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산악회에 들다

이청산 2011. 4. 26. 15:14

산악회에 들다
-청우헌 일기·7



문경 마성 사람이 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봄이 서서히 제 빛과 볕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산악회에 들었다. 예순 살 이상의 지역 사람들이 참여하는 산악회로 십여 년의 역사에 백여 회의 등산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성의 남쪽에 우뚝 서서 경북팔경 가운데 제1경 진남교반을 감싸 안고 있는 어룡산의 이름을 따 ‘어룡산악회’라 부르는 이 모임에 사십여 명의 육, 칠십 대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다고 한다.

나도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내가 마성에 살기를 결심한 까닭 중에 하나도 산을 생각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산악회라는 데는 참여하지 않았고, 참여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산이란 조용히 오르고 걸으면서 즐기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는 혼자 아니면, 많아야 두어 사람의 친구와 함께 오르곤 했었다.

그러나 이곳에 살고 보니,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사람살이의 한 모습일 것 같았다. 옆집 뒷집 그리고 앞마을 이웃이 참여하고 있고, 이웃 간에 모여 앉으면 산악회에서 등산한 이야기며 회원들의 소식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오를 때가 많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될 것 같아 이웃 성 선생의 안내를 받아 산악회에 들었다.

내가 가입 후 첫 등정은 상주 노음산으로 정해졌다. 회원들은 산악회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옛 마성양조장에 모였다. 양조장은 문을 닫았지만 사무실은 그대로 있어 동네 사람들이 가끔씩 모여 놀곤 한다는 곳이다. 첫 인사를 나누는 산행이라 일찍 나갔지만 몇 사람의 회원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모두들 얼굴에는 세상의 이력들이 한가득 배어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둘러보니 서예 액자 하나가 문득 눈길을 끌었다.

 

“魚遊春江深/ 龍飛遠靑空/ 山高水麗長/ 岳廻雲霧裙/ 會友情誼久

祝發展 魚龍山岳會 辛巳 春節 禹在善“

대충 이런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고기는 봄 강 깊은 곳에 놀고/ 용은 푸른 하늘 저 멀리 날으네/ 산은 높고 물은 맑아 유유히 흐르고/ 큰산에는 운무가 치마를 두른 듯한데/ 친구들의 정의는 오래도록 변치 않네.

어룡산악회 발전을 빌며, 2001년 봄, 우재선“

魚, 龍, 山, 岳, 會를 두운으로 하여 뜻과 정을 풀어나간 글 같았다. 이 글이 씌어진 것이 10년 전이고, 글을 쓴 분은 연로하여 회를 물러난 상태라고 한다. 그 세월만큼이나 액자에는 많은 더께가 끼어 있었다.

회원들을 태울 탈 차가 도착하여 차에 오르니 다른 동네에 사는 회원들이 벌써 많이 타고 있었다. 도중에 몇 사람을 더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나갔다. 차 중에서 총무의 사회로 회장의 인사와 회무 보고가 진행되고, 뒤이어 나더러 신입 인사를 하라고 했다. 마성이 좋아 마성에 살러 온 아무개라 인사하고, 여러 어르신을 뵙게 되어 반갑다는 말과 함께 산악회의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기를 애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첫 인사를 겸해 준비해 간 인절미를 돌렸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사람살이 모임의 구성원이 되어 갔다. 상주 노음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남장사 앞에 닿았다. 가는 비가 뿌리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 웬 비여!”

“무슨 소리, 비가 와야지. 곧 논도 갈아야 하는데-.”

등산보다 농사가 더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산을 펴 들고 남장사로 들어갔다. 남장사는 신라 흥덕왕 5년(830)에 진감국사가 창건했다는 유서답게 창연한 고색을 띠고 봄비에 고즈넉이 젖어가고 있었다. 어떤 이는 절의 경내를 두루 살피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극락보전으로 들어가 기도를 올렸다. 나도 부처님 앞에 엎드려 곧 태어날 손자에 대해 마음을 모았다.

절을 나와 산길을 올라간다. 비는 잦아들고 안개가 내려앉고 있었다. 중궁암 표지판을 지나 돌길을 오른다. 커다란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무덕무덕 피어있는 진달래도 보인다. “좀 쉽시다.” 회장님의 구령에 모두들 바위에 걸터앉는다. 배낭에 한 병씩 꽂아 간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쉬는 사이에 이웃의 소식을 나누기도 하고, 인정을 주고받는 농담도 흐드러진다.

우리가 오르고 있는 노음산은 해발 728.5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산세도 별로 험하지 않다. 한 시간 반 여를 올라 중궁암에 이르기까지 서너 번을 더 쉬었다. 절대 무리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궁암에 올랐을 때는 암자만 부옇게 보일 뿐 모든 것이 안개에 묻혀 있었다. 스님은 표정 없는 얼굴로 내다보았다. 등산객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뜰에 앉아 잠시 쉬는데 2,30분을 더 걸어 올라야 한다는 정상에까지 가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분분했다. 오를 사람은 오르고 쉴 사람은 쉬기로 결론이 났다. 정상에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몇 시간을 걸어야 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몇 사람이서 정상으로 향했다. 가파른 바위 길을 로프에 의지해 오르기도 하면서 40여 분이 걸려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까지 오른 사람들은 일행의 반 정도였다. 칠순의 회장님은 노음산 표지석에 엎드려 무사히 오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산신에게 손을 모아 절을 올렸다. 표지석에는 울창한 수림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철 따라 풍광을 달리하며 절경을 이룬다고 했건만, 어룡산악회 축시처럼 운무가 치마를 두른 듯이 온 산을 둘러치고 있어 사방 경개를 조망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일행들은 정상에 오른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산을 내려와 남장사 부근의 길섶에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은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정상을 올라가지 않은 사람들은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무릎이 좋지 않아 정상에 오르지 않은 성 선생은 나와 함께 하려고 점심을 들지 않고 있었다. 내가 도착해서야 따뜻한 국물을 나누어주며 함께 먹자 했다. 차가운 밥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차에 올랐다. 상주 자전거박물관에 들러 자전거의 여러 가지 모습을 관람하기도 했다. 차 중에서 여흥 판이 벌어졌는데, 총무님은 신임 인사로 날 보고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한 곡을 부르니 모두 박수를 치며 한 곡을 더 부르라 했다. 모두들 흥겹게 노래하고 박수 치며 출발지로 돌아왔다. 다음 달에 또 만나자며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랬다. 어룡산악회는 꼭 등산이 목적은 아니었다. 회칙에 정해 두고 있다시피 회원 상호간에 친목을 도모하면서 아울러 심신을 단련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회원들간의 친목이 먼저였다. 한촌 살이의 정겨운 모습이었다.

그 삶의 모습 속에 내가 들었다.♣(201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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