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가을 논들에 서면

이청산 2014. 10. 9. 14:40

가을 논들에 서면

 

찬 이슬 내리고 한창 추수 때가 되는 한로 절기가 며칠 남지 않았다. 바야흐로 들판은 점점 짙은 금빛을 띠어가고 있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논들에 서면 더는 모자란 것이 없을 듯 마음이 유족에 젖는다. 토실한 낟알을 튼실히 달고 묵직하게 고개 숙이고 서 있는 품이 믿음직스럽기도 하려니와 말할 수 없는 충만감과 풍요를 느끼게 한다.

저 빛깔을 두고 금빛이라 하지만 황금 보석처럼 찬란하여 외경스럽게 다가오는 빛이 아니라, 곧장 가슴에 무언가가 안겨올 듯한, 그래서 입가에 미소가 돌게 하는 아늑하고도 정겨운 빛깔이다.

저 아늑한 빛깔의 튼실한 알곡들이 물론, 절로 저리 열린 것은 아니다. 흙과 물과 빛의 적절한 조화와 더불어 농부의 굵은 땀방울의 결과일 것이다.

봄이 오면 마른갈이 물갈이로 논을 갈고, 볍씨를 넣어 모판을 만들고, 적기를 타서 모내기를 하고, 봇도랑을 건사하여 물을 대고, 충해가 못 일게 하고, 피를 가려 뽑아내고……. 숱한 날을 두고 갓밝이를 지고 땅거미를 디디며 해내는 일이다. 오죽하면 여든여덟(八十八) 번 손이 가야 제대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쌀농사라 하여 쌀 미() 자가 생겨났다 했을까.

그 정성의 결정체가 가득한 논들에 서면 지나온 나의 세월들이 불현듯 돌아 보인다. 농부들이 한 알의 알곡을 위하여 저리 정성을 쏟듯, 나는 내 삶 하나 잘 건사하기 위해 얼마나 성심을 다해왔는가.

사실 저 논들에도 알곡들이 풍성하게 차 있는 논이 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피가 섞이고 딴 논에 비해 조금은 미치지 못하는 논도 없지 않다. 농부의 피사리며 충해 막이 손길이 넉넉했거나 모자랐던 차이일 것이다.

한생을 지나 두그루부치기를 살고 있는 내 삶의 논들에 짐짓 얼마나 튼실한 알곡들이 고개를 드리우고 있는가. 설핏 돌아보는 내 삶의 논들에도 피가 적잖이 너불대고 있는 것 같다.

가버린 세월을 어찌 다시 쫓으랴. 오늘 저 알곡을 보며, 헛되고 삿된 욕심에나 이끌리지 말기를 다질 일이다. 저 점잖이 고개 숙인 벼가 무엇을 욕심내고 무슨 대가를 바라랴. 농부들에게 오직 풍요를 안겨주고 미련 없는 한생을 마칠 뿐인 것을.

알곡이 여물어가는 논들에 서면 경건하고도 겸허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벼는 속이 빈 줄기로 알곡을 맺고 여물어 우리의 소중한 양식이 된다. 뿌리가 물속에 있어서 공기를 넉넉히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줄기에 기공(氣孔)을 만들어 산소를 빨아들이느라 속이 비었다고 하지만, 욕심 없는 마음으로 사는 고결하고 자비로운 품성을 지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자식을 향하는 어머니의 가슴처럼 말갛게 빈 속으로 열매를 맺고, 그 속으로 맺은 열매가 밥이 되고, 떡이 되고, 술이 되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근원이 될 뿐 아니라 맛을 주고 즐거움을 주어 삶을 유족하게 하고, 풍요와 환희에 차게도 하는 것이다.

벼 없는 농사, 쌀 없는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우리 민족들에게 있어서야-. 요즈음 대체 먹거리가 아무리 성하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있어서 쌀이 지고 있는 주식(主食)의 소임은 영원히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 맛과 즐거움의 자리는 좀처럼 비켜나지 않을 것이다.

벼의 한생은 우리에게 먹거리의 원천이 되는 것만으로 다하지 않는다. 낟알을 떨어낸 짚은 우리게 또 얼마나 유용한 것인가. 쇠여물 거리로 으뜸이요, 가마니를 짜고, 새끼를 꼬고, 새끼로 덕석, 멍석을 엮고, 이엉 엮어 지붕 이고, 짚신을 삼아 신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야 문명의 발달로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었다 할지라도, 요즈음도 벼 벤 논들에는 짚이 남아날 겨를이 없다. 벼가 짚이 되어 논들에 누워 있으면 베일러(baler)라는 기계가 와서 사각으로 혹은 원통꼴로 뭉쳐 죄다 싣고 가버린다. 사일리지(silage)로 쓰기 위해서다.

이렇듯 벼는 저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다 바친 채 들판을 수련히 비우고 사라진다. 알곡으로 맺어지기까지 농부들이 흘린 수 없이 많은 땀방울에 보답이라도 하듯, 낟알은 물론이요 지푸라기 하나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주고 사라져간다.

어디 그 뿐인가. 속담에 짚불 꺼지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권세나 영화가 하잘것없이 몰락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주 곱게 운명(殞命)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비록 한 줌의 재로 사라질지언정 고아한 맵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벼들이 금빛 충만한 빛으로 출렁이고 있는 가을 논들에 서면, 경배의 손길이 절로 모아진다. 저들과 같은 한생을 살다가, 저들처럼 수련히 사라지고 싶은 바람이 속 깊이 스며든다.

살아서는 생명의 풍요와 환희를 주고, 사라질 때는 긴요한 쓸모를 남기고, 불길로 들어 재로 화할 때조차도 고운 자태로 사그라지는 저 한생을 보면-.(201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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