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탈춤과 유교의 고장 안동을 가다

이청산 2014. 10. 2. 21:52

탈춤과 유교의 고장 안동을 가다
-수필대전 팸투어 참가기

 

경북문화체험 수필대전, 그 영광의 입상자들과 입상자를 태어나게 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팸투어의 길을 달리고 있다. 행사를 주최한 대구일보 사옥 앞에서 출발한 차는 중앙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려 나간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하지만, 이 번 여행은 특별히 새로운 일이 많은 것 같다. 여행 과정에서 맞이할 세계들도 새로운 경험들이 될 터이지만, 한 지역의 문화를 소재로 한 수필을 공모하는 것도, 그 입상자들과 함께 팸투어를 하는 것도 세상에 드문 신선하고도 특별한 일이 아니랴.

특정한 지역을 알리기 위한 초청 홍보 관광을 팸투어라 한다고 했다. 또한 팸(fam)의 본딧말인 familiarization’친하게 하기라는 뜻을 지닌 말이라고 했다. 이번 투어를 통하여 우리의 향토 경상북도와 더욱 친하고, 오늘 여정을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과도 더욱 친하게 하는 것으로 행사의 뜻을 새겨 나가야 할 일이다.

차에 오르자 먼저 신문사에서 대상 당선작 강별모 님의 봉정사 단청과 입상자 명단이 실린 신문을 나누어 주었다. 대상작은 심사에서도 읽은 기억이 있지만, 다시 읽어보니 정목일 심사위원장의 평대로 당장 봉정사로 달려가고 싶게 하는충동이 느껴지게 하는 글이었다. 신문에는 오늘 투어에 함께 참여하는 심사위원 권순진 시인이 연재하고 있는 맛있게 읽는 시,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김용락)’도 실려 있다. 우리는 지금 관광버스의 즐거운 소리 속을 달리고 있다.

오늘 투어의 모든 추진 업무를 맡아 수고하는 김서정 간사께서는 행사 취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참가자들을 소개하면서, 공영구 운영위원장, 정목일 심사위원장께 인사말씀을 청한다. 공 위원장의 행사 운영에 대한 인사에 이어, 정 위원장께서는 인생의 경지가 곧 작품의 경지라는 취지의 심사소감을 말씀하고, 참석자 모두 돌아가면서 스스로를 소개하고 인사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내 차례에 이르렀을 때 나는 신문에서 본 김용락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오늘의 투어가 인생에 대하여 혹은 문학에 대하여……거대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자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오늘의 첫 목적지인 풍산읍 하회마을 인근의 찜닭 요리로 이름난 어느 음식점에 닿았다. 갖은 양념을 넣어 요리한 찜닭이 오늘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처럼 부드럽고도 짭짤한 맛으로 당겨왔다.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로 간다. 마을 어귀에 이르러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 부용대가 건너다보이는 만송정 숲속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모인 관중들이 숲을 메웠다. 강을 배경으로 한 야외무대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신명나게 펼쳐진다. 각시가 무동을 타고 등장하는 무동마당으로 시작한 놀이마당은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의 익살과 해학이 이어지면서 서로 학식과 신분을 자랑하며 다투는 양반, 선비마당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김 간사께서 시상식 일정이 바쁘다며 일어서자고 한다. 진정한 선비와 양반은 시상식에서 만나기로 하고, 놀이과정을 스케치하고 있는 어느 외국여성의 화판을 곁눈질하며 바쁜 걸음으로 차에 올랐다.

잠시 달려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6호 안동김씨 태장재사(台庄齋舍) 이상루(履霜樓)에 닿았다. 고색도 창연한 태장재사는 인동김씨 시조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의 묘단을 지키고 제사를 모시기 위해 조선 영조 26(1750)에 건립한 건축물이라 한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이룩된 수십여 칸의 재사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자형 본채와 자형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고, 시상식이 열리는 자형 이상루는 묘제 후의 음복과 문중회의를 위해 구축된 곳이라 한다.

이를 어쩌나! 김선평은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등 삼태사와 함께 고려 태조 13(930) 후백제 견훤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견훤의 군사를 대패시켰다는데, 지금 여기에 견훤(甄萱)의 후손인 견일영(甄一英) 심사위원님이 와 계신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매사에 호방하신 견 선생님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입상자들을 따뜻이 축하했다.

