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손원희 할머니

이청산 2012. 3. 2. 13:42

손원희 할머니


……몇 달 전 선생님께서 조선일보 에세이란에 기고한 대문을 괜히 달았다를 읽고 감명을 받은 할머니입니다.……제가 만든 실내화와 바늘꽂이를 선물로 보내고자 하였으나, 몇 달을 몸이 불편해서 바느질을 할 수 없어서 이제야 조금 나아 보내드립니다. 비소(誹笑) 마시고 82세 노인의 정성이라 생각하시고 기쁘게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대문을 괜히 달았다를 발표한 것은 지난해 칠월 초였다. 공직 한 생애를 마감하고 문경의 외진 시골 마을을 찾아와 살면서 느낀 감회를 쓴 글이었다. 서로 나누면서 정답게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그렸었다.

그 글이 발표되자 인터넷 신문의 기사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또 많은 웹 사이트로 글이 퍼져 나갔다. 신문사에서는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가르쳐 주어도 괜찮겠느냐며 물어왔다. 가르쳐 주라고 했다. 알고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했다. 모두들, 요즈음도 그렇게 인심이 좋은 곳이 있느냐, 어떻게 했기에 이웃과 그토록 정답게 살 수 있느냐고 했다. 그 마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어떤 이는 먼 길을 달려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지방 어느 신문사 기자라는 분도 지역 파출소를 찾아가 우리 집을 수소문하여 찾아오기도 했다. 서로 돕고 나누며 사는 동네 인심을 사실 그대로 말해 주고, 열댓 가구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조그만 동네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사람 사는 정을 그린 나의 글이 점점 메말라만 가는 세상 속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 것 같았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정과 그런 것이 담겨 있을 고향에 대한 아련한 노스탤지어라 할까.

손원희 할머니의 전화가 온 건 글이 발표된 지 일주일여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전화국 안내에 물어 연락처를 알았다고 했다. 올해 81세로 경주시 초대 가정복지과장을 역임하고 이십여 년 전에 퇴임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전화한다고 했다.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취미 삼아 천으로 실내화며 바늘꽂이 같은 것을 만들어 이웃들이며 선행자, 자원봉사자들을 찾아 나눠주기도 하고. 옛 동료들의 자녀 결혼 선물로 건네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열댓 가구 마을사람들에게 전부 한 켤레씩 나누어주고 싶다며. 손수 만든 실내화를 가지고 마을을 한 번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시청에 물어 마을 위치도 알아두었다고 했다. 말씀만 들어도 너무 고맙다며 그 마음만 선물로 받겠다고 했더니, 정겨운 마을의 모습이며, 내가 사는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기회가 되는 대로 오시면 반갑게 맞이하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갔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갔다. 손원희 할머니에게서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내 글도 잊혀가는 듯했고, 나의 뇌리에서는 할머니의 말씀도 잊혀가고 있었다. 해가 바뀌고 긴 겨울도 시나브로 꼬리를 접어가던 이월 어느 날이었다.

불현듯 손원희 할머니가 전화를 했다. 언젠가는 내가 사는 마을을 찾으리라고 늘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기력이 쇠잔해지고 안질까지 앓게 되셨다고 한다. 이제야 조금 회복되어 겨우 바늘을 들 수 있게 되셨다며, 마을을 찾아 갈 기력도 없고 실내화를 많이 만들지도 못해, 우리 부부가 함께 신을 수 있는 것만이라도 보내겠다며 주소를 물었다.

역시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며 완곡하게 사양했지만, 약속은 지키고 싶다고 하시면서 보잘것없는 것이나마 꼭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며칠 뒤에 손수 바느질하여 만든 실내화 두 켤레와 바늘꽂이 하나가 편지와 함께 택배로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자랑하시는 인심 좋은 마을을 한 번 가보고 싶었으나 뜻대로 될 것 같지 않고, 백내장 수술로 안질도 옛날 같지 않고 해서 매사에 자신을 잃고 있습니다.……

하얀 종이에 흘려 쓴 글씨가 가슴을 뭉클하고도 안타깝게 했다. 정성들인 선물도 고마웠지만, 일신의 곤경에도 불구하고 한번 하신 말씀을 꼭 지키시려는 그 신의가 참으로 경외스러웠다. 내 살아온 생애가 돌아보였다.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베푼 적이 있으며, 신의를 위해 어려움을 무릅써 본 적이 있었던가.

자신을 잃고 있다는 말씀이 안타까웠다. 빠져 나가는 세월이야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아름다운 마음에 건강이 함께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아름다운 마음만큼 건강이 할머니에게로 꼭 돌아와 줄 것이라 믿고 싶었다.

고마움에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까. 마음만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꼭 주고 싶어 하셨던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만으로 보답을 드린다 하기엔 너무나 송구스러운 일이었다.

궁리 끝에 책 두 권을 편지와 함께 포장하였다. 한 권은 몇 년 전에 낸 나의 수필집이고, 한 권은 내 글이 실린 어느 문학지다. 문학지에는 이웃과의 정을 그린 글이 실려 있었다. 그 글 속에는 물질이건 마음이건 무언가를 이웃과 나누어 가질 때 그 일이 곧 덕행이 되고 안락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한 법정스님의 말씀이 들어 있었다.

손원희 할머니의 고마운 덕행에 조그만 기쁨이라도 드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우체국을 향해 자전거를 달렸다. 귓불에 훈풍이 스쳐갔다. 저만치서 봄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2012.3.1.)

 

 조선일보 게재 "대문을 괜히 달았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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