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아들의 휴가

이청산 2009. 8. 6. 17:04

아들의 휴가



아들이 휴가를 맞아 제 식구들을 데리고 아비, 어미를 찾아왔다. 모처럼 맞은 휴가라고 저들 좋은 데로 놀러 가지 않고 부모를 찾아 온 것이 기특했다. 아내는 '힘들 텐데 무엇 하러 왔느냐?'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반가운 모양이다. 무얼 주랴, 무얼 차리랴, 하나라도 더 챙겨 주려 애를 쓴다.

아들, 며느리도 반갑지만 손녀는 더욱 반갑다. 세 돌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지만, 나이를 물으면 '네 살!'하면서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인다. 몇 달 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영리해지고 말가리도 더욱 또렷해진 것 같다. 노래도 잘 부르고, 율동도 귀엽게 잘 한다. 유치원에서 보고들은 대로 선생님 흉내도 곧잘 낸다. 고 조그만 것 하나가 온 집안에 만발한 웃음꽃을 피운다.

'내일 어디로 놀러 갈까?'고 하니 며느리가 '직지사'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직지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유서가 깊고 큰 절이다. 며느리가 왜 절엘 가보고 싶어하는지 까닭이 없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다섯 식구가 한 차에 타고 직지사를 향해 김천으로 갔다. 아들이 운전을 하는데, 손녀는 꼭 할아버지 옆에 안고 싶다고 했다. 며느리와 내가 뒷자리에 타고 손녀를 중간에 앉혔다.

"윤이는 할아버지만 좋아해! 질투 난다. 하하하" 차안에서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직지사에 도착했다. 산문을 통과하여 대양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앞에 섰다. 세월의 더께가 창연한 석탑에는 맑고도 그윽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온 식구가 함께 대웅전 법당으로 들어갔다. 본존불 양쪽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앉아있다. 중생들의 안락과 수명을 지켜 주고 재난과 근심을 물리쳐주시는 부처님들이다. 합장반배 후에 오체투지로 큰절을 여러 번 올렸다. 손녀 윤이도 절을 곧잘 한다. 절을 마치고 다시 반배 후에 법당을 나왔다.

공을 드리고 나와서도 무엇을 빌었느냐고 묻지들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가족의 공통된 한 가지 소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 내외는 아들을, 우리 내외는 손자를 보는 것이다. '직지사'의 '직지(直旨)'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 사람의 마음을 직관함으로써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함)에서 온 것이거늘, 오늘 우리가 직지사에 와서 말 없이 한마음 되어 한 소원 비는 것 또한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 아니랴.

윤이가 절 마당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붉게 핀 배롱꽃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향적전, 비로전, 관음전. 응진전, 명부전을 두루 살피며 경내를 거닐다가 직지사를 나섰다.

문경으로 가보기로 했다. 문경은 나의 퇴임 후 우리 내외가 살 곳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집터를 하나 장만해 놓았다. 내륙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려 문경의 마성에 이르렀다. 신현리의 '친환경마을'이라는 표지적이 우리를 반겨 맞았다.

동네 가운데 있는 집터로 가니 그 땅에 동네사람 누가 옥수수며 콩, 호박을 우거지게 가꾸어 놓았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집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앉히면 좋을까 의논하는 사이에 손녀는 옥수숫대 사이를 재미난 듯 뛰어다닌다. 저들이 사는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 신기한 모양이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이태 후에는 실컷 보게 해 주마. 우리 내외는 손녀를 보며 웃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강에서 더위를 식히며 놀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어느 식당에 들어 이곳 청정한 강물에서 난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으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는 길을 달렸다.

다시 이튿날, 저녁 무렵에는 저들이 사는 서울로 가야한다. 남은 시간 무엇으로 휴가의 추억을 더해 줄 수 있을까? 강가의 모래사장을 찾아가 윤이가 마음껏 뛰어 놀기도 하고 모래 장난을 하게 해 주면 어떨까? 했더니 모두 좋다고 했다. 낙동강 백사장으로 달려갔다. 금모래 은모래 반짝이는 넓디넓은 모래톱이었다. 벌판 가운데 자리를 잡고 그늘막을 쳤다. 푸른 강물은 저만치서 한가롭게 흘러가고 몇 마리 물새가 유유히 하늘을 날았다.

상상한 대로 윤이는 좋아하고 기뻐했다. 모래 위를 맨발로 뛰어다니며 뒹굴기도 하고, 모래를 파내어 구덩이를 내거나 움집을 짓기도 하고, 소꿉놀이 할 때 마냥 그릇에 모레를 퍼담아 나누어주기도 했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섬 집 아기' 노래를 하고 유희를 하듯 빙그르르 돌기도 했다. 때로는 할아비와 손을 잡고 걷자고도 하고, 제 아비랑은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 하나하나 노는 모습이 보는 사람들에게는 한량없는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저와 함께 손뼉을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저의 즐거움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었다. 강둑 위의 빌딩 뒤로 슬쩍 숨는 해를 눈치 챌 겨를이 없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고기를 좀 먹여주고 싶다고 했다. 채식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고깃집에는 좀처럼 가지 않지만, 많이 뛰어 논 윤이와 젊은이들을 위해 고기 한 번 굽자고 했다. 어느 고깃집으로 갔다. 아들과 며느리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며 아내는 즐거워했다. 자기가 먹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윤이는 두어 점을 먹고 잘 노는가 싶더니, 제 어미에게 기대어 잠이 들어버렸다. 모래사장에서 뛰어 논 것이 좀 고단했던가.

자는 윤이를 안고 아들과 며느리는 떠났다. 뽀뽀도 못하고 빠이빠이도 못했다. 며느리가 손을 흔들었다. 저들의 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즐거운 휴가가 되었을까. 즐거움을 많이 가지고 갔을까. 즐거움을 모두 남겨 놓고 떠나버린 것 같다. 우리 부부의 머리와 가슴속에는 온통 저들이 두고 간 즐거움뿐이다. 그 가득 찬 가슴을 두고도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뭐가 통 다 비어버린 것 같네."♣(2009.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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