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영미와 지인이

이청산 2009. 5. 16. 13:33

영미와 지인이



이게 얼마 만인가! 언젠가 포항 부두에서 울릉도 여행을 다녀오는 영미 내외를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그 세월도 까마득히 흘렀다. 지인이와는 헤어진 이후 처음이다. 갈래로 땋은 머리의 해맑은 여고생들-. 그 청순한 소녀들과 헤어진 지 삼십 년 가까워 오던 오월 어느 날, 사십대 중반의 중년 부인이 된 그들과 감격 어린 해후의 손을 잡았다.

전화기에 울려나오는 뜻밖의 목소리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선생님, 저 영밉니다."

"어? 영미!"

지난날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반가운 목소리였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웃기를 잘하던 영미의 화사한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나와 아내의 안부를 함께 물으며 지난 시절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참 많이 그립다고 했다. 그 때 영미는 우리 반 실장이었다.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요. 지인이와 함께요."

그 때도 지인이와 단짝이더니 지금도 다정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며칠 후, 고속도로를 달려오고 있다고 전화를 했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만나면 무슨 말부터 먼저 해야 할까. 침잠해 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봄날의 새순처럼 쏙쏙 솟아오르면서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활짝 피어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영미와 지인이-.

"이게 얼마 만이야!" 세 사람의 손을 함께 잡고 한동안 놓을 줄을 몰랐다.

세월이 오히려 고마웠다. 모든 것을 다 쓸어 가지는 않고, 많은 것을 남겨 놓았다. 지난날의 그 얼굴 그 모습을 남겨 놓고, 그 웃음 그 마음을 남겨 놓았다. 소녀가 원숙한 부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나를 보고는 살이 많이 빠졌다며 놀라워했다. 늙어 가는 탓이라 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타임머신을 타기라도 한 듯 이십 칠, 팔 년 전의 일로 쉽게 옮겨갔다.

"그 때,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그래? 하하"

"아니에요. 꾸중하실 땐 좀 무서웠지만, 평소에는 늘 자상하셨잖아요?"

야자(야간자율학습) 감독이 아닌 시간에도 불쑥 나타나서 교실을 둘러보곤 하는 바람에 도망가기가 어려웠다는 기억을 회상하며 함께 웃었다.

"그래도 살짝 빠져나가 영화 구경 갔다 온 거 모르시죠?"

"그랬어? 하하하"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 주기 위해 애쓰던 모습이며, 밤늦도록 아이들과 진학 상담을 하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내가 그랬던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별스럽지 않은 나의 일상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영미는 '선생님의 그런 열성 덕분에 대학을 진학할 수 있었고, 선생님처럼 국문과를 갔다.'고도 했다. 영미의 말을 듣고 있기가 흐뭇하고도 쑥스러웠다.

그 때 영미는 공부도 부지런히 했지만, 친구들과 학급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하고 심부름도 잘했다. 지인이는 별 말 없이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과 미소 띤 얼굴로 친구들의 신망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대학을 가고, 나는 그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갔다.

그녀들에게 남편과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영미의 아들은 군대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처럼 '영미, 지인이'하고 부르기가 민망스럽기도 했지만, 마음은 지금도 사랑스런 제자들이기만 했다.

지인이는 섬유 기술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여 아들 딸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남편은 지금 해외에서 근무중이라 했다. 일년에 한 번쯤 귀국하여 한 달쯤 머물다가 임지로 돌아가곤 한다고 했다. '많이 보고 싶겠다.'고 했더니, '뭘요.'하면서 학창 시절의 그 미소를 떠올리며 살풋이 웃는다. 아이들이 착실하게 말을 잘 들어 주는 재미로 살고 있다고 했다. 지인이는 착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다. 규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을 못 봤다. 어머니처럼 아이들도 착하고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미는 지금 중·고등학생들에게 '독서·논술 지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땐 엄두를 못 냈지만, 아이들이 크고는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국문과'를 졸업한 값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선 책과 친해지기를 애썼다고 했다. 몇 년 동안에 문학, 철학 등 수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 읽기를 통해 '독서·논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했다. 가르치는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국어 수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르더라고 했다. 영미의 학교생활기록부에 내가 '성취 동기가 강한 사람'이라고 썼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때도 영미는 지금처럼 매우 활동적이었다.

지인이는 정적인 성격이라 하면, 영미는 동적인 면이 강하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그 둘이 지금껏 우정을 새겨 나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서로 다른 듯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낙천적인 모습이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둘 사이의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공통점이기도 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자세에서 너그러움과 이해심이 피어날 수 있고, 이런 마음들이 이들의 우정을 한결 같게 해 준 것 같다.

하버드대생 268명의 72년 간 인생을 추적하여 연구한 하버드 의대 정신과의 조지 베일런트(Vaillant) 교수는 사람이 행복하게 늙어 가는 데 필요한 일곱 가지 요소를 연구의 결과로 추출해 내었는데 그 첫째로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를 들었다.

그녀들이라고 삶에 고통과 고난이 왜 없었겠는가. 갖은 어려움을 헤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이제 그들도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세월을 살고 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성숙한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들을 가진 것만 해도 얼마나 성숙한 모습인가. 잘 가르치진 못해도 잘 살아준 것이 고맙고, 행복하게 살아갈 그들의 앞날이 믿음직스럽다.

언제 다시 한번 꼭 찾아뵙겠다며, 꼭 만나자며, 서로 손을 잡고 몇 번이나 흔들었다. 차창을 내려놓고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길을 주고받으며 그들은 떠났다.

그들이 다녀간 며칠 뒤 '스승의 날'이 되었다. 아이들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은혜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영미와 지인이에게도 그랬지만, 이 아이들에게도 베풀어준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하다. 다만, '성숙한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조용히 빌 뿐이다.♣(200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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