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달래지지 않는 슬픔

이청산 2014. 5. 21. 11:42

 

달래지지 않는 슬픔

 

 

경기도 안산의 어느 노점 떡볶이가게에 한 달에 한두 번 씩은 꼭 찾아오는 남녀 고등학생 한 짝이 있었다. 이들은 용돈이 넉넉지 않았는지 떡볶이를 1인분만 시켜 둘이서 다정하게 나누어 먹었다. 인심이 좋기로 소문난 주인이 이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한 주걱 덤으로 더 퍼주곤 했다.

어느 날 이들이 또 찾아왔다. 서로 다투고 왔는지 여학생이 토라진 채 떡볶이를 입에 대지 않았다. "너네 싸웠냐?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하며 이날도 한 주걱 더 퍼주었다. 떡볶이에 마음이 풀렸는지 여학생이 "아저씨, 다음 달이면 저희가 만난 지 100일이에요."라며 자랑했다. 주인은 "100일 되는 날, 꼭 와라. 내가 한 턱 쏠게."라고 약속했다. 두 학생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 진짜요? 그럼 저희 이번 주에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데 선물 꼭 사올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 사흘 뒤에 그들은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탄 배는 넘어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325명의 학생이 여행을 갔는데, 그 중 75명만 구조되고 250명은 실종되었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배를 타고 있었다.     

실종자들은 주검이 되어 잠수사들의 손에 끌리어 바다 밖으로 나왔다. 바다는 죽음의 그림자로 소용돌이치고, 뭍은 통한의 해일이 몰아쳤다. 세상은 온통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찼다.

배가 가라앉은 지 엿새째가 되던 날이었다. 35년 잠수 경력을 가진 어느 잠수사가 이날 다섯 번이나 잠수를 하면서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었는데, 세 번째 잠수 때였다고 한다.

거센 급물살에 빨래처럼 날리는 몸을 겨우 가누고 구명용 로프를 이어가며 수색 범위를 넓혀갔다. 30~40도 채 안 되는 시계를 헤치고 더듬더듬 선체를 훑으며 30여분쯤 돌아다니다 보니 선체 안으로 몸이 슬쩍 휩쓸려 들어갔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몸을 안쪽으로 돌리는 찰라 신발 두 짝이 눈에 들어왔다. 부유물을 모두 밀쳐내니 남학생 주검이 드러났다. 청바지 차림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이번 구조 작업에서 만난 첫 시신이었다.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고인에 대한 예를 표하고, 남학생을 밀어 배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길이 1m가량 되는 구명조끼 아래쪽 끈에 뭔가가 이어져 있었다. 끈을 당기자 맨발 상태의 여학생 주검이 나타났다.

이들은 뒤집힌 배의 우현 통로 계단을 올려다보는 형태로 잠겨 있었는데, , 아래로 각각 1개씩 달린 구명조끼 끈 중에 위쪽 끈은 각자의 허리를 묶었지만 아래쪽 끈은 서로 맺어 놓았다. 잠수 가능 시간이 10여 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을 한꺼번에 끌고 나가기에는 너무 힘겨워 맺어진 끈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잠수사는 그 물속에서 "일생에서 가장 놀랍고 가슴 뭉클한 순간을 맞이했다."고 술회했다. 남학생을 먼저 배 밖으로 밀어낸 후 여학생을 데리고 나오려는데, 웬일인지 남학생 시신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보통 물속에 있는 시신은 떠오르게 마련인데, 서로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솟더라고 했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져 두 사람을 물속에 놓아두고 다시 수면으로 나왔다가 다른 잠수사의 도움을 받아 두 사람을 수습했는데, 어린 학생들이 죽음의 공포에 맞서서 함께 살아보려고 버둥대며 서로 몸을 묶었을 것 같은 생각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뛰쳐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혼령이 되어 분향소에 앉았다. 떡볶이가게 주인은 늘 대하던 학생들을 생각하며 분향소를 찾았다. 그는 학생들의 이름은 몰라 구명조끼 끈을 서로 묶은 채 발견된 남녀 학생이 자기 집을 찾아오던 이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른들의 잘못으로 살리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눈물을 훔쳤다.

, 그들이 그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들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저승의 영혼이 아니라 이승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주검이 되어있는 이들조차 등걸잠에서 깨어나듯 툴툴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슬픔이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분노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은 온통 슬픔이다. 바다는 죽음의 세상이고, 세상은 슬픔의 바다다. 그야말로 꽃다운 청춘들이며, 저마다 삶의 사연을 간직한 이들이 무참히 죽어간 것도 슬픔이요, 친구를, 제자를, 승객을 살리기 위해 제 몸을 내놓은 의로운 죽음도 슬픔이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며, 혈육을, 지친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보낸 이들의 통한은 또 얼마나 큰 슬픔인가. 제 목숨 건지겠다고 도리를 팽개쳐버린 뱃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큰 슬픔이요, 애먼 목숨들 살리기에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절망 또한 크나큰 슬픔이다. 이 슬픔을 어이하랴.

펄 벅(Pearl S Buck)은 세상에는 두 가지 슬픔이 있다고 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속에 묻고 잊을 수 있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슬픔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안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다고 했다.

침몰한 배의 슬픔은 어떻게 사라질 수 있으며, 어떻게 떨칠 수 있으랴. 누가 무엇으로 그 슬픔을 달랠 수 있으며, 달래질 수 있기나 한 슬픔인가. 그 통한과 분노와 절망을 어찌 마음속에 묻고 잊을 수가 있으랴, 잊힐 수가 있으랴.

그 슬픔을 껴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펄 벅은 다시 말한다.

"슬픔은 지혜로 모양을 바꿀 수 있고, 지혜는 기쁨을 가져다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행복은 줄 수 있다."(펄 벅, '자라지 않는 아이')

그렇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슬픔에서 지혜를 얻어내는 일이다. 이 땅에, 이 세상에 다시는 그런 슬픔과 절망이 없게 할 지혜를 얻어야 한다. 기어이 얻어내야 한다. 그 지혜가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지혜로 슬픔을 껴안아야 할 차례다. 지혜를 찾아 슬픔을 떠나야할 때다.

모두 함께 그 슬픔을 안고-.(2014.5.17.)

 

 

: 떡볶이가게 이야기는 <한겨레> 2014.05.12. 기사, 잠수사 이야기는 <경향신문> 2014.04.24. 기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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