는 산에게 아무 것도 아니지만, 산은 나의 모든 치유다. 오늘도 그 치유의 산을 오른다. 산의 마루에 이르러 내 하루는 정점을 찍는다. 산마루에서 바라보고 내려다보는 세상이란 모든 것이 평화 아닌 게 없다. 멀고 가까운 저 산들, 얼마나 평화로운가. 저 아래 오순도순 모여 사는 마을들이란 얼마나 고요한 평화인가.

문득 그리워진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게 모든 것이고 나의 치유인 그가 그리워진다. 저 순정한 나무들이며 새소리 바람소리 사이 그 어디에 순정한 풍경이 되어 있을 그를 그리며 산을 내린다. 이윽고 마을에 이르면 내 하루는 평화로운 정리를 시작한다.

새날의 아늑한 평화를 그리면서-.(20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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