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시의 푸른 열정 속으로

이청산 2014. 7. 24. 13:11

 

시의 푸른 열정 속으로

-시낭송콘서트를 마치고

 

내일부터 뭘 해야 하지……?”

갑자기 실직자라도 된 것 같았다. 그토록 골똘하게 매달려오던 일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아 허전한 기운이 온몸을 저며 온다.

흥성했던 콘서트가 막을 내렸다. 관객들은 썰물 되어 객석을 빠져 나갔다. 남은 사람들과 출연자들은 무대로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는다. 생동했던 무대를, 찬연한 기억들을 오래오래 잡아두고 싶었다.

지난 두 달 동안은 시만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인 것 같았고, 감정을 추슬러 가며 시를 외는 일만이 오로지 우리의 할 일인 것 같았다.

콘서트의 주제를 여름·의 푸른 열정 속으로라 정하고, 여름처럼 푸른 희망과 뜨거운 열정을 노래한 시를 모아 무대를 꾸며 보기로 했다.

나달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모였다. 어떤 날은 오전 오후로 하루에 두 번씩도 모였다. 낭송가이며 낭송 전문강사인 회장님의 연출과 조언을 받으며 땀 흘려 시를 외고 익혔다.

혼자서 애송시를 낭송하는가 하면, 주제를 정하여 윤송으로, 퍼포먼스로, 시극으로 팀을 이루어 낭송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에 따라 열심히 익혀 나갔다. 나는 내가 쓴 수필을 낭독하기로 했다.

무대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동안 흘려왔던 땀의 날들이 돌아보였다. 콘서트를 계획한 이후 두 달 동안 무려 스무하루를 모여 개인별로 팀별로 한 것을 모두 합쳐 예순여섯 차례의 연습 시간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두 번 무대 리허설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한 시간 남짓한 무대를 꾸미기 위해 그 숱한 시간들을 쏟아 부은 것이다. 혼자서 시를 음미하며 외기를 애썼던 시간까지 합치면 시 한편에 얼마나 많은 힘과 시간을 들였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멋진 낭송 무대를 그리면서 낭송 연습에 애를 쓰기도 했지만, 시를 외고 읽는 게 좋았다. 함께 모여서 서로 호흡을 가다듬고 맞추면서 시를 주고받는 일이 즐거웠다. 모두들 이렇게 늘 시 속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뜻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 땀의 날들 끝에서 드디어 무대가 열렸다. 관객들이 객석을 메우고 무대는 가야금과 아쟁이 어우러지는 오프닝 뮤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듀엣 낭송으로 함께하는 여는 시에 이어, 오늘의 콘서트가 시와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고양시켜, 그 삶에 푸름과 열정을 더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회장님의 인사 말씀, 그 다음이 나의 수필 낭독 순서다. 지난 해 여름에 쓴 샐비어를 낭독했다.

……내 삶의 길이 흘러가고, 불타고 있는 샐비어가 흘러간다. , 나는 언제 삶을 그렇게 불태워 보았던가. 나의 불탈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라며 감회 어린 어조로 끝을 맺었다. 샐비어 붉은 빛 같은 삶의 열정을 그려보고 싶었다.

내 열정의 삶을 채근하는 소린가. 빌어주는 소린가. 환호 소리와 박수소리가 소나기처럼 무대로 쏟아져왔다. 저 소리들이 나를 오늘 이 무대에 서게 한 것도 같았다.

무대는 우리가 얽어 놓았던 프로그램대로 사랑과 열정을 노래하는 독송이며, 독도 사랑을 주제로 한 시 퍼포먼스, ‘그 여름 속으로를 표제로 삼은 윤송, 낭송을 짧은 드라마로 엮은 시극의 순서가 차례대로 펼쳐졌다. 객석은 환호와 박수의 도가니가 되어 갔고, 출연자들은 무대를 내려오며 요동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지막 순서로 실용음악가인 한 회원과 기타 연주를 즐겨하는 회장님의 기타 노래가 이어졌다. 잔잔한 가락으로 울려 퍼지다가 흥겨운 가락의 노래로 이어지자 관객들은 손뼉으로 흥을 함께하면서 객석과 무대, 관객과 출연자가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갔다. 그리고 모든 순서가 끝났다. 무대가 막을 내렸다.

기념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모두들 무대를 내려왔다. 수고와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흩어져 갔다. 객석이 텅 비어졌다. 비어진 것은 객석만이 아니었다. 출연자들의 가슴속들도 모두 휑하니 비어진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 내일 아침 산책을 걸으면서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지? 무엇을 생각하며 길 떠날 차를 기다려야 하지? 오늘 외웠던 시들이 내일도 오늘처럼 간절하게 새겨질까? 어딜 가면서도 무엇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시가 살아 꿈틀거리던 날들이 아득한 그리움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텅 빈 가슴을, 이 허전을 어이하랴! 그 명멸했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아직도 눈과 귀에 쟁쟁한 감동에 젖던 관객들의 모습, 그 환호, 그 박수 소리-. 가슴속 허전의 자리에 채워 넣는다. 삶이 힘들고 쓸쓸할 때 힘이 될 것도 같다는 생각도 함께 거두어 넣는다.

문득 한 구절의 시를 떠올린다.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조병화, 늘 혹은)

그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내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은, 그 무대의 기억이 내 삶에 무늬가 되어 있다는 것은 내 살아 있음의 얼마나 명확한 확인인가?

우리가 낭송했던 시들로 인하여 사람들의 삶에 아름다움을 더해줄 수 있고. 우리의 삶도 보다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다면, 이 또한 내 살아 있음의 얼마나 빛나는 확인인가?

내년의 더욱 아름다운 감동으로 수놓을 콘서트를 기약하며 새로운 시를 찾아 가야겠다. 여유 있는 걸음으로 그 푸른 열정 속을 걸어 들어야겠다.

그 걸음을 다짐하며 우리는 오늘의 뒤풀이 마당으로 걸음을 옮겨간다. 새로운 시가 기다리고 있을 걸쭉한 뒤풀이 마당으로 간다.

거리를 불어오는 여름 밤 바람이 청량하다.(201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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