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사랑의 여백

이청산 2010. 10. 28. 17:17

사랑의 여백



 법정 스님이 허균의 <한정록(閑情錄)>을 빌어 한 이야기다.

중국 동진 때의 서예가 왕휘지(王徽之, 왕희지의 다섯쨰 아들)가 어느 날 밤 뜰을 거닐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외다가 문득 멀리 섬계라는 곳에 살고 있는 한 친구가 생각났다. 서둘러 배를 타고 밤새 저어 가서 날이 샐 무렵 친구 문전에 당도했으나 친구를 부르지 않고 그 길로 돌아서 왔다. 어떤 사람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내가 흥이 나서 친구를 찾아 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가는데, 어찌 꼭 친구를 만나야만 하겠는가."라고 했다.  

이 이야기 끝에 스님은 '그때 만약 친구 집 문을 두드려 친구와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며 아침을 얻어먹고 돌아왔다면, 그 흥은 많이 줄어들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다.

향긋한 운치가 느껴지는 이야기다. 내 안에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친구에 대한 정과 흥은 친구와 같은 것이 아닐 수도 있고, 같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와 같으리라 생각하며 그것을 확인하려 하다가는 흥과 정이 달라지거나 깨어질 수도 있다. 제 흥으로 친구를 찾아 왔다가 흥이 다하자 그냥 돌아가는 모습이야말로, 흥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정녕 흥겨운 모습일 것 같다.

수 년 전 내가 근무를 했던 지방은 풍광도 매우 아름답고 인심도 매우 좋은 곳이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며 넉넉하고도 따뜻한 인심에 늘 감동하면서 살고 있는 중에 불현듯 다른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지방을 옮겨와 살면서도 지난날의 그곳을 잊을 수가 없었다. 교통도 불편하고 거리도 멀어 남들은 탐탁해 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나에게는 이상향과 같은 곳이었다. 꼭 다시 한번 가서 살고 싶었고, 언젠가는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기회가 왔다. 간절하게 자원을 했다. 그리고 다시 갔다.

그러나, 다시 간 그곳은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있던 곳이 아니었다. 풍경도 변하고 인심도 변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비롯한 세상 모든 것에 전에 없었던 세월의 더께가 끼어 있었다. 그것이 풍경도 인심도 나를 달리 대하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결국 '첫사랑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때에만 아름다운 것'이라는 회한을 남기고 그 지방을 떠나와야 했다.

뉴스를 보거나 듣노라면 부부 사이가 화목하지 못해 급기야는 끔찍한 불행을 초래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모두들 아름다운 꿈과 달콤한 사랑을 기약하며 부부의 연을 맺었을 것이다. 화합하지 못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인연을 맺지는 않는다. 서로가 아름답게 느껴지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함께 보금자리를 이룬다. 그러나 살다가보면 함께 했던 꿈과 사랑이 자꾸만 조각나고 깨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서로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하고, 모든 부분을 다 알려고 하는 욕심들이 꿈과 사랑을 조각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상대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데서 오는 허탈감, 더 이상은 기대할 것이 없는 무력감이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깨어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향유할 수 있는 고유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서로 신비롭게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속에 꿈이며 사랑이 새롭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법정스님의 말씀은 다시 이어진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주어야 한다. 덜 채워진 그 여백으로 인해 보다 살뜰해질 수 있고, 그 관계는 항상 생동감이 감돌아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여백이야말로 꿈의 샘, 사랑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6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는 장기수와 그를 그림자처럼 옥바라지해 온 여성이 드디어 백년가약을 맺었다고 한다. 청춘 남녀로 만난 두 사람이 서로 열렬히 사랑하다가, 뜻밖의 일로 남자는 살인사건 공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사형수가 된 남자는 모범적인 수형 생활로 무기로 감형되었다가 다시 징역 20년형으로 줄었지만, 지금도 수형 생활은 계속 되고 있다. 그 사이 1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여자의 끊임없이 이어진 헌신적인 옥바라지가 남자의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이끌었고, 4년여의 형기를 남겨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결혼에까지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의 숭고한 사랑의 그 원천은 무엇일까. 서로를 향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신뢰와 기대란 바로 그들이 갖고 있는 사랑의 '여백'일지도 모른다. 그 여백이 그들 사이에 생동감을 감돌게 하여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남자는 여자를 위하여 오로지 한 마음을 갖게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여백은 신뢰와 기대를 따라 채워져 가면서, 채워지는 만큼 다시 늘어나는 마음의 공간이다. 그들 남녀가 다 채워진 마음으로 함께 살고 있는 사이였다면, 그토록 지순한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까. 지고지순의 사랑을 이룬 두 남녀에게, 그 사랑의 여백을 결혼 이후에도 오래도록, 가능하면 영원히 간직하기를 바라고 싶다.  

문득 어느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푸른 새벽입니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당신의 등을 바라보았습니다.

 새벽이 따뜻해지고 있었어요.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당신의 세계가 따뜻한 까닭일 겝니다.(구은주, '산')

 

이 시인이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당신'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오롯이 담긴 사랑의 여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꿈과 사랑을 무한히 담을 수 있는 크고 맑은 그릇이다. 담기면 담기는 만큼 더 커지는 그릇이다. 그 그릇에는 꿈과 사랑이 늘 담겨져 가고 있다. 그래서 그 여백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행복할 수 있고, 그 행복으로 '당신의 세계'를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여백은 '비어 있음' 속에 담길 수 있는 무한한 '사랑'이다

사랑의 여백은 곧 여백의 사랑이다.♣(201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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