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묘사를 지내며

이청산 2008. 11. 18. 15:24

묘사를 지내며



지난 일요일은 하루 종일 산과 산을 오가며 보냈다. 묘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음력 시월 둘째 일요일에 조상님들의 묘사를 모시자는 집안의 결의에 따라 매년 이때 후손들이 선영에 모이고 있다. 거슬러 올라갈수록 조상님들도 많지만 우리 종중에서는 나의 7대조인 승지공 할아버지부터 모시기로 했다. 후손들은 해평면 낙산리 원촌 월파산으로 모였다. 월파산은 대대로 전승되어온 종산이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다보니 소유권 관계가 희미해져 후손 몇 사람이 법인체를 만들어 간단치 않은 행정 절차를 거쳐 법인 명의로 등기를 했다. 그 이후 처음으로 모시는 묘사라 종중 사람들의 기대와 소속감이 여느 때와는 달랐다. 참례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원근을 가리지 않고 모여든 후손들도 적지 않았다. 7대조 이하 자손이 모이고 보니 안면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느 대에서 갈라져서 서로 몇 촌간이 되는지 헤아리기도 쉽지 않았다.

승지공 할아버지는 손자가 가선대부(嘉善大夫, 從二品), 중추부사 겸 오위장도총부 부총관에 올라 귀하게 되어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에 증직(贈職)되었다고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분이다. 증직이란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는 것을 말하는데, 종이품 이상 문무관의 부친, 조부, 증조부나 충신, 효자 및 학행이 높은 사람에게 내려 주었다. 승지공 할아버지는 훌륭한 손자를 두어 사후에 명예를 얻으신 분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모인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조상님들의 명예를 빛낼 수가 있을까.

종중에서 과일이며 떡, 건어물 등으로 제물을 마련했다. 묘제는 절차에 따라 강신(降神) 참신(參神) 초헌(初獻) 고축(告祝)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할아버지의 7세손인 종중회 회장이 제주가 되어 제례를 받들었다. 축관이 고축을 했다.

 

維 歲次 戊子十月壬寅朔 十二日癸丑

 丞旨公派宗中 會長 七世孫 性昶 敢昭告于

顯 六代祖考丞政院左丞旨府君之墓

 氣序流易 霜露旣降 瞻掃封塋 不勝感慕

 謹以 酒果脯醯 祗薦歲事 尙 嚮

(때는 바야흐로 무자년 시월 십이일 승지공파 회장 7세손 성창은

6대조 승정원 좌승지 할아버지 묘소에 밝게 사뢰나이다.

계절의 순서가 흘러 바뀌어 서리와 이슬이 벌써 내렸습니다.

묘역을 쓸고 봉분을 우러러보니 흠모하는 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삼가 맑은 술과 간략한 제물로 세사를 받자오니 흠향하시옵소서.)

 

제관들 모두 절차에 따라 배례도 하고 유식하면서 조상님의 음덕을 기린다. 어린 아이들도 어른을 따라 절을 했다. 촌수에 따라 증손, 고손이 되는 아이들도 있고, 세대도 차이가 많이 나지만 모두 한 뜻이 되어 조상님 앞에 절을 올린다. 이 모든 의식들이 곧 문중의 내력이요, 전통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어른들은 다시 한번 자세를 가다듬으며 조상님께 예를 올린다. 묘사 절차가 끝나고 둘러앉아 음복을 하며 어느 할아버지 집안 몇 대 손들이라며 서로를 소개한다. 멀어봤자 십여 촌, 거의 십 촌 이내의 촌수다. 서울서도 오고, 청주에서도 오고 부산에서도 왔다. 살길을 따라 객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보니 안면부지가 되어 버렸다. 호칭은 간단했다. 형과 아우 아니면 아재, 할아버지이다. 그래, 그간 어떻게 지냈으며 집안은 두로 평안하냐며, 묘사의 자리가 이내 이산가족 해후의 자리로 변했다. 이게 바로 조상님의 음덕이구나. 종무소식으로 살고 있었던 혈족, 혈친들을 이리 만날 수 있는 것이, 그 만남의 끈이 되어 주시는 것이 바로 조상님의 덕이라며 다시 손을 잡고 흔든다. 그래서 제사도 지내야 되는 거야,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것은 혈연을 끊겠다는 것이지. 조상님들이 괜히 제사를 지내온 줄 알어? 후손들이 서로 알고 정답게 지내라고 제사가 있는 거야, 암 그렇고 말고. 그 동안의 안부며 이런저런 것을 화제 삼는 사이에 제사예찬론이 따뜻한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앞으로는 소식 좀 나누고 살자면서 서로 명함을 주고받기도 한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젊은이는 묘사 장면이며 환담 장면을 부지런히 찍는다. 모처럼 이리 만났으니 기념 사진이나 한 장 박읍시다! 모두들 안고 서며 모여들었다. 백발 노객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어떤 이는 사진을 메일로 보내 달라며 아이디가 들어 있는 명함을 건넨다. 조상님의 그늘이 이렇게 따뜻한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듯,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의 꽃들이 피어났다.

여기서 이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다른 할배도 찾아뵈어야지요. 사람들은 모두들 일어서 제기며 남은 음식들을 챙긴다. 또 다른 산자락 조상님의 묘소를 찾아간다. 송곡리 광대골, 금호리 질부골, 낙산리 대성골…. 가는 묘소마다 제물을 차려 놓고 배례를 올린다. 대가 내려 갈수록 제관이 줄어든다. 후대의 조상으로 올수록 혈통이 갈라지기 때문이다. 저마다 직계의 혈통을 찾아 흩어진다. 세월의 흐름은 모든 것을 바뀌게 하지만, 나고 죽는 것으로만 바뀌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갈라지고 흩어지게 하는 것으로도 모든 것을 바꾼다. 세월도 원자나 세포처럼 핵분열을 하는 것 같다. 그 분열을 통해 갈라지기를 거듭하고 그 갈라짐 속에서 세월이 또 쌓여간다. 핵은 분열도 하지만 융합하여 다시 큰 덩어리를 이룬다. 오늘의 묘사며 명절의 절사(節祀), 연중의 기제(忌祭)가 융합의 자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고한 핵융합을 위하여 종중을 법인체로 만들기도 하고, 종중 재산을 법인의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첫 번째로 묘사를 모신 7대 조상님의 후손 종중도 그리하였지만, 직계 할아버지의 후손들이 모여 또 하나의 종중 법인체를 만들었다. 종형제와 후손들이 모여 '전주이씨 완창대군 제릉참봉 일호공파 종중'이라 이름했다. 제릉참봉 할아버지의 후손들 종중이라는 말이다. 종중 재산을 공동 관리하면서 수시로 만나 집안 일을 의논하면서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함께 나누자고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일호공파 종중'의 종형제와 그 후손들이다. 명절이며 기제 때에는 늘 함께 조상님의 제사를 모시는 사람들이다. 천위(遷位) 조상의 묘사를 모시면서 가까이에 있는 부모님, 백숙부모님의 산소에도 함께 인사를 드렸다. 묘사를 다 지내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이대로 헤어질 수 있겠느냐며 다시 어느 자리에 모여 앉았다. 서로 화목하게, 모두 건강하게 살아나가자며 잔을 높이 들었다. 불콰한 시간이 화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20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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