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

중국 연수기

이청산 2010. 3. 1. 15:09

중국 연수기

-중국 여정기·1



새해 첫 달도 하순에 접어 든 2010년 1월25일 34명의 선생님들이 김해공항에 모였다. 계명대학교 공자아카데미의 주선으로 중국 교육부의 초청을 받아 중국으로 가는 길이다. 공자아카데미[孔子學院]는 중국 교육부가 세계 각 나라에 있는 대학교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중국의 문화나 중국어 등의 교육 및 전파를 위해 세운 교육기관이다. 중국 교육부 산하 중국국가한어국제보급위원회(中國國家漢語國際推廣領導小組辦公室, '한판[漢辦]'으로 약칭)에 속해 있으며 중국 정부가 운영비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는 단체이다. 계명대학교 공자아카데미는 북경어언대학(北京語言大學)을 시행 파트너로 하여 2007년 중국 한반과 여러 가지 문화 교류 협력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고, 현재까지 교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오고 있다. 이번 행사도 그 교류 활동의 일환으로 '한국교육CEO 중국교육문화연수'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대구 17명, 경북 17명의 선생님들이 대상자로 선발되어 계명대 중국센터 윤창준 교수와 실무 담당자 김동하 선생의 안내로 중국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부산 공항에서'계명대학교 공자아카데미 한국교육CEO 연수단-세계를 향한 계명, 중국을 향한 열정'이라 새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기념 촬영을 하며 중국 문화의 바른 이해를 위한 결의를 다지고 북경행 비행기를 탔다.

12시 반에 탑승한 중국민항기는 1시10분경에 동체를 들어올려 넓디넓은 바다와 평야를 날더니 2시 반경에 세계 최대의 공항이라는 북경공항에 내렸다. 시계는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제부터 1시간을 당겨 시간을 읽어야 한다. 시차 때문이다. 공항 경내를 나오니 협력 학교인 북경어언대학의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학의 버스는 중국을 떠나는 시간까지 우리와 함께 하며 방문 프로그램의 진행을 도왔다.

방문 프로그램은 교육 현장 방문과 역사 유적지 탐방 등 크게 두 가지로 짜여 있었다.

학교 방문 프로그램으로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북경어언대학이었다. 공북경어언대학의 손실 여항생처장 항에서 바로 찾아 갔는데 먼저 학교의 홍보관과 시설을 둘러보고, 회의장으로 안내되었다. 손실(孫實) 유학생처 부처장으로부터 환영사를 듣고 학교 소개를 받았다. 열렬히 환영한다는 말씀과 함께 외국인을 위한 중국어 전문 교육기관으로서 한국과도 긴밀한 교류를 원한다고 했다. 협력 학교로서 우정어린 인사를 나누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학교는 북경대학, 청화대학과 함께 북경의 3대 대학 중의 하나라고 하는 인민대학이었다. 인민대학에는 우리나라 전국의 16개 대학 공자아카데미에서 온 300여 명의 교육CEO들과도 함께 방문했는데, 대학 관계자들로부터 역시 환영사와 학교한민 부주임의 교육에 관한 강의 소개 말씀을 듣고, 황위평(黃衛平) 교수의 '중국 경제 발전의 회고와 현황'이라는 주제의 특강과 한민(韓民) 중국교육부 교육발전중심 부주임의 '중국 기초 교육의 현황'에 대한 특강을 동시통역으로 들었다. 개혁, 개방 이후 고도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은 앞으로도 성장을 계속할 것이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소비 패턴을 조절해 갈 것이라는 것과, 중국의 초·중등 교육은 질적, 양적으로 많은 팽창을 해 왔지만 응시교육(應試敎育)-입시 위주 교육-의 폐단이 나타나, 소질·인성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라 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북경제4중학교와 서안의 서안외국어학교를 방문하였다. 제4중학교는 초·중·고 과정을 다 운영하고 있는데, 교학의 질과 북경제4중학전인교육을 중시하는 교육과정 운영으로 '걸출한 중국인 양성'에 힘을 쏟고 있으며, 1일1시간 체육 수업으로 학생의 체력증진에 애쓰고 있고, 고교 졸업생들은 국내외의 유수한 대학에 많이 진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안으로 날아가 찾아간 서안외국어학교는 1963년 당시 주은래 총리의 지시에 의해 세워진 학교로 국제적 인재의 배출을 목표로 하여, 독일, 일본, 프랑스 등 많은 외국의 학교와 교류 중이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 유학 와 있는 남매 학생을 소개하기도 했다. 서안외국어고등학교교문 옆의 벽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走向世界的起點'이라는 슬로건이 눈길을 끌었다.

교육 현장 방문 프로그램은 2개의 대학과 2개의 중등 교육기관을 방문으로 끝이 났다.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문화권으로 역사적인 유대를 비교적 긴밀하게 이루어온 탓인지 학교 교육의 현실과 문제점은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은 것 같아, 양국이 상호 협력하여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을 모색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역사 유적 및 문화 탐방은 일정에 따라 북경에서는 황제가 제천의식을 행하던 현존 중국 최대의 제단인 천단공원, 2008 베이징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으로 새 둥지 모양을 형상화해 지었다는 연면적 약 25만㎡의 국가체육장, 중국 황제권력의 상징으로 명의 영락제가 14년 동안 연인원 12008 베이징올림릭 메인스타디움00만 명을 동원해 지었다는 9,999칸의 고궁(자금성),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별궁이자 황실 정원으로 청나라 서태후의 별궁으로도 쓰였던, 290만㎡의 부지 위에 인공 호수와 인공 산을 조성한 이화원 등을 탐방하였다.

