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뭘 해야 하지……?”
갑자기 실직자라도 된 것 같았다. 그토록 골똘하게 매달려오던 일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아 허전한 기운이 온몸을 저며 온다.

흥성했던 콘서트가 막을 내렸다. 관객들은 썰물 되어 객석을 빠져 나갔다. 남은 사람들과 출연자들은 무대로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는다. 생동했던 무대를, 찬연한 기억들을 오래오래 잡아두고 싶었다.
지난 두 달 동안은 시만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인 것 같았고, 감정을 추슬러 가며 시를 외는 일만이 오로지 우리의 할 일인 것 같았다.
콘서트의 주제를 「여름·詩의 푸른 열정 속으로」라 정하고, 여름처럼 푸른 희망과 뜨거운 열정을 노래한 시를 모아 무대를 꾸며 보기로 했다.
나달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모였다. 어떤 날은 오전 오후로 하루에 두 번씩도 모였다. 낭송가이며 낭송 전문강사인 회장님의 연출과 조언을 받으며 땀 흘려 시를 외고 익혔다. 
혼자서 애송시를 낭송하는가 하면, 주제를 정하여 윤송으로, 퍼포먼스로, 시극으로 팀을 이루어 낭송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에 따라 열심히 익혀 나갔다. 나는 내가 쓴 수필을 낭독하기로 했다.
무대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동안 흘려왔던 땀의 날들이 돌아보였다. 콘서트를 계획한 이후 두 달 동안 무려 스무하루를 모여 개인별로 팀별로 한 것을 모두 합쳐 예순여섯 차례의 연습 시간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두 번 무대 리허설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한 시간 남짓한 무대를 꾸미기 위해 그 숱한 시간들을 쏟아 부은 것이다. 혼자서 시를 음미하며 외기를 애썼던 시간까지 합치면 시 한편에 얼마나 많은 힘과 시간을 들였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멋진 낭송 무대를 그리면서 낭송 연습에 애를 쓰기도 했지만, 시를 외고 읽는 게 좋았다. 함께 모여서 서로 호흡을 가다듬고 맞추면서 시를 주고받는 일이 즐거웠다. 모두들 이렇게 늘 시 속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뜻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 땀의 날들 끝에서 드디어 무대가 열렸다. 관객들이 객석을 메우고 무대는 가야금과 아쟁이 어우러지는 오프닝 뮤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듀엣 낭송으로 함께하는 ‘여는 시’에 이어, 오늘의 콘서트가 ‘시와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고양시켜, 그 삶에 푸름과 열정을 더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회장님의 인사 말씀, 그 다음이 나의 수필 낭독 순서다. 지난 해 여름에 쓴 ‘샐비어’를 낭독했다.
“……내 삶의 길이 흘러가고, 불타고 있는 샐비어가 흘러간다. 아, 나는 언제 삶을 그렇게 불태워 보았던가. 나의 불탈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라며 감회 어린 어조로 끝을 맺었다. 샐비어 붉은 빛 같은 삶의 열정을 그려보고 싶었다.
내 열정의 삶을 채근하는 소린가. 빌어주는 소린가. 환호 소리와 박수소리가 소나기처럼 무대로 쏟아져왔다. 저 소리들이 나를 오늘 이 무대에 서게 한 것도 같았다.
무대는 우리가 얽어 놓았던 프로그램대로 사랑과 열정을 노래하는 독송이며, 독도 사랑을 주제로 한 시 퍼포먼스, ‘그 여름 속으로’를 표제로 삼은 윤송, 낭송을 짧은 드라마로 엮은 시극의 순서가 차례대로 펼쳐졌다. 객석은 환호와 박수의 도가니가 되어 갔고, 출연자들은 무대를 내려오며 요동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지막 순서로 실용음악가인 한 회원과 기타 연주를 즐겨하는 회장님의 기타 노래가 이어졌다. 잔잔한 가락으로 울려 퍼지다가 흥겨운 가락의 노래로 이어지자 관객들은 손뼉으로 흥을 함께하면서 객석과 무대, 관객과 출연자가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갔다. 그리고 모든 순서가 끝났다. 무대가 막을 내렸다.
기념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모두들 무대를 내려왔다. 수고와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흩어져 갔다. 객석이 텅 비어졌다. 비어진 것은 객석만이 아니었다. 출연자들의 가슴속들도 모두 휑하니 비어진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 내일 아침 산책을 걸으면서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지? 무엇을 생각하며 길 떠날 차를 기다려야 하지? 오늘 외웠던 시들이 내일도 오늘처럼 간절하게 새겨질까? 어딜 가면서도 무엇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시가 살아 꿈틀거리던 날들이 아득한 그리움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텅 빈 가슴을, 이 허전을 어이하랴! 그 명멸했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아직도 눈과 귀에 쟁쟁한 감동에 젖던 관객들의 모습, 그 환호, 그 박수 소리-. 가슴속 허전의 자리에 채워 넣는다. 삶이 힘들고 쓸쓸할 때 힘이 될 것도 같다는 생각도 함께 거두어 넣는다.
문득 한 구절의 시를 떠올린다.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조병화, 늘 혹은)
그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내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은, 그 무대의 기억이 내 삶에 무늬가 되어 있다는 것은 내 살아 있음의 얼마나 명확한 확인인가?
우리가 낭송했던 시들로 인하여 사람들의 삶에 아름다움을 더해줄 수 있고. 우리의 삶도 보다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다면, 이 또한 내 살아 있음의 얼마나 빛나는 확인인가?
내년의 더욱 아름다운 감동으로 수놓을 콘서트를 기약하며 새로운 시를 찾아 가야겠다. 여유 있는 걸음으로 그 푸른 열정 속을 걸어 들어야겠다.
그 걸음을 다짐하며 우리는 오늘의 뒤풀이 마당으로 걸음을 옮겨간다. 새로운 시가 기다리고 있을 걸쭉한 뒤풀이 마당으로 간다.
거리를 불어오는 여름 밤 바람이 청량하다.♣(201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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