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마성에서 새 해를 맞다

이청산 2009. 1. 8. 15:13

마성에서 새 해를 맞다



마성의 해는 오정산 중허리 능선으로부터 떠올랐다. 올해도 마성 사람들은 고모산성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새해의 새 해를 맞았다.

모든 것이 어둠에 묻혀 있는 미명의 새벽, 아내와 나는 어둠을 가르며 마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성은 이태 전까지 내 삶의 터를 두고 두 해를 사는 동안 속 깊은 정이 들었던 곳이다. 지금은 생업을 따라 구미에 삶의 터를 두고 있지만, 머지않아 다가올 퇴임 후에는 다시 마성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려하고 있다. 새 날의 새 해를 그곳에서 맞기 위해 아내와 함께 달려간다. 구미 옥계를 지나, 해평, 도개를 거쳐 상주에 이른다. 해가 솟기 전에 당도하여 정갈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해를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 순간이라도 일찍 도착하고 싶어 상주에서는 고속도로를 탄다. 시원스레 뻗은 도로, 내 남은 삶도 이렇게 뻗어나면 좋겠다. 점촌 나들목에서 내려 문경읍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경북 팔경 중의 하나라는 진남교반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모산성을 향해 산을 오른다. 저 위 산성에 걸린 청사초롱이 아롱다롱 빛을 내고 있다. 날이 시나브로 밝아지려 하고 있다. 고모산성의 익성인 석현성의 성문 진남문을 통과하여 산성으로 오른다. 산성의 육중한 모습이 드러난다. 마성 사람들도 해맞이를 위해 성을 오른다. 삼국시대에 쌓아졌다고 전해지는 고모산성은 근세의 임진왜란이나 의병 항쟁에 이르기까지 나라가 외침을 당할 때마다 전략의 요충이 되었던 곳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해맞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박상동 씨다. 나에게 해맞이 축시를 낭독해 달라고 했었다. 내가 오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전화다. 예, 도착했습니다. 지금 막 성을 오르고 있습니다. 성을 오르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날이 조금 밝아졌다. 재작년까지 내가 살던 마성, 예전의 지인들을 만나 새해 덕담으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박상동 씨는 더욱 반갑게 나의 손을 잡는다. 마성풍물패들이 신나는 풍물가락으로 새 날의 서곡을 울리고, 떠오를 해를 기다리며 해맞이 의식이 진행된다. 병풍을 세우고 갖은 제수와 함께 돼지머리를 진설한 상을 마련했다. 초헌관은 허영문 마성면개발자문위원장, 헌작례로부터 시작된 의식은 사회자인 박상동 씨가 새해 마성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축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해맞이 의식은 절정으로 간다. 날씨는 알싸하게 차가웠지만 추위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떠오르는 새 해에 담을 소망으로 데워진 가슴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식 끝에 박상동 씨는 나를 소개했다. 마성을 너무나 사랑하여 만사를 제쳐놓고 먼 길을 달려 온 분이라고 했다. 해를 기다리는 눈길들이 나에게로 모였다. 우렁찬 목소리로 가다듬기를 애쓰며 준비한 축시를 낭독해 나갔다.

 

"마성이여, 우리의 마성이여!

 

드디어 희망찬 기축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역사와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고모산성 마루에 서서

찬란한 새해, 새 하늘의 새 빛을 받으며

영원한 우리 삶의 터, 마성을 노래합니다.

(중략)

진남교반 절경 같은 아름다운 마음 되어

문희경서 좋은 소식으로 희망 가꾸며

유유한 영강, 우뚝한 오정산의 정기를 받아

찬란한 영광 불길처럼 피어나는

평화로운 복지의 터 마성벌을 일구어 갑니다.

(중략)

일월 성신이시여!

천지 신명이시여!

마성을 더 큰 영광으로 지켜주소서

이 새해 첫날 찬란한 태양 같은 밝음으로

영원토록 이 누리를 비춰 주소서

(중략)

영원 무궁 마성이여!

평화 복지 마성이여!

화목 행복 마성이여!

내 고향 내 보금자리

마성이여, 우리의 마성이여-!"

 

산마루를 덮고 있는 하늘이 점점 밝아져 갔다. 축시가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사회자가, 내가 지난날 마성을 살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지봉에 오른 일을 소개하며, 나의 마성 사랑에 한 번 더 박수를 보내 달라고 했다. 마성 사람들은 우렁찬 풍물 소리와 함께 다시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는 토천을 건너 진남교반 멀리 멀리로 번져나갔다.

제상 앞에 엎드렸다. 집사의 잔을 받아 상위에 얹고 새 날 새 해를 향하여 절을 올렸다.

"이 아름다운 마을 마성에, 참으로 순박한 마성 사람들에게 해님이시여! 가슴마다 가득한 행복과 평화를 베풀어주소서. 저의 안락한 보금자리도 잘 마련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해가 떠올랐다. 해는 점점 둥실한 모습이 되며 사람 사는 세상을 밝게 환하게 비추어 나갔다. 어둠은 걷혀 나가고 세상은 찬란한 빛으로 번져났다. 유구한 역사를 지난 산성의 모습도, 진남문 창연한 모습도, 진남교반 절경도 모두들 밝은 해의 품안으로 안겨 갔다. 사람들이 함성을 피워 올렸다. 모두들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있었다. 올 한 해도 건강하기를, 부자 되기를, 자손 번창하기를, 합격하기를, 승승장구하기를……. 모두들 소망은 달랐지만, 축원의 마음은 하나였다.

개발자문위원장의 선창으로 만세를 불렀다.

"나라의 평화와 문경의 안녕과 마성의 복지를 위하여 만세를 부르겠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만세를 부르는 동안 해는 산마루에 둥그렇게 올라앉았다. 평화와 안녕과 복지를 거느리고, 우람하고 너그럽고 따듯한 가슴을 열고 해가 산마루에 둥실 앉아 있었다.

제상 앞에서는 다시 풍물소리가 신명나게 어우러졌다. 사람들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었다. 해도 소리 가락에 함께 어우러지려는 듯 찬란한 햇살을 눈부시게 쏟아내고 있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떡국이 부글부글 끓었다. 떡판에서는 붉은 시루떡이 뜨거운 김을 술술 뽑아내고 있다. 사람들은 떡국 한 그릇씩을 들고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다. 새해를 먹었다. 새해의 소망을 마셨다.

"기축년, 한 해도 잘 될 거야!-"

"암, 잘되고 말고!"

"하하하-, 하하하-"

그 웃음소리에 쫓겨 추위는 어느새 달아나 버렸다.

고모산성 그 역사의 유구는 또 하나의 역사를 힘차게 써갔다.♣(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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