이상루 너른 강당에 이후혁 대구일보 사장을 비롯한 입상자들과 심사위원, 운영위원, 신문사 관계자들이 임석한 가운데 시상식이 열렸다. ‘묵언행(黙言行)’글의 힘의 중요함을 역설한 사장님의 인사에 이어 대상작부터 사장님과 운영위원들에 의해 시상이 진행되어 나갔다. 수상자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언제 준비를 한 것인지 꽃다발을 안기기도 하는 사이에 축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시상이 끝나고 공영구 운영위원장이 시상식에 이르기까지의 운영 경과를 보고하고, 정목일 심사위원장의 소재에 대한 안목, 해석을 통한 영혼 교감을 강조하는 심사평이 이어졌다. 정 위원장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입상 등위에 서운함을 느낀 듯한 어느 수상자가 결기를 세우며 일어나 심사기준을 따지듯 질의하여 좌중이 잠시 서먹해지기도 했지만, 심사위원장께서 내용과 문장력도 좋아야 하지만 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친절한 답변으로 시상식을 축복 속에서 끝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내가 예심을 본 작품 중에 소재를 보는 눈과 문장 구성은 뛰어난데, 어디에 있는 곳을 두고 쓴 글인지가 불분명하여 입상권에서 제외하려다가 다른 부분을 높이 사 예심을 통과시켰더니, 다행히 본선 입상작으로 선정된 글이 있었다. 그 작품이 우리 경북 문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다는 상의 제정 취지에 조금만 더 충실했더라면 더욱 높은 등위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식이 끝나자 태장재사 이신자 관장은 이후혁 사장님을 비롯한 몇 분을 내실로 초대하여 이 차를 마시면 밤에 아주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향기 그윽한 국화차를 권했다. 이 관장의 후덕한 인심과도 같은 아늑한 향기가 찻잔 속을 감돌았다.

명품 고택에서의 하룻밤 잠자리를 기약하고, 일정을 따라 자리를 옮겨 풍산 읍내의 농장주가 직영한다는 안동한우 전문음식점으로 갔다. 먹거리를 살피는 일도 이번 투어의 뜻 있는 한 부분일 터이다. 저녁 메뉴는 한우불고기다. 빛깔 좋은 고기가 불판에서 느긋이 익어가는 모양이며 구수한 냄새가 점잖은 양반의 고장 안동의 지취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입속에 서린 맛의 여운을 새김질하며 식당을 나서 다시 차를 타고 ‘2014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리는 운흥동의 탈춤공원으로 갔다. 우리의 안동 투어를 환영이라도 하듯 때맞추어 오늘 저녁에 개막식이 열린다고 했다. 인산인해를 이룬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는 의식이 끝나고, 고막을 찢을 듯한 음악소리와 함께 개막을 축하하는 탈춤판이 화산처럼 폭발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어깨가 들먹여지는가 싶더니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나라의 춤꾼들이 나라마다 특색진 의상과 가면 장식으로 객석을 가로질러 무대로 나아가 요란하고도 현란한 춤판을 벌인다. 사회자는 관객들도 함께 일어나 춤출 것을 외쳐댔지만, 관객들의 몸은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안동이 온통 세계의 춤판 속으로 함몰되는 듯한, 세계의 춤판이 온통 안동을 휘덮는 듯한 환각에 취하는 순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는 색색 가지가지 무늬로 수놓아지는 불꽃이 관객들의 신비감에 찬 환호성과 더불어 명멸하기를 거듭했다.

온 안동이, 온 세계가 오늘의 수상자들이며 우리의 팸투어를 축복하기 위해 벌이는 듯한, 성대하고 찬란한 페스티벌 개막 행사가 스러지는 불꽃과 함께 끝난 것은 8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우리를 태울 차는 9시경에 오기로 했기에, 자투리 시간을 거두어 흩어져 있던 일행 중에서 만난 정목일, 견일영 선생님과 먹거리 장터를 찾았다. 붐비는 손님들 속에 겨우 자리를 얻어 막걸리 한 병을 앞에 놓고 앉아 오늘의 투어를 돌이키며 문학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오붓한 담론을 즐기는 사이에 돌아갈 시각이 다가섰다.

태장재사로 돌아왔다. 서너 사람씩 나누어 방 한 칸씩을 차지했다. 제사를 지낼 때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을 유숙시키기 위한 방들이라는데, 모두 황토방이라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견일영, 송일호, 권순진 선생님들과 한 방에 들었다.

마주 보이는 이상루에 주안상이 차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누각에 다시 모여 앉는다. 견 선생님과 나는 늦은 밤의 식음이 부담스러워 문을 닫고 있으면서, 누각에서 들려오는 화기와 호기에 찬 말소리들로 함께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내가 차중 인사에서 설파(?)했던 것처럼 인생에 대하여, 혹은 문학에 대하여거대한 담론을 나누고 있는 소리들임이 분명할 것 같다. 나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위안을 가지며 스르르 잠결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택 객방의 날이 새었다. 문을 열고 방을 나서니 사위를 감싸고 있는 안개가 고즈넉한 삼백년 고택이며, 울울히 솟아 있는 솔숲, 재사 앞의 김태사신도비각이 한데 어울린 풍경을 몽환적인 신비에 젖게 했다. 이승 아닌 다른 세계 속에 발을 딛고 서있는 듯했다.

