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그대 맑은 눈을 들어

이청산 2009. 9. 19. 10:14

그대 맑은 눈을 들어

-조지훈문학관에서



초가을의 맑은 햇살이 결 곱게 내려앉던 날, 문향 영양으로의 문학 기행. 석보 두들마을에서 이문열의 문학 자취며 이병각, 이병철의 시를 음미하고, 영양 감천으로 가서 오일도의 삶의 흔적과 그의 시에 취했다가 일월 주실마을로 간다. 조지훈의 형 조세림의 시비가 서 있는 시인의 숲을 지나 조지훈문학관에 이른다. 고아한 한옥 대문 처마 밑에 시인의 미망인 김난희 씨가 썼다는 현판 '芝薰文學館' 굵직한 휘호가 먼저 길손을 맞는다.

전시관에 들기 전에 모두들 푸른 잔디 깔린 안마당에 모였다. 하 선생이 조지훈의 시 '민들레꽃'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오늘 문학 기행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다.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면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하 선생의 물기 밴 낭독 소리는 고즈넉한 뜰 안을 촉촉하게 적셔 나갔다. 뜰을 둘러서 있는 사람들도, 뜰의 풀들도 아련한 그리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움은 민들레꽃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 선생의 청아한 목소리로부터 번져 나오는 듯했다. 임과 나의 거리가 아득함을 노래한 둘째 연, 임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그 영원성을 노래한 셋째 연을 넘어가 마지막 연에 이른다.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이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하 선생의 목소리는 더욱 진한 물기로 젖어간다. 민들레꽃은 임의 얼굴이 되어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느니. 애절한 목소리의 낭독이 끝났을 때 모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맑은 눈동자가 어디에선가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하 선생의 낭송은 '낙화'로 이어졌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낭독만 하는 것으로는 지는 꽃을 바라보는 시인의 애틋한 정서를 다 드러낼 수 없다고 여겼음인지 가락을 넣어 노래로 불렀다. 떨어지는 꽃잎의 하늘거림 같은 곡조가 실안개 피어나가듯 뜰 안 잔디 위로 번져 나갔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하고 낭독이 끝났을 때 모두들 감동의 박수를 쳤지만, 눈자위는 사뭇 몽롱한 꿈에 젖어 있었다.

전시관으로 들어서자 '승무'가 청랑한 목소리로 흘러 나왔다. 벽면이며 전시대에는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마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시인, 학자, 지사로서의 조지훈의 모습과 업적들이 여러 가지 글이며, 서적, 유필, 유품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김난희 여사의 애정 어린 글씨며 그림과 더불어 투병 중일 때 여동생 조동민 씨와 함께 낭독했다는 '낙화'도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장치를 해 놓았다. 소년 시절부터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시인의 여러 모습과 고고한 생애를 한눈으로 살필 수 있게 정리한 자료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 자료 속에는 때와 장소가 다 다른 시인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다 다른 모습에서 한결 같이 볼 수 있는 것은 예리한 듯하면서도 정감이 어려 있는 맑은 눈빛이었다. 시인이 민들레꽃에서 찾아낸, 시인을 향하던 그 맑은 눈빛과 같은 것인지도 모를 눈빛이었다. 지금 시인은 그가 노래했던 민들레꽃이 되어, 시인을 찾는 이들의 임이 되어, 맑은 눈을 들어 시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 위에 하 선생의 맑은 목소리가 겹쳐진다.

 

이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하 선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 지금 시인은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아득한 거리 머나먼 곳에 있지만, 조용히 우리를 찾아와 있다. 그렇게 우리 곁에서 별빛 아래 고요히 앉아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가슴을 쓸고 있고, 창을 열고 푸른 산과 마주 앉아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을 바라보고 있고, 별빛처럼 빛나는 번뇌로 세상일을 헤아리고 있다. 모두가 우리의 그리운 모습들일 뿐이다. 그 조용한 모습이 하 선생의 목청을 타고 흐르고 있다.

시인은 정작으로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지훈시공원'에 와 있었다. 우국의 고뇌에 빠진 임금님으로 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박 선생이 봉황의 근심으로 나타난 시인의 우국지정을 헤아릴 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인은 또 고운 마음을 가진 묻혀서 사는 이의 모습으로 와 있었다. 하 선생이 시인의 고운 마음 되어 고운 목소리로 '낙화'를 다시 한번 읊조리는 순간 시인은 모든 이의 가슴속으로 들어앉았다. 시인은 춤을 추는 여승이 되어 와 있었다. 조 선생이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며 '승무'를 낭독할 때, 여승의 긴소매는 넓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서쪽으로 기울어 가던 해가 우뚝 선 시인의 입상을 비추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 문학 기행의 날도 저물어 갔다. 시공원을 내려와 시인의 영명한 정기가 어린 생가를 돌아 나왔을 때 시인의 맑은 눈동자와도 같은 햇살이 우리의 걸음걸음에 내려앉고 있었다.

맑은 눈을 들어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리운 임이 되어 보고 있었다.♣(200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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