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2월26일

이청산 2012. 2. 26. 11:06

2월26일


2011226. . 맑음. 1막의 인생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그날 일기장의 첫머리를 이렇게 적었었다. 참 맑은 휴무 토요일이었다. 거처해 오던 사택을 떠나기로 했다. 세간을 차에 다 싣고는 몸 뉘었던 방을 쓸고 닦았다. 내 한 생애의 마무리였다.

새 삶의 터 문경 마성을 향해 달렸다. 내 새로운 삶의 마법의 성이 되기 바라면서 궁벽한 한촌 마성에 당도했다. 가으내 지어왔던 집에 짐을 내렸다. 그 날 옆집 성 씨 부부는 우리 부부와 이삿짐센터 인부들을 위해 맛있는 점심을 준비했다. 저녁에는 몇 마을 사람이 모여 환영연을 베풀어 주었다.

일요일인 이튿날은 풀어놓은 짐들을 정리하기에 분주했다. 이웃들이 손을 보태주었다. 월요일인 다음날 아침, 출근길을 서둘렀다. 한 시간 여를 달려 한 생애의 마지막을 묻었던 곳으로 갔다.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마지막 결재를 하겠다며 결재가 필요한 서류를 가져 오라 했다. 십여 일 전, 아이들의 종업식 날 퇴임식을 치르기는 했지만, 그 건 통과의례일 뿐 해야 할 일은 228일까지다. 모든 서류의 결재를 마감했다. 그리고 지난날의 동료들과 작별의 손을 잡았다. 동료들은 오랫동안 그 손을 흔들어주었다.

훈장 전수식이 열리는 도교육청 강당으로 갔다. 육십여 명의 퇴임자들이 모였다. 서로 쳐주는 박수로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인생 연극의 한 막이 장엄하게 내려졌다.

새 삶의 터에 발을 내렸던 226일이 다시 왔다. 한 해가 흐른 것이다. 엄청났던 변환의 시간들이 돌아 보인다.

숨 쉬는 일 말고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먹는 일도, 자는 일도,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가 새로운 것들뿐이었다. 새 보금자리 창 위에 청우헌(靑遇軒)’이라는 현판을 붙였다. 새 삶의 터를 칭하는 이름이기도 했고, 다시 막이 오른 새 인생 연극의 제목이기도 했다.

32일부터 새 삶이 얽혀나가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고는 어디로 가는가. 사무실의 책상에 앉는 대신에 청우헌그 방의 책상에 앉아야 했다. 그런 나날들이 흐르면서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은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참 다행한 일이었다. 짐을 내리고 난 뒤부터 곧바로 나는 혼란을 겪을 겨를을 가질 수 없었다. 집을 다 지었다고 해도 갈무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본체 앞뒤로 부대 건물을 덧붙이는 일이며 마당을 다듬는 일은 리듬이 달라진 생활에 대한 심정의 변환을 느낄 틈을 별로 주지 않았다. 무르익은 봄 어느 날, 정다운 이웃들과 함께 집들이라는 새 삶의 통과의례가 분주와 즐거움 속에서 지나갔다.

이웃은 새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갔다. 낯설지만 행복한 체험들이 이어졌다. 도시의 회색 빌딩 속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사람의 정이 한촌에서의 삶을 낯설게 했지만, 그 낯섦은 이내 감동이 되어 가슴속 깊숙이로 파고들었다.

시절 따라 새롭게 돋아나고 맺히는 푸성귀며 과실들을 서로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고, 된장국 하나에도 마음을 담아 밥술을 함께 뜨자는 인정 앞에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배우고 익혀 갔다. 마트도 술집도 약국도 없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불편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서로 나누면 되기 때문이다.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공직의 삶을 접고 나처럼 한촌에 새 삶을 이루러 온 사람, 온 생애 동안 농사와 더불어 고향을 지키고 살면서 젊을 때는 면사무소도 다녔던 사람, 한창 혈기 방장한 시절에는 광산 막장에서 탄을 캐다가 지금은 열심히 들을 갈고 있는 사람……, 모두 정겨운 이웃들이다. 누구네 집, 어느 방인들 좋았다. 모여 앉으면 사랑방이 되고, 고담준론의 담론장이 되었다.

그 마을 그 이웃들 속에서 새롭게 막을 올린 삶의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웃들과 얽어가는 인정의 세계를 그린 대문을 괜히 달았다라는 글을 중앙 일간지에 발표하여 메마른 세상 속을 사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반향을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쁘고 즐거운 일은, 우거진 숲 맑은 냇물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맑은 하늘이며 빛 밝은 별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그만 텃밭에서 싱그러운 푸성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녹음을 헤치고 낙엽을 밟으며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위하여 내 새 삶을 이 한촌에 담지 않았던가.

, 그리고 내 삶의 의의를 다시 정리해야 할 만한 획기적인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살아가는 변환기의 삶을 정녕 혼란스럽지 않게, 적요하지 않게 해 준 존재와의 만남이다. 새로운 세계, 아름다운 이와의 만남이다.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만났다. 삶의 예술이고 사랑의 예술이었다. 아름다운 정서가 있고, 따뜻한 메시지가 있는 세계였다. 그는 그 예술세계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곧 그 예술이었다. 한 생애를 마무리해 가고 있을 무렵 기적같이 그가 내게로 왔었다. 기꺼이 새로운 세계의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삶의 예술 사랑의 예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 예술에 젖고 삶과 사랑에 취하는 사이에 내 삶은 이전 세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행복으로 변환되어 갔다. 한 막이 내려 진 것도, 새로운 막이 오른 것도 나에게는 모두 행운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새 삶의 원년인 한 해가 안락하고 따뜻하게 흘러갔다.

새 삶의 아름다운 주춧돌이 놓인 한 해였던 것 같다. 그 주춧돌 위에 어떤 기둥을 세우고, 어떤 지붕을 얹을 것인가. 새로운 226일들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등짐이다. 즐겁게 지고 가야 할 등짐일 뿐이다.

새로운 막의 삶을 살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친구에게 간곡한 편지를 써야겠다.

이웃과 함께 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 바란다고, 예술을 사랑하고 사랑을 사랑하기 빈다고-.(201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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