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정매화골 전설과 로렐라이 언덕 -여기는 울릉도·19

이청산 2007. 8. 31. 21:59

정매화골 전설과 로렐라이 언덕
 
-여기는 울릉도·19



"……정 여인은 이 골짜기에서 주막을 차리고 오가는 나그네들 정성을 다해 접대했다고 한다. 나그네들은 정 여인의 주막에서 몇 잔의 술로 목을 축이고 땀을 씻으며 지친 걸음을 쉬기도 하고, 남북 사람들 사이의 볼 일을 서로 바꾸어 되돌아감으로써 다리품을 줄이기도 했다고 한다. 정 여인은 몸과 마음을 다해 나그네들을 접대했고, 정 여인의 인정과 인심은 나그네들의 입을 타고 널리 퍼져 나가면서 어느 새 이 골짜기의 이름이 정 여인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나의 글 '다시 찾은 정매화골'에 나오는 정매화골 전설 이야기다. 이 이 정매화골로 가는 길야기는 이 글에서 처음 쓴 게 아니라, 지난 번 섬 살이 때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수필집 '마가목 빨간 열매' 속에 쓴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섬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정매화골'은 울릉읍 저동의 내수전과 북면의 석포 사이를 오가는 중간에 있는 깊고 험한 골짜기다.

인터넷 카페에 실린 나의 글 '다시 찾은 정매화골'을 읽은 어느 분이 이 글과 관련하여 긴 메모를 남겼다. 우선 내가 전설 속의 주인공으로 여긴 '정매화'는 여자가 아닌 남자이며,  섬 개척(1882년)기에 이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 집이 두어 번 화재와 수해를 입는 과정을 거치면서 주인도 바뀐 끝에, 그 자리에 그의 부모님이 삼 칸 겹집을 새로 지어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십 년 가까이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고 육지로 이사를 나왔는데, 세입자도 그 집을 떠나게 되어 집이 비어버린 채 또 한 이십 년 세월이 흐르게 되자 폐가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그 폐가의 모습을 지난 번 섬 살이 때인 육칠 년 전에 내가 목격했었다.

 

내가 다시 섬으로 와서 이 골짜기를 찾았을 때 그 폐가는 헐리고, 정자와 정매화골로 가는 길 벤치를 설치하여 행인들의 쉼터를 꾸며 놓았다. '정매화곡 쉼터 유래'라는 안내판을 세우고, 이 골짜기 그 집에 살면서 많은 조난객을 구출해낸 '이효영' 씨의 선행담을 소개해 놓았다. 내 글을 읽은 그 분은 이효영 씨가 바로 자기의 아버지라고 메모에서 밝혔다. 그가 울릉군청 담당자와 협의하여 폐가가 된 그 집을 헐고 오늘의 쉼터를 조성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메모에서 '정매화'라는 사람은 이 골짜기에 맨 처음 살았던 사람일 뿐, 그 이상의 이야기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 메모를 읽는 순간, 나는 또 한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정매화골과 관련하여 처음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느낀 것은 지난 봄 정매화골을 찾아갔을 때, 정 여인이 살았던 곳이라 생각했던 그 옛집은 간 곳이 없고, 잘 다듬어진 쉼터로 꾸며 놓은 것을 보고서였다. 그 쉼터의 안내판에 소개해 놓은 '이효영' 씨의 선행이 참으로 따뜻한 느낌을 들게 했지만, 쉼터로 조성된 정매화골한편으로는 정 여인의 전설이 잘 조성된 쉼터 속에 매몰되어 버린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웠다. 이제 그 메모를 읽고 보니, 내가 정감 어린 전설이라고 생각했던 정 여인의 이야기는 한갓 미몽이나 공담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정 여인의 이야기가 있기로 깊고도 험난한 그 골짜기가 한층 정감 있게 느껴지던 것도 공허한 감정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이름답고도 소중한 그 무엇을 문득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런데 섬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정매화골 이야기'는 전설일 수도 있고, 민담일 수도 있다. 전설이란 속성상 진실성과 역사성을 띠어야 하는 것이지만 비약성을 띠기도 한다. 전승이 되는 과정에서 비약되어 사실과는 괴리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간에 전승되는 민담이라고 한다면, 흥미 본위로 꾸며지는 민담의 속성에 따라 필연성이 전제되는 것도 아니고, 꼭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런 이야기가 왜 생겨났을까 하는 점이다.

