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어메니티(Amenity)를 찾아서

이청산 2009. 8. 19. 11:37

어메니티(Amenity)를 찾아서



농촌 어메니티 체험 연수-. 신기한 이름의 연수였다. 어메니티란 무엇이며, 그 체험 연수란 또한 어떤 것인가. 이 연수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머잖아 맞이해야 할 나의 농촌 생활을 앞두고 그 삶의 모습을 잠시나마 겪어 보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농촌진흥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시행하는 사흘 동안의 이 연수에 참가하기 위해 개강 전 날의 늦은 오후에 수원으로 가는 차를 탔다. 수원역에 내린 것은 거리에 어둠이 짙어지면서 네온이 휘황한 불빛을 현란하게 뿜어내고 있을 때였다.

저녁 먹을 만한 집을 찾기 위해 번잡한 거리를 헤매다가 어느 해장국집을 어렵게 찾아 요기를 했다. 식당 주인에게 물어 유숙할 모텔을 찾아갔다. 모텔 간판 불빛을 따라 거리를 걷고 있는데, 거리 양쪽에는 자극적인 색등 불빛이 시선을 붙잡는 커다란 쇼윈도가 늘어서 있었다. 그 안에는 선정적인 차림의 젊은 여인들이 높다란 의자에 진열품처럼 앉아 있었다. 어떤 여인은 열어제친 창의 문턱에 야릇한 포즈로 앉아 행인을 향해 손짓을 했다. 이마에서 진땀이 났다. 거리를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겨우 모텔을 발견하여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그 거리의 들머리 길바닥에는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청소년이 아닌 사람들은 통행해도 된다는 말인가.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로 갔다. 넓게 펼쳐져 있는 푸른 잔디밭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고 아늑하게 했다. 전국에서 사십여 명의 연수생이 모였다. 개강식에 이어 이 연수 과정 담당자인 김은자 연구관의 '농촌 어메니티'에 관한 강의로 연수가 시작되었다. '어메니티(Amenity)'란 '단순히 하나의 성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카탈로그'로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 또는 전체로서의 쾌적한 상태'라고 했다.

'농촌 어메니티'란 농촌지역의 정체성, 장소성, 역사성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가 만들어내는 환경에 대한 긍정적인 형상이라 했다. '긍정적인 형상'이라는 말이 빛살처럼 뇌리로 파고들었다. 오지, 낙후지역일수록 농촌 어메니티 자원의 보고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어메니티'란 곧 '-다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농촌은 농촌답고 도시는 도시다울 때 어메니티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수는 강의, 견학, 체험으로 진행되었는데 강의에서는 농촌 어메니티의 개념, 발굴 및 개발, 자원화 방안, 농촌 전통 테마 마을의 활용 등을 논했고, 견학 프로그램은 농촌 어메니티 종합전시관,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과학관 등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교육농장을 찾아가 천연 염색을 배우고 실습했다. 테마 마을로 가서 그 마을의 볼거리, 먹을거리, 쉴 거리, 배울 거리, 놀 거리, 살 거리, 알 거리 등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자연 풍광이며 생태 환경을 둘러보기도 하고, 원예 치료며, 두부 만들기, 떡메를 쳐서 떡을 만드는 일들을 체험하였다.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달린다. 차창 밖으로 산천과 들판이 연출해 내는 풍경이며, 시골과 도회의 삶의 정경들이 엇바뀌면서 끊임없이 흘러간다. 창 밖 풍경에 겹쳐 연수 과정 속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영사 필름처럼 잇따라 뇌리 속을 흘러간다. 농촌은 어떤 어메니티를 간직해야 하고, 도시는 또 어떤 어메니티를 지녀야 하는가.

연수에서 농촌 어메니티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의 지식이나 체험일 뿐이고, 그것으로 농촌을 온전히 이해했노라고도 할 수 없지만, 그 쾌적성에 관해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발견이요, 기대 어린 기쁨이었다. 농촌만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어야 할 것이 '어메니티'라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나에게 있어왔던 것처럼 내 안에서 차 올랐다.

수원 역 앞의 홍등가 풍경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건 결코 어메니티가 아니다. 쾌적성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메니티의 정반대 편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의 일그러진 풍경일 뿐이다. 그것이 나에게 '어메니티'를 더욱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그리하려고 그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났던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사흘 간은 미구에 내 삶의 모습으로 다가올 정겨운 전원생활을 기대하면서 그 어메니티를 찾아 헤매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끝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진정한 어메니티는 어느 곳도 아닌 마음속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환경이 아무리 맑고 깨끗해도, 삶이 아무리 편리하고 풍요로워도 마음으로부터 '쾌적성'을 얻지 못하면 어찌 어메니티라 할 수 있을까.

전원으로 돌아온 도연명(陶淵明)은 이렇게 말했다.

 

歸去來兮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하여)

世與我而相違 (세상과 나는 서로 잊으리니)

復駕言兮焉求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얼 구하랴.)

悅親戚之情話 (친척들과 정담을 즐겨 나누고)

樂琴書以消憂 (거문고 타고 책 읽으며 시름 잊으리.)

 

그가 사귀지 않으려는 세상이란 곧 삶의 어메니티가 없는 곳이고, 그가 찾으려 한 것은 어메니티가 빛을 내는 세상일 터이다. 정다운 이웃들이 있고, 맑고 밝은 마음의 자유가 있는 세상-.

내 삶의 한 장을 넘기게 되는 날, 나의 전원으로 갈 것이다. 내가 찾아갈 전원의 모습도 도연명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넉넉하고 맑은 풍경이며 싱싱한 푸성귀 돋는 텃밭이 있고, 막걸리 잔을 함께 나눌 이웃이 있고, 정겹게 읽을 시와 즐거이 노래할 풍광이 있는 곳-. 그 마음의 자유 천지, 그 어메니티에 남은 한 생애를 오롯이 담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2009.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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