인심 좋은 이 관장이 이상루 추녀 끝에 달린 북을 몇 번 치고는 밤새 잘 주무셨느냐고 외치며 모두들 아침 드시라 한다. 뷔페로 차린 밥과 찬을 쟁반에 담아 두 줄로 놓인 상 앞에 앉았다. 이 관장은 밥맛, 찬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예사 나물들 같아도 인공 조미료며 감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효소로만 조리한 약선 요리들이란다. 약효를 위해서는 커피는 세 시간 후에 드시는 것이 좋다고도 했다. 그래서인가. 밥맛도 찬 맛도 아주 별스럽고 정갈한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행장을 꾸려 이 관장의 긴 손길을 뒤로 하며 태장재사를 나선 것은 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잠시 길을 돋우어 성곡동 관광단지로에 있는 유교랜드라는 곳에 닿았다. 무려 430억 원을 투입하여 연면적 13,349에 지하 2, 지상 3층으로 건립하여 유교문화를 중심 주제로 하는 테마파크형 체험 센터로 작년 6월에 개관했다고 한다.

타임터널이라는 걸 통과하여 안으로 드니, 유교의 근본이념인 인, , , , 신을 바탕 주제로 하여, 유교의 이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대동마을과 소년, 청년, 중년, 노년으로 나누어 보여주는 선비의 일생, 그리고 참선비의 모습을 첨단 기법의 각종 영상 장치와 조형물들을 이용하여 보여준다.

과연 선비의 고장 안동다운 시설이라는 생각과 함께 날로 거칠어져 가는 인심과 윤리를 순화하고 정화할 수 있는 좋은 장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러한 이념의 교육을 위하여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관광 상품화하는 현실이 조금은 비감스럽기도 했다. 이러한 이념과 그 역사를 강조하지 않아도 편안히 살 수 있는, 인위의 이념이 아니라 무위의 이법만으로도 정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기대와 아쉬움을 함께 품으며 유교랜드를 나서 성곡동 민속촌길의 안동민속박물관으로 간다. 민속박물관에서는 지난날 조상들이 겪어 왔던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을 재현한 모형물로 보여준다. 그리 먼 역사도 아닌 바로 우리 선대들이 살고 겪어왔던 여러 가지 풍속, 풍습, 의례들을 보면서 고향을 찾은 듯한 감회에 젖기도 했지만. 애환 서린 삶의 모습들이 아릿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역시 안동의 특징적인 유교적 이념과 가치가 배어 있는 모습들이기도 했다.

점심이 약속된 시각에 쫓겨 박물관을 바쁜 걸음으로 나와 안동의 전통적인 별미라 할 수 있는 간고등어 전문식당으로 갔다. 입에 익은 수수한 반찬들의 중심 자리를 차지한 짭조름한 간고등어가 안동인의 삶의 역사와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제 안동을 보고 듣고 먹고 느끼던 팸투어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안동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던가. 어제 우리가 본 안동은 탈춤의 고장이었고, 오늘은 유교의 고장이었다. 안동은 유교의 창창한 이념으로 예의와 염치를 바로 세우고, 풍속과 인심을 바르게 닦아 나가던 선비, 양반의 삶의 터였다. 그러나 세상은 숨 막힐 듯한 예의와 염치만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그 막히는 숨의 돌파구를 바로 탈춤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탈 뒤에서 벌이는 익살과 해학으로 삶의 윤기를 살려내곤 했던 것은 아닐까.

기막힌 조화다. 숨 막히는 그 인위(人爲)의 질서가 탈에 담은 자연의 익살로 숨통을 얻고, 무위(無爲)의 해학으로 인의(仁義)를 삭혀 나가던 그 지혜가 얼마나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안동의 힘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 그 안동의 힘을 얻고 간다. 예의의 질서는 바르게 가지되 해학의 여유를 잃지 않는 삶의 모습을 얻어 간다. 그 모습과 더불어 안동을 친하고, 밤 잔 이틀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서로 친해진 그 (fam)’을 안고 우리는 돌아간다.

귀로를 달린다. 어제 오늘 잠시도 쉴 겨를 없는 노심초사로 투어를 건사해 오던 김 간사께서 귀로의 소회를 풀어볼 것을 제의한다. 대구일보 사외 논설위원이기도 한 권순진 시인의 진행으로, 강별모 대상 수상자가 시상식장에서는 미처 다하지 못한 소감을 곡진하게 개진하고, 원로 소설가이며 수필가인 송일호 심사위원님의 열띤 문학 창작 강의에 이어, 대학생 입상자 중의 이상혁 님, 여성 입상자 중의 조희정 님, 그리고 특이하게 5회의 공모 행사 중 연 4회를 입상한 김필우 님의 입상과 글쓰기에 대한 각별한 회포를 엮어내는 사이에 우리는 모두 한뜻의 동인(同人이 되어 가는 듯했고, 정겨운 친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 동인과 친구를 실은 차는 군위휴게소를 거쳐 대구에, 대구일보 사옥 앞에 이른다.

뜻 있고 보람된 수필대전이며 팸투어를 있게 한 대구일보와 경상북도, 그리고 진행에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김서정 간사께 박수를 모으며 차를 내린다.

다시 만날 기약은 할 수 없지만, 어제 오늘 우리가 쌓은 동인과 친구 된 기억들은 오래도록 간직하자며 잡은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콩트를 잘 쓰시는 소설가님의 지난밤 익살이 다시 쟁쟁히 울린다.

이 번 팸투어 정말 좋아요! 내년에도 꼭 좀 불러 주이소~! 하하(201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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