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열정 연습

이청산 2014. 7. 10. 09:45

 

열정 연습

 

 

세 사람은 무대 오른쪽에서, 두 사람은 왼쪽에서 등장한다. 여름을 제재로 한 시들을 모아 그 여름 속으로라는 주제로 각자 열심히 익힌 시를 차례를 따라 윤송으로 엮으며 앞으로 나선다.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이해인, 여름 일기)

연출과 낭송 지도를 맡은 회장님이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하고, 발음이며 억양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일러주면, 출연자들은 고치고 따라 하기를 애쓰며 몇 번을 되풀이한다. 연습의 열기가 점점 달아오른다.

시낭송 콘서트-. 삼년 전의 여름에 모임이 창립된 이래 두 번째 갖는 무대다. 작년의 시로 새기는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주제에 이어 올해는 여름·시의 푸른 열정 속으로라는 주제로 독송, 윤송, 시극, 시 퍼포먼스로 나누어 무대를 꾸며 보기로 했다.

시 낭송을 삶의 향기와 보람으로 삼는 회장님의 열정을 따라 모인 사람들이지만, 모두들 시가 좋은 사람들이다. 시 읽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시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시를 낭송하는 무대가 그리운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무대란 무엇일까. 낭송의 맛과 멋을 조금씩 익혀 가는 사이에 무대는 마치 우리가 마땅히 서야할 자리인 것처럼, 어쩌면 우리의 삶의 한 부분 혹은, 그 자체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 무대를 위해 힘을 모으고 목소리를 합친다. 그리고 푸른 열정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간다.

콘서트를 두 달 앞두고 한 주일에 한 번 이상은 모여 연습을 하자던 결의가 어떤 주에는 두 번씩, 또 어떤 주는 하루걸러 한 번씩으로 늘어나며 열기를 더해갔다.

독송을 하는 사람들은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고정희)’, ‘너의 집(김남조)’, ‘둥근, 어머니의 두레 밥상(정일근)’을 낭송하기로 하고, 전문 낭송가인 회장님의 조언을 받으며 목청을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며 시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낭송을 위해 애를 써나갔다.

시극은 한 출연자가 직접 쓴 대본으로 네 사람의 출연자가 시를 한 편씩 낭송하면서 극을 엮어나갔다. 시 낭송만이 아니라 연기도 곁들이는데, 처음엔 웃음을 자아내게 하던 동작들이 연습을 거듭하는 사이에 제법 그럴 듯한 연기로 변해 갔다. 무르익은 모습이 보일 때마다 보는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가장 역동적인 것은 퍼포먼스였다. ‘독도 만세를 부르자라는 주제로 독도를 제재로 한 시를 낭송하며 독도 수호의 의지와 그 애국적인 정서를 몸으로 표현해 나가는데, 때로는 사뿐거리는 듯하다가 때로는 용암처럼 힘차게 솟는 몸짓으로 이어지는 동작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키게도 했다. 이런 건 이렇게, 저런 건 저렇게 표현해보자는 회장님의 열정적인 연출이 한층 폭발성을 더해갔다.

연습의 열기와 시간들이 깊어 가는 사이에 누구는 점심을 싸 오고, 감자를 삶아오고, 옥수수를 쪄오고, 수박을 들고 와서 서로를 격려하는 따뜻한 인정들도 쌓아갔다. 연습장은 연습의 열기만 뜨거운 것이 아니라. 함께 모으는 정의 열기도 더욱 후끈해져 갔다.

그동안 해온 연습들을 모아 예행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어느 날 오후 모든 회원들이 모였다. 먼저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함께 하는 여는 시로부터 수필가 회원의 수필 낭독, 낭송, 시 퍼포먼스, 윤송, 시극 순으로 펼쳐 나갔다. 아직은 덜 다듬어지고 조금은 어설픈 곳도 없지 않아 겸연쩍은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지만, 연습이 되풀이될수록 좋은 무대를 만들어보자는 의지는 점점 굳어져 갔다.

힘은 들지만 재미있잖아요. 이런 거 아니면 어떻게 나를 한 번 표현해 볼 수 있겠어요? 이런데 막 힘을 쏟다보면 ,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실감이 느껴져요.”

한 회원이 활짝 웃으며 의기를 세우자 여러 회원들이 맞아요, 그래요!”하며 함께 결기를 돋운다.

이 일을 어쩌나! 한 회원이 덜컥 병이 났다. 퍼포먼스와 시극에 출연하는 회원이었다. 평소 건강에 조금 이상이 있긴 했지만, 연습에 몰두하느라 더쳤는지도 모르겠다며 모두들 애타 했다, 연습의 열기만큼이나 회원들의 걱정도 컸다.

앞으로의 연습이며 무대 구성도 염려가 되었지만, 회원들은 어서 회복되기를 비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어떻게 해볼 테니 다른 염려는 하지 말고, 빨리 낫기나 하라.’며 무대를 걱정하는 그를 위로해 주었다. ‘잘 치료해서 빨리 나아오겠다,’며 그는 병원으로 갔다.

그가 혹 출연을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퍼포먼스는 내용을 조금 바꾸고, 시극은 대역을 세워 연습을 진행해 나가면서, 그가 돌아오면 원래의 프로그램대로 할 수 있도록도 준비해 나갔다.

회원들은 더욱 열심히 연습에 매진하는 일이 그를 빨리 낫게도 하고, 무대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낭송 기량을 닦아나갔다.

내일은 아침부터 만나 윤송과 퍼포먼스, 시극을 연습하기로 했다. 여럿이서 같이 서는 무대는 호흡과 동작을 함께 잘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모두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습에 열중하다 보면, 병원에 간 회원이 웃으며 달려올 것 같기도 했다.

회원들이 모였다. 연습에 몸과 마음을 다 모은다. 현란한 무대가 선히 보이는 듯하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한여름 날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듯하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삶이 보이는 듯하다. ‘참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갈채 소리가 회오리쳐 오는 듯하다. 가슴이 푸르러져 간다. 뜨거워져 간다. 그 푸른 열정 속으로-.(20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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