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이[齒]를 해 넣으며

이청산 2014. 6. 7. 13:47

 

이[齒]를 해 넣으며

 

 

뽑지 않고 더 이상 두면 잇몸 뼈가 녹아서 이를 해 넣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으름장 같은 의사의 경고를 못 이겨 앓고 있던 위 어금니 네 개를 한꺼번에 뽑았다. 앓던 이를 뽑아 시원한 게 아니라 서운했다. 육십여 년의 세월을 몸의 일부로서 내 삶을 건사해 온 것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내 삶이 고비를 넘어설 때에 저도 세월의 고개를 넘기 어려웠던지 시름시름 통고를 겪다가 드디어 내 몸에서 떠나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 비록 한 생애는 정리했다 하나 아직 살아내어야 할 일이 적잖은데, 먼저 나를 떠나는 것이 적이 아쉽기만 했다.

이것이 나를 버리고 가게 된 것은 저의 탓이 아니라 순전히 내 탓이다. 오직 내가 갈무리를 잘못한 탓이 아니던가. 잘 거두어 주기만 했더라면, 좀 더 오랜 세월을 나와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을-. 내가 덩둘하여 잃어버려야 했던 게 어찌 이것뿐일까.

그것도 사람살이 일 가운데 하나라 여기면서 미련 없이 보내기로 했다. 보낼 것은 보내야 올 것이 올 수 있지 않으랴.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랴. 낡은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새 것을 맞이하지 못한 우둔이 또 얼마였던가.

자연의 것을 보내고, 인공의 것을 들이려니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것이 들어와서 나의 건강한 삶을 새로이 지켜 줄 것을 기대하면서 기꺼이 보냈다. 그래, 잘 가거라. 딴은 주인을 위하여 골똘히 이바지해 왔던 정을 들어올 새 것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두고 잘 가거라.

그것을 보내고 새 것이 올 때까지 한 해도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잇몸에 새 살이 돋아 여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있어야 할 이가 없으니 마음대로 씹을 수도 없지만, 한 쪽으로만 씹어야 하니 또 다른 탈이 안 생길 수가 없다.

한 쪽에만 의지하다 보니 턱의 골격이 비대칭이 되어 다른 한 쪽에 고통을 주는 것이다. 역시 신체의 기관들이란 제 자리에 있을 게 다 있어야, 모든 것이 제 노릇을 옳게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신체 기관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아니할까.

점검이 예정된 날 치과에 갔더니 이를 심기 위한 기초 시술을 하자고 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 잇몸의 뼈를 뚫어 그 구멍 속에 쇠심을 박았다. 마취제를 놓아 통증은 느낄 수 없었지만 파고 갈고 치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마취가 풀리고 나니 잇몸이 몹시 아렸다. 아픔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입을 크게 벌려야 심을 잘 박을 수 있다기에 얼마나 벌렸던지 귀 밑의 턱 관절이 내려앉은 모양이었다. 벌렸다가 닫으려면 잘 닫히지 않고, 귀 속의 우리한 기운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많이 아플 때는 소염제 처방을 받기도 했지만, 약물 치료로 해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탈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관절을 잘 주물러 주라고 했다. 오랜 날을 두고 귀앓이를 겪어야 했다. 그 사이에 시간이 또 반년이 흘러갔다.

한 해 반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상태를 점검하러 치과에 갔더니 이제 이를 해 넣자고 했다. 심 주위에 새 살이 잘 돋아났다는 것이다. 우선 아랫니와 함께 잇몸의 본을 떠야한다고 했다. 아래 위 잇바디 전체에 석고를 씌어 본을 뜨는데, 석고가 얼마나 세게 굳어버렸는지 잘 떼어지지 않아 한참 실랑이를 벌려야 했다. 잇몸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그 본으로 이를 만들어 끼운 것은 두 주쯤 지나서였다. 소리를 들으니 무슨 나사 같은 것을 심에 끼워 넣는 것 같았다. 그 위에 인공 이를 씌우는 모양이었다. 몸도 이렇게 부속품을 갈아 끼워 넣을 수 있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가! 다음엔 또 무슨 부품을 갈아 끼워 몸의 생기를 돋우려 할 것인가.

이 넣기를 마치고 입을 벌려 거울을 보니 마치 애초부터 제자리에 있었던 양 능청스럽게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새로운 것을 몸 안에 넣었으니 건강도 좋아지고 젊음도 더해졌을 것이라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치과를 나섰다.

그날 저녁을 먹으며 새로운 것에 대한 생광스러운 마음으로 먹을 것을 조심스럽게 씹었다. 이 게 웬일? 새로 해 넣은 이는 가만히 있는 데 아랫니가 아팠다. 씹을수록 더 아팠다. 씹다보면 괜찮아질까? 하루, 이틀, 사흘이 가도 아프기는 매 한 가지였다.

참다못해 치과엘 갔다. 오랫동안 윗니가 없는 사이에 아랫니가 솟구쳐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랫니의 잇몸을 다스리고 잇바디를 골라주었다. 아랫니를 조금 갉아내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아귀 맞게 잘 어울려야 서로 반듯하게 살 수 있는 것임을 깨우쳐 주고 있는 듯했다.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이제 새로운 이로 먹을 것을 씹는다. 씹히긴 하지만 아직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겪어야 했던 신고가 얼마였으며, 시간과 물질의 부담은 또 얼마나 되었던가. 자연을 거스르고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자연을 거스르고 사는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재앙을 받기도 하는가. 오늘 이 새로운 이 해 넣기가 자연을 거스르고 사는 나의 마지막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으로 살 수 있는 날만이 나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세상에는 자연을 거스른 업보가 처절한 비명이 되어 들려오고 있지 않은가.(2014.5.30.)

 

 

'청우헌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정 연습  (0) 2014.07.10
개망초  (0) 2014.06.18
달래지지 않는 슬픔  (0) 2014.05.21
한촌의 아침  (0) 2014.05.05
푸름으로 가는 길  (0) 201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