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산책길을 걸으며

이청산 2014. 1. 16. 11:44

 

산책길을 걸으며

 

 

 

산책길을 걷는다. 집을 나서 마을을 지나 두렁길을 걸어 우거진 마을 숲에 든다. 팔을 벌려 깊은 숨을 모으고 강둑으로 오른다. 반짝이는 윤슬을 싣고 구슬 구르는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두루미가 물 위를 훠이훠이 날고 물오리가 아양을 부리는 모습을 즐기며 강둑을 걸으면 마음과 몸이 마냥 삽상해진다.

들길로 든다. 검은빛이다가 파란빛이다가 누런빛이다가 철마다 달라지는 들판의 빛깔은 가슴으로 덞어와 가슴도 들판과 한 빛이 된다. 들판을 싸안고 있는 저 산 빛은 또 어떤가? 들판보다 한층 더 다양 다기한 빛을 지우며 계절의 변환을 재바르게 알려준다.

저 산자락 바위 위로 떠가는 한 무리 구름, 푸른 하늘을 거울삼아 강물 위를 날던 큰 새의 모습을 비추어 낸 듯도 하고, 그리운 마음을 풀어내는 여인의 춤사위 같기도 하다.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오른다. 지팡이를 짚으면 오를 때도 내릴 때도 몸짓이 한결 여유롭다. 한 발 한 발 오르다 보면 산의 품이 점점 깊어져 아늑함이 온몸에 감겨 오는 것 같고,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이 살갑게 안겨온다. 풀어헤친 가슴 같이 시원스러워 보이는 들판이며, 갈숲 사이로 사근사근 흘러가는 강물이 그리움처럼 정겹다.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다. 문득 옛사람이 읊은 시 구절이 떠오른다.

 

倚杖柴門外(의장시문외) 지팡이 짚고서 사립문 나서니
  悠然發興長(유연발흥장) 상쾌한 기분이 끝없이 샘솟네.
  四山疑列戟(사산의열극) 사방의 산들은 창을 세워 호위하고
  一水聽鳴璫(일수청명당) 한 줄기 시내는 구슬처럼 흘러가네.

鶴立松丫暝(학립송아명) 솔숲 길에 학이 서서 날은 저물고
  雲生石竇凉(운생석두량) 바위틈에 구름 피어 서늘해지네.
  遙憐十年夢(요련십년몽) 까마득히 떠오르네, 십 년 세월 꿈이여!
  款款此中忙(관관차중망) 그 속에서 내 얼마나 허둥댔던가!

          -이숭인(李崇仁·1349~1392), 倚杖(의장, 지팡이를 짚고서)

 

悠然發興長(유연발흥장)’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끝없이 솟아나오는 상쾌한 기분-. 바로 산책길을 걷는 지금의 내 심정이 아니었을까. 산의 나무들은 마치 창을 들고 호위하듯이 줄지어 서서 나를 반기고, 시냇물은 구슬 구르는 소리를 내며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듯한데, 날 저무는 솔숲에는 학이 날고,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구름이 가슴을 청량하게 하니, 얼마나 유유자적에 젖기 좋은 풍경인가.

그러나 이러한 풍경을 바라보는 작자의 마음은 그리 편치만은 않은 것 같다. 상쾌한 기분이 샘솟는 듯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지난 세월의 허망함이 아닌가. 허둥댄 세월의 허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음인지, 그는 자기를 반겨주던 산수며 솔숲의 학과 바위틈의 구름을 뒤로 한 채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시의 작자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더불어 여말 3은의 한 사람으로, 고려 후기의 학자요 시인이다. 그는 14세의 나이로 국자감시에 합격하고 16세에 과거에 급제한 신동으로 21세 때 성균관의 생원이 된 후로 성균직강, 예문응교, 전리판서, 밀직제학, 지밀직사사 등을 두루 역임했다.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몇 차례 유배되고 풀려나기를 거듭하면서, 세월의 허망함을 사무치게 품다가 다시 꿈을 찾아 세상에 나아간다, 그러나 고려가 막바지를 치닫던 해(1392) 정몽주가 피살되자 그 일파로 몰려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조선 개국에 앞서 정도전(鄭道傳)의 심복인 황거정(黃居正)에 의해 피살되고 만다. 그 후 태종이 그의 죽음이 무고함을 알고 1406년 이조판서를 증직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리지만, 이미 십 수 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문사(文士)로서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고, 문재(文才)로서 나라를 위해 기여했으며, 그의 시는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극찬을 받기도 했다. 사장(詞章) 위주의 문예보다는 경전 위주의 문학관을 가지고 도학적인 면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는 문학으로써 현실의 이상을 좇으려 했던 때문인지 험한 세파 속을 분주히 헤매어 다니다가 결국은 비명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지팡이를 짚고 산책을 하며 그가 느꼈던 상쾌한 기분이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이숭인의 생애에 문득 미국의 철학자요 시인, 수필가인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생애가 겹쳐져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소로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가업인 연필 제조업, 그리고 교편생활에 잠시 종사하다가 월든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살게 된다. 그는 호수 한가운데에 보트를 띄우고서 그 안에 길게 누워 공상에 잠기곤 하면서, 금전상으로는 부자가 아닐지라도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날은 얼마든지 가진 부자라고 생각하며, 시간들을 좀 더 작업장이나 교단에서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후회할 일도 없다고 했다.

누가 삶을 뜻 있게, 혹은 가치 있게 산 것이었을까. 쉽사리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숭인도, 소로도 나름대로 삶을 뜻 있게 가꾸고 싶었을 것이고, 그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이루어 갔을 것이다. 가치 있게 생각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들 아닌 누구도 그들처럼 살 수는 없다. 누구라도 자신의 의지를 따라 스스로의 삶을 갈무리해 나갈 수 있을 뿐이다.

한촌의 산책길을 걸으며 지금의 내 삶을 생각한다. 나에게로 오고 있는 시간들이 고맙다. 지난 세월이야 어떻게 흘러갔든, 그 시간들이 지금 내 안에 어떻게 쌓여 있든 이제 나에게 오는 시간은 아무런 집착도 욕심도 씌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 삶은 이제 이숭인의 생애가 될 리도 없고, 소로의 생애를 닮기도 어렵다. 이숭인처럼 현실세계에 대한 야망을 가질 일도 없고, 소로만큼 모든 것을 초탈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굳이 욕심을 가지려고 할 일도 없을 뿐더러, 세사를 초월하여 나만의 어떤 세계를 가지겠다고 마음을 굳이 다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명리 같은 건 멀찌감치 두고 거저 자연 속을 자연으로 살면 될 일이다. 산책길을 걸으며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산봉우리를 나는 구름을 보며 가슴을 씻을 일이다. 정겨운 이웃들과 더불어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며,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하며 살 일이다. 그 고마운 시간들을 내 안에 쌓아 가면 될 일이다.

오늘도 행복한 산책길을 걸으며-. (20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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