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이청산 2009. 2. 27. 15:32

길은 어디에 있는가



  '길 걷기'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그 중에서도 '산길 걷기'를 더욱 좋아한다. 브르통은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라고 했지만, 어쨌든 걷기는 마음과 몸의 건강을 얻고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임지를 옮길 때마다 생활 근거지 주변에 매일 걸을 만한 산길이 있느냐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임지에 짐을 풀고 나면 맨 처음 하는 일이 길을 탐색하는 일이다. 이리도 걷고 저리도 걸어보고, 올랐던 길을 내려도 보고, 내렸던 길을 올라도 보면서 이른 아침이나 퇴근 후에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어느 길, 어떤 길일까를 열심히 재어 본다. 그 중에 한 시간 정도 걸리면서 적당한 가풀막도 있는 어느 한 길을 선택하여 '나의 길'로 정하고, 날마다 걷기를 즐기며 심신의 건강을 돋운다.

지금의 임지에도 동네 가까이에 산이 있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그러나 '나의 길'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길이 그러하지만, 길은 한 갈래만이 아니었다. 여러 곳에 여러 갈래로 나있었다. 어쩌면 지상의 모든 공간이 다 길일 수도 있다. 이 길 저 길을 오가고, 오르내리기를 달포도 넘게 하고서야 드디어 길 하나 찾았다. 찾았다기보다는 이 갈래 저 갈래를 적절히 조합하여 나의 길을 정한 것이다.

포장길을 조금 걸어 산아래 이른다. 숲 속으로 들어 오르막길을 걷는다. 잠시 경사가 심하고 거친 가풀막을 오른다. 등판에 삽상한 땀방울이 맺히면서 상쾌한 기분이 느껴진다. 등성이에 오르면 전망 좋은 곳에 정자가 서 있다. 정자에서 보는 시가지 풍경이 사뭇 현란하다. 각양의 집들이며 각색의 거리 모습을 조망하며 삶의 모습들을 상상해 본다.

비탈을 타고 내려가면 약수터와 체련장이 나타난다. 체조로 몸을 가볍게 풀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잡는다. 약수터를 나서면 동서로 길게 앉은 무슨 연수원 건물이 산을 등지고 길다랗게 놓여있다. 거기서부터는 계속 포장길을 걸어 집으로 와야 한다. 연수원 뒷산은 동네로 내려가는 능선과 이어지고 있다. 연수원 뒷산에 길이 있다면 산길을 걸어 동네에까지 이를 텐데, 수풀만 우거져 있을 뿐 길은 보이지 않는다. 팍팍한 포장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계절이 바뀌어 무성하던 나뭇잎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무들 사이를 걸어 연수원 건물 뒤쪽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얼기설기 얽혀진 수풀의 잔해를 헤치고 나아가니 배수로가 나 있는 절개지 언덕 길이 보인다. 앞을 가로막는 수풀들을 헤치면서 동쪽 능선을 향해 나아간다. 언덕 아래로는 수직으로 깎아 내린 낭떠러지여서 조심스럽긴 했지만, 산길을 걸어 동네에 이를 수 있는 것이 포장길 걷기보다는 나았다.

잎이 모두 떨어져 나무들이 맨살을 드러냈다. 절개지 위쪽으로 희미한 길이 보이는 듯했다. 기쁜 발견이었다. 지난 어느 때에는 등산로가 있었던 모양이다. 산자락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 같았다. 낙엽을 헤치면서 올라보니 길이었던 것은 확실했지만 오랫동안 다니지 않아 가시넝쿨이 엉기고, 나무들이 자라나 길을 막고 있었다.

어느 날, 접낫 하나 들고 그 길을 걸었다. 길을 막고 있는 작은 나무며 가지들을 쳐내고, 가지 사이에 걸쳐진 넝쿨들도 걷어냈다. 오붓한 길이 다시 났다. 줄곧 산길을 따라 동네로 내려올 수 있는 '나의 길'이 만들어졌다. 달리는 자동차가 고요한 생각들을 일쑤 짓뭉개버리는 포장길을 걷지 않고 동네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은 이 길을 걸으며, 엉클어진 생각을 정리도 하고, 살아가는 일에 관한 새로운 생각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혹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억들을 찾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글을 쓸 모티브를 얻기도 한다. 날마다 가벼운 걸음으로 이 산길을 오가고 있다. 심신을 맑게 다스릴 수 있는 즐거움으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기쁨으로 이 길을 걷는다. 찾기 시작한 지 근 여섯 달 만에 얻은 나의 길이다.

 

찾아야 하고 얻어야할 길이 어찌 이뿐이랴. 이제야 찾은 길이 또 하나 있다.  살아오면서 여러 가닥, 여러 갈래의 길을 만났다. 그 중에서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 것을 가려 한 생애를 걸어왔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곧 최선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걸었다. 그 생각이 다른 길을 가리는 가시넝쿨과 같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생애의 낙엽이 조금씩 떨어져 가는 지금에서야 희미한 길 하나가 보이는 듯했다. 넝쿨들을 걷어내고 보니 그 길은 이해와 사랑이라는 길이었다. 육십 년 만에 비로소 보이는 길이다.

발길 가볍게 출근하고 있다. 이태 정도밖에 남지 않은 출근길이다. 오늘은 누구의 무슨 일을 도와줄까, 누구의 어떤 일을 칭찬해 줄까를 생각한다. 새롭게 찾은 나의 길, 도와 주고 칭찬해 주는 일이 즐거움인 것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 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 밖에 있다는 말이 있다. 내 마음 안에 그 길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지혜롭지 못하게 살아온 생애가 다시 돌아 보인다.

이 출근 길이 끝나면, 또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이제 내 마음은 어떤 길을 나에게 내어줄 것인가. 내가 걸어가야 할 새 길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돌아보아 부끄럽지 않을 그 길-.♣(200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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