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청산 2006. 11. 30. 16:29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안동까지 좀 멀긴 하지만, 아내와 나는 딸을 시집 보내는 신창 씨의 혼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신창 씨와 나는 함께 근무를 했던 적이 있어 잘 아는 사이일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동기간인 아내와 더 친숙한 사람이다. 드디어 짝을 맺는 과년한 딸의 혼사도 응당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추억 속의 친구들과 모처럼의 해후를 나누는 것도 아내에게 뜻 있는 일이 될 것 같아 함께 참석하자고 했다. 그 옛날 친구들도 하객으로 참석할 것이겠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은 걸릴 것이라 생각하며 12시 예식에 맞추기 위해 10시에 집을 나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차창 밖의 산과 들에는 마지막 가을 햇살이 곱게 내려앉아 있었다. 1시간 남짓 걸려 안동의 예식장에 이르렀다. 넉넉하게 도착했다. 가슴에 꽃을 꽂은 신창 씨 내외는 우리 내외를 반갑게 맞이했다. 멀리서 와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하객들이 몰려들었다. 아내는 어린 시절에 한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며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기에 분주했다. 서울서, 부산서 온 동기들도 있다고 했다. 서로 손을 잡고 흔들며 웃음꽃을 피웠다. 식장 안에서는 멋쟁이 신랑과 예쁜 신부의 혼인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식이 끝나기도 전에 하객들은 연회장으로 옮겨갔다.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좀 나누어야 할 것 같은데, 당신은 어쩔래요?"

"내 걱정은 말고, 마음껏 노라고."

나는 한껏 아내에게 인심을 썼다.

아내가 한 무리의 친구들과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요기를 마치고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아내가 친구들과 노는 동안 나는 뭘 한다?'

모처럼 온 안동의 이곳저곳을 살펴 보리라며 걷는데, 문득 지갑 속에 문화상품권 몇 장이 들어 있는 것이 생각났다. 옳지, 서점을 찾아 가보자. 서점은 번화가라야 있을 터, 시내 중심지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궁벽한 한촌을 살고 있는 나에게는 서점을 찾아가 책 한 권 사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즐거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내 쪽으로 가는 길은 쉽사리 나타나주지 않았다. 낙엽이 구르고 있는 도로를 거쳐 골목길을 지나고, 굴다리를 통과하여 길게 뻗은 포도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안동역이 보였다. 역이 있으면 번화가가 멀지 않을 것 같았다. 음식점들이 즐비한 도로가 나타났다. 젊은이 한 사람을 잡고 서점이 어디쯤에 있겠느냐고 물었다. 조금 더 내려 가다가 우측으로 돌아 들어가면 무슨 은행이 보이는데 그 옆에 큰 서점이 있다고 일러 주었다. 그곳은 번화가였다. 화려한 장식의 쇼윈도들은 사람들의 눈길 잡기에 바빴다. 어디에선가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차는 다니지 않고 사람들만 분주히 오가는 거리 한 가운데의 벤치에는 친구인 듯, 연인인 듯한 젊은이들이 짝을 지어 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기도 했다. 내 사는 한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은행이 있고 서점이 보였다. 여러 곳의 커다란 서가에 온갖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는 꽤 큰 서점이었다. 학생들이 참고서를 고르고 있었다.

 

내가 책을 선택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공지영의 소설이 생각났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안동에서 발견된, 어느 미라에서 나온 '원이 엄마의 편지'의 이야기를 쓴 '능소화'라는 소설을 골랐다. '능소화'는 안동에 왔기에 생각난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쓴 글의 제목과도 같은 것이어서 벌써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것이다. 두 권의 소설을 기분 좋게 싸들고 서점을 나왔다. 그리고 우리 차가 세워져 있는 예식장 부근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버스터미널 앞을 지나고 머리 위로 차가 지나가는 지하도를 통과하여 실내체육관을 지나고, 탈춤 야외공연장을 가로질러 예식장 부근으로 왔다. 한 시간 반 이상은 족히 걸은 것 같았다. 다리가 좀 우리하긴 했지만 기분은 가벼웠다. 모처럼 도시 구경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도 살 수 있었다는 것이 즐거웠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창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놀다가,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아무 염려 말고 놀다가 오라고."

창을 조금 내려놓고 차 안에 앉았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먼저 볼까. '능소화'를 먼저 읽을까. '행복한 시간'을 읽다가 보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살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라! 살인? 이게 무슨 행복한 이야기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래? 궁금증이 더해 갔다. 수녀인 모니카 고모와 한때는 가수였기도 했고 지금은 미대 교수인 내가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어느 사형수를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가고 있었다. 이래서 어떻게 행복한 시간이 된다는 거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아내가 전화를 했다.

"이제 마치고 친구들과 헤어지고 있어요. 곧 갈게요."

"걱정 말라니까! 좀 더 있다가 와도 돼!"

아내가 돌아올 일보다 사건의 전개 과정이 더 궁금했다. 그러나 아내는 나의 그 궁금증을 갈아엎고 불쑥 나타났다.

"기다려 보니까 어때요?"

내가 이따금씩 아내를 차 안에 앉혀 두고 기다리게 했던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재미만 좋더만."

"쳇!"

공지영의 소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내는 시동을 걸어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 때 누가 무얼 어쨌다는 둥, 세월이 그리 흘러도 옛 티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둥, 누군 지금 어디서 무얼 한다는 둥 한참 수다를 떨다가, 모두들 이대로 해어질 수 있겠냐고 하데요."

"그래서?"

"아까 예식장에서 신창 씨가, 멀리서 와 준 게 고맙다며 안 받으려 해도 억지로 차비 하라며 봉투 하나 찔러 주데."

"뭐라구?"

"그걸 받아서 그대로 챙기기가 좀 민망하잖소? 그래서 친구들에게 내가 쏠 터이니 어딜 가서 노래라도 한 번 부르자고 했지."

"그래, 잘 했어!"

낮에 문 열어 놓은 노래방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문을 열어 놓은 곳이 있어 몇 곡을 신나게 부를 수 있었다고 했다. 모두들 즐겁게 잘 놀더라고 했다. 신창 씨가 준 노잣돈에 조금 더 보태어 비용을 대었더니 친구들이 무척도 고맙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서울 친구는, 서울 오면 꼭 연락하라며 신신 당부하더라는 이야기도 했다. 마누라가 친구들과 노라고 기다려 주는 걸 보니 남편은 참 마음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도 했다. 좋긴 뭘 좋아, 참 애를 많이 먹이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고도 했다.

 

달려가는 차창 앞으로 담홍색 노을이 뜨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도 발그레 물들었다.

능소화-. 4백년 전에 부친 편지 '원이 아버지에게'는 어떤 사연을 담고 있을까. 어서 가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200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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