그리고 서안으로 가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하는 진시황제의 지하 대군단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의 거대한 3개 용갱을 둘러보고, 면적이 249,775㎡, 높이가 115m에 이르렀다고 하는 지하궁전인 진시황릉, 당 현종이 14년 동안 42차례나 양귀비와 로맨스를 즐겼다는 여산 산록의 온천 화청지를 관람하였다. 그리고 14세기 명나라 때 조성된 것으로 높이 12m, 두께 12∼18m, 길이 약 14㎞에 이르는 서안성 명대성벽, 당 고종이 어머니 문덕왕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23만㎡의 부지에 조성했다는 대자은사와 652년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4각7층 67m 높이의 전탑으로 쌓은 대안탑 등을 둘러보았다.

우리 일행이 둘러본 유적지는 천단공원 같이 나라에 풍년과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했던 사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황제와 권력자의 평안과 쾌락 추구를 위해 조성되고 지어진 것들이었다. 엄청난 규모만큼이나 백성들의 희생도 컸을 것임은 물론이다. 권력자의 안락을 위한 백성들의 희생쯤이야 당연하게 여겨졌을 시대에 이루진 것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의 원망과 원한은 적지 않았을 것이고, 그로 하여 망국의 지경에까지 이른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시대의 충천했을 백성의 원성이 오늘날에는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역사와 문화의 아이템들이 되어 중요한 관광 자원으로 후세 백성의 한 생활 방편이 되고 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한판'이 주최하는 만찬 행사와 중국 문화공연 감한판 공자학원 주최의 만찬상이었다. 방문 이틀째의 밤에 '凱瑞豪門食府'라는 대형 연회장에서 '한판'의 조국성(趙國城) 부주임과 우리나라 16개 대학 공자아카데미 연수단 300여 명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만찬이 베풀어졌다. 중국 교육부의 고위직 관직인 조 부주임은 이웃사촌이라 할 수 있는 한·중 간의 빈번하고 활발한 인적 교류 현황을 돌아보고, 문화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와 우호 증진을 더욱 강화해 나가자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한국의 대표가 한·중 문화 교류의 역사적인 인연을 곁들여 답사를 겸한 인사를 하고 선물을 교환하였는데, 중국 측에서는 참석자 전원에게 중국어 학습기(學習器)와 학습서를 선물로 주었다. 물론 중국어의 세계 전파를 위한 것이다. 이어 전국 전통 무예와 가무가 공연되는 가운데 우호적이고 화기로운 만찬이 진행되었다. 이후로도 중국 여행 전 기간을 통하여 중국 측의 정성어린 접대는 계속되었다. 중국공자학원총본부를 찾아 중국 문화를 면모들을 체험하고 그날 밤 천지극장에서의 중국 문화의 한 부분인 서커스 공연 관람도 중국 문화에 다가서기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렇듯 중국의 문화와 언어의 세계적 전파를 위한 활발한 노력만큼이나 중국의 경제도 활기를 띠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연수단이 방문한 북경, 서안에서 특별히 눈에 많이 뜨인 것은 중국 중앙은행을 비롯하여 농업은행, 상업은행, 기업은행, 건축은행, 교통은행 등 이름도 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직종·직능별 은행들이었다. 시내 거리 어디를 지나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서안은 지금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건축 중인 대형 빌딩이며 아파트들이 많이 보였다. 밤에 잠시 나가본 야시장에도 발을 딛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인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경제활동이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중국 경제에도 빛과 그늘은 분명히 갈라져 있는 것 같았다. 시가지 한가운데도 빈민촌이 보일 뿐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크게 갈라지는 것 같았다. 도시에 숲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빌딩들에 비해 시골의 허물어져 가는 토담집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대형 식당에서 식도락을 즐기고 있는 도시인들의 말끔한 모습에 비하여 관광객에게 애걸하다시피 기념품 판매에 매달리고 있는 장사꾼들의 찌든 모습은 애잔해 보이기까지 했다. 곧 넘어질 듯한 노파가 수공예품을 들고 나와 흔드는 모습은 처연함마저 느끼게 했다. 어떤 장사꾼은 값을 터무니없이 불러 깎아주는 선심을 쓰다가 사람마다 값을 다르게 받는 행태를 보여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하기도 했다. 선진을 지향해 가고 있는 중국의 고질적인 후진의 면모였다. 교통질서를 쉽사리 무시하는 운전자의 모습에서도 후진적인 면모는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나 활기에 차 있는 경제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상호 이해의 바탕위에서 문화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자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중국 방문의 커다란 성과라 해도 좋을 듯하다. 물론 이 성과는 억지 쇼핑과 같은 소모적인 관광을 배제하고 문화 체험 위주로 여행을 기획한 계명대학교 공자아카데미의 배려와 내방객의 환대에 애를 써준 '한판'의 정성 덕분일 것이다. 이 또한 민간 외교의 한 성과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친구를 하나를 새로이 얻은 듯한 즐거운 마음을 안고, 좋은 여행을 주선해 준 계명대학교 공자아카데미에 감사하며 대구로 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잠자리처럼 아주 가볍게 날아가고 있는 듯했다.♣(2010.2.6)

 

■ 중국 여정기, 다음 링크로 계속 됩니다.

    중국연수기

    천단공원의 놀라움

    고궁과 이화원 그리고 서태후

    지하 세상의 군단과 궁전

    만두집 덕발장

    화청궁의 사랑과 눈물

    대안탑과 서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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