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머나 먼 귀성 길 -여기는 울릉도·21

이청산 2007. 9. 27. 15:04

머나 먼 귀성 길

-여기는 울릉도·21



귀성 길은 멀고도 험했다. 추석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아이들이나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였다. 뭍에 가족을 두고 홀로 와서 섬 살이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아이들보다 더 간절한 것 같았다. 추석 연휴를 앞 둔 금요일 오후, 일찌감치 수업을 끝낸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썰물처럼 학교를 빠져나갔다. 선생님들은 뭍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총총히 부두로 나아갔다.

정돈은 잘 하고 문은 잘 닫고 갔는지,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아 있는 교정을 둘러본다. 제 자리에 놓여 있지 않은 것들은 있어야 할 곳에 갖다 두고 열려 있는 창문이며 출입문들을 닫았다. 정리해야 할 일을 좀 해놓고 내일 뭍으로 가는 배를 타기로 했다. 어차피 서울 아이들은 내일 밤쯤에 내려올 테고, 내일 집에 도착할 때면 아이들이 집을 들어서는 때와 거의 일치하리라. 그 때 바다를 건너온 아비와 내륙을 달려온 아이들과 반가운 해후를 나누면 되리라. 아내가 뭍의 집에 먼저 가 있으니 나와 이이들 중 누가 먼저 도착해도 상관없는 일-.

이튿날 아침. 배는 여느 때처럼 포항에서 10시에 출항, 오후 1시에 울릉도에 입항, 3시에 다시 포항으로 출항한다고 했다. 6시에 포항항에 입항하여 대구의 집에 도착하면 밤 9시경-. 그 땐 서울 아이들이 와 있겠지. 운동 삼아 저동재를 넘어 도동 부두로 걸어가서 일찌감치 선표나 예매하며 귀성 채비를 하리라 하고 신발 끈을 졸라매고 집을 나섰다. 넘나드는 굽이 길 포장도로 사이에 간간이 남아 있는 옛길을 더듬으며 재를 넘었다. 산 속 옛길을 걷는 것이 운치도 있고 운동 효과도 나으리라 해서다. 하늘이 흐리고 빗방울 한두 점이 나뭇잎 위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오늘 배는 무사히 뜬다고 했지? 군청 앞을 지나 부두로 내려갔다. 10시에 출항하는 페리호가 뭍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저 배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탈이란 말이야, 포항까지 예닐곱 시간을 어떻게 탈까.

터미널 매표구로 가서 3시에 출항할 선표를 예매하였다. 표를 사 두었으니 배만 타면 아이들을 만날 집으로 가는 거다. 터미널을 나서 해안도로를 걸었다. 사구내미 언덕을 넘어 집으로 갈 참이다. 바닷물이 출렁거렸다. 해안 바위를 치며 세찬 물보라를 일으키기도 했다. 산책로를 오르내려 걸으며 사구내미를 향해 걸어간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바위에 부딪치며 깨어지고, 검은빛 바다는 칼날 같은 결을 일으키며 하얀 갈퀴를 세우기도 했다. 그래도 배는 뜬다고 했겠다? 사구내미 언덕을 넘어 고깃배들이 무늬를 이루며 도열해 있는 저동항 쪽으로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뭍으로 들고 갈 가방을 다시 챙기고 점심을 먹었다. 시간은 좀 남았지만 이제 가방을 들고 나가기면 하면 된다고 생각할 무렵 손전화에서 '삐우삐우'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전화기를 여는 순간, 어이없는 허탈감이 전율을 일으키게 했다.

"금일(22일) 포항행 썬플라워호는 기상 악화로 포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예약은 자동 연기됩니다. 9.22 12:14"

섬으로 오던 배가 되돌아 가버렸으니, 섬을 떠날 수가 없다는 말이다.

