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비싼 상추

이청산 2011. 5. 24. 15:39

비싼 상추
-청우헌 일기·10



“우리 참 비싼 상추 먹고 있지요?”

아내가 상추에 된장을 놓아 밥을 비비면서 말했다.

텃밭이 제법 어우러져 갔다. 옥수수며 감자와 고추가 골을 따라 자라고 있고, 파와 정구지도 텃밭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옆에는 상추가 오밀조밀 나 있다. 옥수수와 감자는 씨를 심은 것이고 다른 것은 모종을 사다 심었다.

근간에는 장에 모종을 사러 다니기 바빴다. 넓지 않은 텃밭이지만 이것저것 갖추어 심으려 하니, 제 때를 기다려 사야 하기 때문에 봄이 익을 무렵부터 장날이면 모종을 사러 다녔다. 적상추도 심고, 방울토마토, 셀러리, 케일, 오이도 모종을 사다 심었다. 콩도 두어 골 넣었다.

생각해 보면 텃밭을 위해서 우리가 이 한촌을 찾아와 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퇴임 이후의 삶을 어찌할까, 궁리를 하다가 물 맑고 산 푸른 시골을 찾아 살기로 했다. 빌딩들만 밀집해 있는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살면 공기도 좋고 조용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마당을 쪼아 조그만 텃밭이라도 일굴 수 있다는 것이 좋게 생각되었다.

산수 풍광 괜찮은 한촌에 터를 장만하여 집을 지었다. 터를 잡아 집을 짓기까지가 여간 큰 일이 아니었다. 퇴직 수당을 다 털어 넣고도 더 보태야 했던 자금도 문제였지만, 집을 지어 나가는 과정이 너무도 힘이 들었다. 이렇게 힘을 들여서 꼭 이 시골 땅에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이미 시작해 놓은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계속 일을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서너 달이 걸려서야 집 짓는 일이 끝났다. 퇴임을 하면서 바로 살림살이를 옮겨 왔다. 새로 지은 깨끗한 집에 들었지만, 손질하고 정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을 짓는 큰일보다 뒷손질할 잔일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마당도 그냥 쓰면 되는 게 아니었다. 생활 공간과 텃밭 공간으로 나누어서 정리하고 꾸며야 했다. 몇 날 며칠이 걸려 공사하여 조그만 정원이며 생활에 활용할 공간과 함께 조그만 텃밭을 만들었다. 모두 힘과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날이 풀리고 봄이 익어 갔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움이 트는가 싶더니 온산에 산꽃이 만발해져 갔다. 땅에 호미질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흙을 뒤집어 갈아 골을 타고 씨를 넣거나 모종을 심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텃밭은 푸른 기운을 더해 갔다. 감자가 무럭무럭 자라났고, 옥수수가 잎을 벌여갔다. 한 귀퉁이에 심은 호박도 빼족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내는 텃밭에 살다시피 했다. 모종을 이리저리 옮겨심기도 하고, 김을 메어주기도 하고, 시시로 물도 준다. 이런 골몰을 치르려고 이곳에 사느냐 하면서도 일손을 놓지 않았다. 힘들어 하면서도 크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저 어린 것들이 나날이 커가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고도 했다.

아주 잘 자라는 게 정구지와 상추다. 상추는 겉잎을 따거나 솎아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오늘 점심은 솎아낸 상추 잎에 밥을 비벼서 먹는다. 된장과 고추장을 넣고 참기름 둘러 비빈다. 풋풋하고도 상쾌하고 고소한 맛이 감돈다.

“가만히 앉아서 사다 먹으면 편할 걸, 이 한 잎 먹자고 이런 고생하네요. 좀 비싼 것이우?”

아내는 고생이라 하면서도 눈가에는 웃음기가 감도는 듯했다. 힘들인 결과로 얻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조금의 보람을 느끼는 듯도 했다.

“내가 가꾸어서 먹는 게 좋고, 아무 공해 없는 청정한 것을 먹을 수 있어 좋지 않아?”

“그 재미없으면 어찌 일할 수 있겠소?”

그리고 아내는 어제 사다 놓은 파를 심어야겠다며 호미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날아가는 구름 사이로 드러난 햇살이 텃밭으로 내려앉았다. 바람이 살랑 불어와 상추 잎을 흔들었다.

“공기 하나는 참 좋잖아!”

“참 비싼 공기지요.”♣(20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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