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가족사진 속의 행복

이청산 2009. 1. 28. 11:58

가족사진 속의 행복



"따르르 까꿍, 자! 이리 보세요."

사진사는 우스꽝스런 말과 표정으로 세 살배기 손녀의 시선을 잡기 위해 애를 쓴다. 사진사의 부인도 함께 장난감을 흔들며 분주한 손짓으로 주의를 끌려 한다.

"아따, 선생님 사모님 두 분 다투셨어요? 좀 웃어 보세요. 김치이- 예, 좀더 화알짝!"

손녀도 까르르 웃고, 아들과 며느리도, 아내도 사진사와 부인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활짝 펴진 얼굴로 웃음을 터뜨린다. 사진사는 이 때를 놓칠세라, 플래시를 연신 터뜨리며 연속 셔터를 수없이 눌러댄다. 수십 번은 찍힌 것 같다.

참 오랜만에 사진관에서 찍는 가족사진이다. 한 이십 년 전 늦깎이로 대학원을 졸업할 때, 학위 사진을 촬영하는 사진관에서 찍어본 이후로는 처음이다. 그 때 까까머리 아들과 단발머리 딸은 중학생이었고 아내와 나는 갓 사십 줄에 들어선 나이였다. 아이들은 봄풀처럼 풋풋했고, 아내와 나도 그런 대로 원기가 느껴지는 젊은 모습이었다.

오늘 가족사진을 찍는 자리에는 딸이 섰던 곳에 며느리가 서고 손녀가 내 무릎에 앉았다. 아내와 나는 환갑 줄의 노친네가 되어 있다. 불혹이 이순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세월도 많이 흘렀지만 삶의 변전도 적지 않았다. 남매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부를 계속하거나 제 삶의 터를 찾아갔다. 아들은 그 후로도 수년을 더 공부하여 최고 학위를 받아 연구 생활을 계속하면서 결혼하여 저희들 아이까지 두게 되었다. 나와 아이들을 바라지하느라 영일 없는 세월을 살아온 아내는 검은 염료 속에 감추지 않으면 보기 민망하리만치 머리가 온통 흰빛으로 휘덮이었고, 나도 늘어난 잔주름과 함께 성성한 백발을 날리게 되었다. 나는 갖은 우여곡절과 함께 일터를 따라 원근, 해륙을 가리지 않고 객지 타방을 떠돌아야 했다. 그 역정에서 직책을 달리하는 임무를 띠게 되어, 늘어가는 나이의 무게만큼이나 중량을 더해 가는 책임을 짊어지고 자리를 옮겨 다니곤 했다. 공직 생애의 마지막 일터가 될 듯한 지금의 임지로 옮겨온 것은 지난 해 가을이다. 고향 구미를 찾아왔다. 수구초심을 가눌 수 있는 고향 땅에서 공직생활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도 푸근하게 느껴진다.

전의 임지를 떠나오던 날이 마침 환갑날이었다. 요즈음 세상에 환갑날이라고 유별히 내세우기도 쑥스럽고, 임지가 바뀌는 와중이라 경황도 없어 그냥 숱한 생일 중의 하루거니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남매들이 찾아오고 아이들이 왔다. 조그만 상을 차리고 태어나던 해의 간지가 되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조촐한 자리를 가졌다. 축복의 마음들은 서로 나누었지만, 어찌하다 보니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기념사진 하나 남기지를 못했다. 삶의 한 매듭을 엮는 시간을 붙잡아서 박아두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찬바람이 불던 겨울 들머리 십이월 첫 주말에 서울 사는 아들과 며느리가 손녀를 데리고 아비, 어미를 보러왔다. 몇 달 못 본 사이에 손녀가 많이 컸다. "할아버지 사랑해요!"라며 품에 안겨 오는 것이 여간 귀엽지 않다. 마침 온 김에 가족사진 하나 같이 찍자고 했다. 환갑날의 기념사진을 대신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관에 가서 카메라 앞에 앉았다. 사진사가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애쓰는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가슴에 불잉걸의 따뜻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 온기는 사진사가 누르는 셔터 속으로 속속 빨려 들어갔다.

촬영한 지 달포 뒤에야 사진이 나왔다. 커다란 액자 안에 다섯 식구의 모습이 그림처럼 담겼다. 모두들 활짝 피어난 얼굴로 미소를 짓거나 밝게 웃고 있다. 사진사의 열성적인 연출을 따라 한 순간을 웃었는데 그 찰나를 잘도 잡아냈다. 내 품에 안겨서 봄날의 새순 같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손녀와 막 피어난 꽃잎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는 며느리가 돋보인다. 손녀의 웃음 속에는 먼 훗날 아름답게 피어날 소담한 꿈의 봉오리가 깃들여 있는 것 같다.

"아니, 우리가 이렇게 젊어요?!"

아내가 자신과 나의 모습을 보고는 너무 젊다고 놀라듯 감탄(?)한다. 곱게 화장한 듯한 얼굴에 주름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사진사가 인화 과정에서 약간의 손질을 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본래의 모습들은 고스란히 살아 있으니 별로 싫지는 않다.

"이처럼 젊게 살면 되지. 육십 청춘이란 말도 있잖아!" 아내와 마주 보며 웃었다.

이렇게 언제나 밝게 웃으며 건강하게 살자며 손을 서로 잡았다. 이제 아이들은 제 노릇들 다하고 있으니, 우리 내외 무탈하게 살기만을 애쓰면 되리라. 그게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면서 아이들을 위한 일이지 않은가.

이태 후 공직의 짐까지 벗게 되면, 텃밭도 일구고 여행도 다니면서 우리 스스로를 위한 시간들을 가꾸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삶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 회갑의 해를 새 삶의 출발을 예비하는 해로 삼고 싶다. 아이들도 아비, 어미의 새로운 삶을 위해 소망을 모아 줄 것이다. 사진에 담긴 웃음과 젊은 모습은 우리 가족의 희망과 행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을 다시 본다. 손녀의 해맑은 웃음을 꽃술로 하여 하나의 커다란 꽃송이를 이루며 온 가족이 젊고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다. 우리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사진처럼 살 일이다. 언제나 밝고 환하게 웃으면서 살 일이다. 젊고 건강하게 살아 갈 일이다.♣(200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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