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다래 순 따러 가세

이청산 2011. 5. 24. 15:36

다래 순 따러 가세
-청우헌 일기·9



“다래 순 따러 가세!”

성 선생이 말했다. 성 선생은 나처럼 이 한촌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는 이웃 친구다. 은퇴 생활 이력으로 말하면 나보다 몇 년 위다. 유유상종, 동병상련의 정일까, 내가 이 한촌을 찾아 온 것을 누구보다 가장 반가워했다.

한촌의 오월은 나물로 왔다. 쑥, 냉이, 달래, 민들레, 두릅 취나물, 엉겅퀴, 원추리, 비비추……. 앞집에 누구는 어딜 가서 무슨 나물을 많이 뜯었다는 둥, 누구는 내일 어디에 무슨 나물을 뜯으러 갈 거라는 둥, 어디에 가면 무슨 나물이 많다는 둥, 들에 산에 흐드러진 나물만큼이나 나물 이야기도 흐드러졌다.

오월 화창한 어느 날, 성 선생이 이 좋은 날 집에만 있을 거냐며 다래 순이나 따러 가자고 했다. 다래 순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머루 다래 그 다래도 모르느냐고 되레 묻는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 그 다래의 순이구나. 이름은 입에 익어 있으면서 본 적이 없는 걸 생각하니, 한 생애를 이슥하게 살아오면서도 참 덩둘하게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조용한 한촌에서 또 한 생애를 보내겠다고 찾아와 살면서 이런 것도 모르다니……. 참괴한 마음으로 ‘다래 순’을 검색해 본다.

“다래나무의 잎은 넓은 난형으로 가장자리에 가는 톱니가 있다. 어린잎은 4, 5월에 채취하여 나물로 먹고, 열매는 9월에 과일로 먹는다. 특히 열매는 만성 간염, 위염, 통풍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새순은 나물로 식용하는데, 끓는 물에 삶아서 햇빛에 말린 뒤 물에 불려 물기를 꼭 짠 다음 갖은 양념에 무치거나 볶아 먹는다.”

맛도 약효도 좋은 나물일 것 같다. 성 선생과 함께 다래 순을 따러 가기로 했다. 다래나무는 먼 산 깊은 산 속에 살기 때문에 따려면 도시락을 싸서 하루를 잡고 가야 할 것이라 했다.

성 선생의 말대로 두 집이 함께 도시락을 싸서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 앞 동네를 가로질러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골짜기 임도를 한참 달리다가 물소리와 새소리가 청량한 길섶에 차를 멈추었다.  

하늘을 가릴 듯이 우거져 있는 푸른 숲 사이로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이 숲 그림자를 안고 흐르고 있다. 물은 바위를 타고 흐르기도 하고 바위를 비켜 흐르기도 하면서 청아한 소리를 냈다. 물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산새들도 맑고 고운 소리로 지저귀었다. 눈이며 귀가 아주 맑게 씻기는 듯했다.

소나무, 상수리나무, 딸기나무가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개울을 건너 산 깊숙이 들어갔다

“저 바위 위에 좀 봐!”

계란처럼 둥글넓적하게 생긴 연초록 다래나무 잎들이 바위를 휘덮고 있었다. 송송 달린 잎들은 넝쿨을 이루어 바위를 감다가 다른 나무에까지 뻗어 올라 얽히고설키었다. 철이 조금 늦어 순은 거의 피어 버렸지만, 잎을 따도 좋은 나물이 될 것이라 했다. 두 집 부부는 조심조심 걸음을  내디디며 열심히들 잎을 땄다.

“이 잎 다 따면 죽지 않을까? 다래는 어떻게 열려?”

“그냥 두면, 다른 나무 다 죽이는 걸!”

열매도 좋지만, 다른 나무를 감으면 감긴 나무가 살기 어렵기 때문에 잎을 따 주는 것도 좋은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한참을 따다 말고 성 선생이 소리쳤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어? 배고프지 않아?”

내려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딴 것을 주섬주섬 챙기니 자루가 제법 불룩하다.

개울가로 내려와 손을 씻고 자리를 폈다. 점심 보자기를 풀었다. 우린 맨밥에 김치랑 가져 왔는데, 성 선생네는 참기름을 발라 김밥을 쌌다.

“야, 밥맛 좋다!”

김밥 하나 먹고 물 한 모금 마신 성 선생이 쾌재를 부르듯 말했다.

“다래 순도 다래 순이지만, 이렇게 아니면 언제 산골짜기 개울가에 앉아 놀아 보겠어.”

“맞아. 다래 순이 오늘 소풍 중매쟁이네.”

“그것도 모르고…….”

깊은 산골짜기로의 소풍을 위해 다래 순을 따러 가자고 했던 성 선생의 속내를 알고는 모두들 유쾌하게 웃었다.

청아하게 울려오는 물소리, 새소리에 유쾌한 웃음소리까지 합쳐져 골짜기는 맑고도 경쾌한 합창곡의 연주회장이 된 듯했다.

“뽕도 따고 임도 보고 좀 좋아!”

“우리 또 다래 순 따러 옵시다. 하하하~.”♣(2011.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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