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섬·제의(祭儀) -여기는 울릉도·12

이청산 2007. 6. 20. 14:44

섬·제의(祭儀)
-여기는 울릉도·12



1.

아내가 장모님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뭍으로 떠났다. 아내는 뭍으로 가기를 망설였다. 오백여 리 물길을 건너며 오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멀고 험한 물길을 생각하여 어머니는 용서해 주실 거라고 했다. 뭍에서 제사를 지내는 시간에 여기서 절을 올리면 되지 않겠느냐, 마음과 정성이 중요한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날씨가 나빠 뱃길이 험하면 가고 싶어도 못 갈 터인데, 지금은 하늘이 길을 열어주고 있으니 좀 힘이 들더라도 다녀오라고 권했다. 한 번 나가면 사흘은 걸려야 하는 길이라, 며칠 그렇게 일터를 비울 수 없어 나는 같이 못 간다고 하더라도, 아들 하나에 딸 둘, 삼 남매뿐인 피붙이에 한 사람이 빠지면 너무 적적할 것이 아니냐고 했다.

아내는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하루 한 번씩밖에 들고나지 않는 배를 타고 섬을 떠났다. 순항을 해서 포항에 도착하면 오후 6시, 7시에 대구 가는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늦은 밤이 된다. 이튿날 친정으로 가서 동생 내외와 제수 장만을 함께 하여 늦은 밤에 제사를 지내고 그 이튿날 새벽이면 황황히 집을 나서 포항에 와서 섬으로 오는 배를 타야 한다. 수많은 시간들을 차와 배에서 보내다가 섬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섬을 들고나는 일들도 바로 제사의 한 부분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 선생은 아버지의 제사를 혼자서 지냈다. 물론 제수 장만도 혼자 하고, 제관도 단 한 사람, 김 선생 자신뿐이다. 뭍에 부인이 있고 형제도 있었지만, 부인에게 혼자서 지내라 할 수도 없고, 맏이인 자신을 두고 동생에게 지내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뭍으로 나가자니 힘도 시간도 너무 많이 든다. 일터를 그렇게 비울 수도 없다. 그러한 형편을 미리 깨달은 김 선생은 섬 살이를 위해 섬으로 들어올 때, 몇 가지 챙겨 온 생활 용품 중에 아예 제기(祭器)도 싸 들고 왔다고 한다.

조금씩이지만 과, 채, 탕, 전, 메의 격식을 갖추어 제상을 차리고, 제주를 올리면서 '아버님 신위' 앞에서 홀로 제를 올리는 불효를 빌었다. 제의를 마친 김 선생은 음복조차 혼자 하기가 너무 쓸쓸해 음복꾼들을 불렀다. 함께 섬을 살고 있는 동료들이다. 그들과 음복의 잔을 함께 나누었다. 그들이 함께 나눈 것은 술이 아니라 섬 살이의 애환일 것이다. 그렇게 나누는 애환으로 섬 살이의 고단을 이겨 나가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2.

섬을 찾아와 섬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섬 살이의 고단을 모르고서 섬에 온 것은 아니다. 모든 일들을 혼자서 해결해 나가야 할 어려움도, 모든 생각들도 혼자서 삭혀나가야 고독감도 다들 알고서 왔다. 그래서 빨래도 잘하고, 밥도 잘 짓고, 외로운 시간들도 잘 이겨낸다.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 뜻을 이루는데 조금의 도움이나마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제의(祭儀)처럼 섬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삶의 통과 제의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섬을 사는 것은 남들과는 좀 다르다. 섬에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다면 그것은 섬 사랑일 뿐이다. 내가 좋아 찾아온 섬에서 내가 좋아 살고 있음에야 또 다른 무슨 뜻이 있으랴. 내 섬 살이란 사랑의 제의이다. 그러나 때로는 쓸쓸해질 때가 있다. 내가 섬을 사랑하는 것과 섬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사실 짝사랑이란 아름답긴 하지만 얼마나 처연한 것인가. 그 처연함을 이겨내야 함이 곧 내 섬 사랑의 제의일지도 모른다. 섬사람 몇이 섬 살이를 고단하게 한다고 섬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만나면 언제나 가슴을 환히 열게 하는 바다를 두고, 볼 때마다 아린 아름다움으로 가슴을 젖게 하는 섬의 풀과 나무를 두고, 기암괴석 높이 솟은 산에 걸린 하얀 구름처럼 피어나는 그리움을 두고 섬 사랑을 그만 둘 수는 없다.

바다가 출렁이고,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기암괴석이 씻기고, 섬의 날이 가고 있다.

제의로 사는 섬 살이, 제의와 함께 살아가는 섬 살이다. 섬을 사는 사람들은-.

 

내 마음속에 있는 그대를 사랑한다.

한 발 더 가까이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그대를

견고하게 지켜주고 싶다.

 

그대를 언제까지나 돌보아주고 싶다.

사랑의 팔로 그대를 안아주고 싶다.

그대 곁에서 오직 사랑의 힘으로

그대를 지켜주고 싶다.

 

              - 용혜원의《사랑하니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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