"허허! 오늘 못 가면 내일 가지 뭐……" 그 때 웃음이 왜 나왔던지 모르겠다. 하기야 섬과 바다의 날씨는 참 믿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섬에서는 '날씨, 약속, 내일', 이 세 가지는 믿지 말라 했을까. 대범(?)한 체념과는 달리 생각은 뭍을 향해 빠져들었다. 내일 섬을 떠나 밤늦게 집에 도착하면, 모레는 아침 일찍 큰집으로 제수 준비를 하러 가야하고……. 모처럼 집을 찾아온 아이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손녀를 푸근히 안아볼 겨를도 없겠지. 하루만이라도 온가족이 함께 쇼핑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보다 더 큰 일은 내일 날씨인들 믿을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묵호행 씨플라워호

선착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오늘 예매해 둔 표는 내일 그대로 쓰면 되지만, 내일의 출항 여부는 내일 아침 7시 이후가 되어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동해 북부 해상은 기상이 아주 나쁘지는 않아 묵호로 가는 배가 오늘 오후 2시 반과 5시 반에 섬을 떠난다고 했다. 내일을 믿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 묵호로 가면 대구로 가는 차를 만날 수 있을까? 묵호 항로는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했지만 파도는 높겠지? 묵호로라도 갈까, 말까? 파도가 높은 것은 즐기면 되고, 묵호에서 대구로 가는 차를 만나지 못하면 묵호로 여행 한 번 한다고 생각하리라. 거기서 밤을 지새고 일찍 차를 타면 내일 오전중이면 대구로 갈 수 있겠지. 마음을 정하고 나니 바다도 잠잠해지는 듯했다.

2시에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포항행 선표를 묵호행 씨플라워호로 바꾸어 급히 배에 올랐다. 사방 선창이 둘러치고 있는 씨플라워호는 포항행 썬플라워호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선실은 밝고 깨끗했다. 항구를 떠난 지 반시간 뒤쯤에야 바다에서 섬의 모습을 지웠다. 승무원이 포항으로 갈 승객은 손들어 보라 했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포항으로 가는 차편을 대절해 보겠다는 것이다. 손을 높이 번쩍 들었다. 검은 구름이 수평선으로 내려 안고 선창에는 빗물이 튀었다. 배가 일렁이었다. 요람 삼아 잠이 들었다. 묵호항 도착 한 시간 전에 예정 시각을 알려 주겠다고 한 방송은 좀처럼 울려 나오지 않는다. 선내 위성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승객들의 초조를 달랬다. 다시 배가 요동쳤다. 배가 기울면 기우는 대로 몸을 맡겨 버렸다. 4시55분 드디어 방송이 나왔다. 5시55분에 목호항에 당도한다는 것이다. 평소보다 반시간 가량 늦을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배의 접안이 끝난 것은 6시가 넘어서였다. 트랩을 내려 부두를 빠져나가묵호항 모습니 대절해 놓은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같은 귀성객들을 위해 알선해 준 차량이다. 한 사람 앞에 2만원의 차비는 물론 승객들의 부담이다. 이 차 아니면 오늘은 대구로 갈 수 없는 처지를 생각하면,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6시20분경 묵호항을 출발한 차는 동해 바다를 옆구리에 낀 채 어둠을 가르며 남쪽으로 내쳐 달렸다. 중간 어느 휴게소에서 허기를 달래고 포항의 시외버스터미널에 당도한 것은 10시 반 경. 대구행은 11시 발 심야버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출발 시각을 기다려 차를 탔다. 피곤이 스펀지 같은 몸을 파고들었다. 이내 잠에 빠져버렸다. 눈을 뜬 것은 동대구 톨게이트를 나설 무렵이었다. 주차장에 내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한 시-. 장장 11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뛰쳐나와 가방을 받고는 큰절로 반가운 인사를 했다. 갓 돌 지난 손녀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잠자는 저 모습이 어쩌면 저리 무구할 수가 있을까, 저리 귀애로울 수가 있을까, 저리 평화스러울 수 가 있을까. 저 모습을 보려고 내가 이렇게 달려 왔나 보다. 그 멀고 먼 귀성 길을 달려 왔나 보다.