한 쪽은 천인단애 낭떠러지요 한 쪽은 가파르고 험준한 산등성이가 버티고 서 있고, 온갖 나무와 풀들이 원시림으로 우거져 있는 깊은 산 속 길을 걷는 나그네들에겐 그 길은 곧 두려움이기도 했고, 고난이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는 해가 저물어 어둠 속을 걷다가, 혹은 폭우와 폭설을 헤치고 나아가다가 조난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때 이 골짜기에 살던 '이효영' 씨 같은 분이 나타나 구난의 손길을 뻗쳐 준 것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섬이 개척된 이래로 이 골짜기를 걷던 많은 사람들은 고단한 걸음을 잠시나마 쉬어 갈 수 있는, 위급할 때는 피난처로도 삼을 수가 있는, 그런 안식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했을 것이다. 정 여인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이야기는 섬사람들의 그러한 상상의 산물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섬사람들의 꿈과 소망이 담긴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꿈과 소망이 담긴 이야기가 있으므로 길은 훨씬 덜 험난할 수 있고, 걸음은 훨씬 덜 고단할 수 있었을 것이며, 험준하기만 한 그 골짜기가 아름답고 정감 어리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벨기에의 오줌싸개 소년상, 덴마크의 인어공주상 그리고 독일의 라인 계곡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을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소위 '유럽의 3대 썰렁 명소'라 일컬어진다고 한다. 소문난 만큼 별 볼품이 없다는 말이다. 그 독일 라인 계곡의 로렐라이 언덕중에서도 133m 높이의 수면 위로 깎아 세운 듯한 로렐라이 언덕은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기보다도 매우 험악한 지형을 가진 곳이라 한다. 이 계곡으로 배를 저어가던 사람들이 난파를 당해 가끔씩 목숨까지 잃기도 했는데, 19세기까지만 해도 이 절벽은 험난한 지형 때문에 뱃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 작가 클레멘스 폰 브렌타노(Clemens von Brentano, 1778∼1842)가 1801년에 쓴 소설 '고트비Godwi'을 통해 지형으로 인한 사고를 묘령의 처녀가 선원들의 마음을 빼앗아 배를 난파시킨 것이라는 낭만적인 이야기로 꾸몄다. 사랑하는 애인에게 배신을 당한 슬픔을 이기지 못한 '로렐라이'라는 처녀가 이 강물에 투신했는데, 그 원혼이 긴 금발을 아름답게 늘어뜨린 미녀로 이 절벽 위에 나타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유혹하자 뱃사공들이 넋을 빼기는 바람에 암초에 좌초되어 난파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로 꾸민 것이다. 그 후 로렐라이 이야기는 많은 예술 작품들의 소재가 되었는데, 특히 독일의 시인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가 작사한 시에 작곡가 질허(Philipp Friedrich Silcher, 1789∼1860)가 곡을 붙인 '로렐라이 언덕'이라는 가곡은 로렐라이의 구슬픈 전설과 함께 전 세계인의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로렐라이 언덕'이 모든 여행자들이 동경하는 관광의 명소가 된 것은 빼어난 경치 때문이 아니라 전설로 꾸며진 '이야기'와 그것을 소재로 창작된 예술 작품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야기의 힘이 계곡의 험준한 절벽 하나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관광 명소로 만든 것이다. 독일 사람 로렐라이 동상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야기를 현실화 시켜 관광객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 로렐라이의 동상을 세워 관광객의 눈길을 끌게 하기도 하고, 로렐라이 모델을 선발하여 이 언덕에서 참빗으로 금발을 빗으며 로렐라이의 슬픈 이야기를 연기로 표현하게 하여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고 한다.

 

18세기는 산업혁명의 시대, 20세기는 정보혁명의 시대, 그리고 지금은 '이야기 혁명' 시대라고 한다. 마법사 이야기인 '해리 포터'가 영국 경제에 연간 최소 5조7000억 원을 벌어다 준다고 하듯, '누가 더 많은 이야기 자원을 확보해 이를 재미있게 만들어 내느냐'가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듯이 오늘날은 이야기 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따라서, 섬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정매화 여인'의 이야기도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좀더 아름답고 좀더 깊은 정감이 깃든 이야기로 다듬을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이것은 곧 요즘의 문화 콘텐츠 정책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으로 '스토리가 있는 볼거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정매화골'이 더욱 아름다운 골짜기, 더욱 정감 어린 골짜기가 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싶어하고 안겨 쉬게 싶어하는 골짜기가 되게 할 수 있다면, 정 여인의 주막이라도 새로 지어 그 전설을 더욱 풍성한 이야기, 섬사람들의 애환이 무르녹은 이야기로 가꾸어 나가면 어떨까. 그리하여 그것이 섬의 다른 많은 유래담이며 전설들과 더불어 '이야기 산업'의 한 소재가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섬을 더욱 아름답게, 풍요롭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정매화골 전설이 가꾸어질 수 있을 때, 그 험준한 골짜기에서 조난객의 구난을 위해 신명을 다 받쳐 헌신했던 이효영 씨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더욱 빛나는 전설이 되어 이 골짜기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가을이면 내수전에서 석포로 가는 산길의 단풍이 참으로 곱다. 가을이 오면 정매화골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 것이다. 정 여인의 전설과 이효영 씨의 미담이 한데 어울려 더욱 고운 물이 들 정매화골의 올 가을의 단풍을 상상해 본다.♣(2007.8.29)

 

- 로저 바그너(Roger Wagner) 합창단이 부른 '로렐라이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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