검은 바다에 하얗게 부서지던 파도의 갈퀴가 아늑한 평화가 되어 내 안 깊숙이로 스며들었다.♣(2007.9.23)
 

* 후기 : 그 이튿날도 울릉도에서 포항으로 가는 배는 뜨지 않았다.
              그 다음날 새벽 5시에야 섬 귀성객들은 배를 탈 수 있었다
.

 

 

수필 <머나먼 귀성길>을 읽고

 

김         길         웅

(대한문학 편집위원, 수필가)

 

이 수필을 읽으면서 모천회귀를 떠올렸다. 연어는 바다에 살다가 제 자란 강으로 올라온다. 그러고서 다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강바닥에 알을 낳는다. 역류에 목숨을 건 운명적 역행, 그 사투의 회귀는 그들의 생리이자 본능이다. 따지고 보면 근본이나 초발심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명절 때 서울이 공동화하는 민족의 대이동을 보라. 귀성길은 고생길이라면서도 아득바득 고향을 찾는다. 혈연과 가족의 온기를 찾아가는 것이다. 처음엔 놀라다 나중엔 가슴이 울컥하지 않는가.

지극히 평범한 제목인데도 한 번 읽고 나니 긴 한숨과 더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섬을 탈출한다는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이다. 기상 악화로 결국 돌아서 가는 등 뭍으로 나가 고향 가는 것이 그야말로 굽이굽이 구절양장이다.

매표했다 물리고 다시 표를 바꾸고 배 타고 뭍에 닿아 버스에 몸을 맡긴 뒤 주차장에 내려 택시를 잡아타서 집에 도착한 게 새벽 1시. 무렵 11시간의 대정정이었으니.

이 수필은 자칫 산만에 흘러 독자를 끌고 가는 게 힘겨울 것을 발 한 짝 들여놓은 독자를 끈질기게 붙들어 집 어귀에까지 이른다. 조금은 엉성한 듯 허한 듯하면서도 행동 단계가 명료해 귀향 길 위 진행의 혼란을 최소한 그 끈기에 몸을 기대어 가능했던 것 아닐까.

 

2시에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포항행 선표를 묵호행 씨플라워호로 바꾸어 급히 배에 올랐다. 사방 선창을 둘러치고 있는 씨플라워호는 포항행 썬플라워호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선실은 밝고 깨끗했다. 항구를 떠난 지 반시간 뒤쯤에 바다에서 섬의 모습을 지웠다. 승무원이 포항으로 갈 승객은 손들어 보라 했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포항으로 가는 차편을 대절해 보겠다는 것이다. 손을 번쩍 들었다. 검은 구름이 수평선으로 내려앉고 선창에는 빗물이 튀었다.

 

조바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초조하니 언어가 긴장될 수밖에 없다. 하선하면서 버스 탈 사람 손들라 하자 아이처럼 손을 번쩍 들며 애태우는데 독자가 그 뒤를 좇지 않을 재주가 없는 것이다. 딴은 작가의 마음 졸임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강한 의식의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는 것일 테다. 귀성 말이다. 그건 비단 작가나 독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들 피붙이들의 공통적인 행동의지다. 이일배님은 귀성과정을 꼼꼼히 챙겼고 또 그것을 쉽고 평범한 말로 잘 교직해놓았다.

"갓 돌 지난 손녀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잠자는 저 모습이 어쩌면 저리 무구할 수 있을까. 저리 귀애로울 수 있을까. 저리 평화로울 수 있을까. 저 모습을 보려고 내가 이렇게 달려 왔나 보다." 그 멀고 먼 귀성길을 달려 온 심경을 직설적으로 실토한다. 반복의 구사가 이처럼 빛을 내는 경우도 드물다.

이 작품은 어휘가 평이해 편안하게 읽게 했고, 구성이나 전개에 특별한 장치를 하지도 않았다. 독자를 구속하거나 강제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같이 숨차고 종종거리게 하는 눈에 띄지 않는 에너지가 있다. 소재의 힘이다. 가장 한국적인 보편성을 갖고 있는 귀성이라는 소재가 주인을 잘 만나 탄력을 받은 것이다. 거듭 얘기하거니와 사람다움의 본질과 따뜻한 시선이다.

('대한문학' 2008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