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기

신끼 교장의 친한 - 한일 교류기.2

이청산 2006. 8. 14. 15:00

신끼 교장의 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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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기·2



신끼 히데노부(信貴秀信) 교장은 우리 학교의 자매교인 오사카 시립 칙코중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다. 그는 우리가 칙코중학교 방문을 위해 오사카에 도착하여 칸사이 공항을 나서는 순간부터 오사카를 떠날 때까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우리와 함께 했다.

지난해에 우리 학교를 방문했던 칙코중학교의 마키다 교장은 퇴임하고 신끼 교장이 새로 부임했다. 신끼 현 교장, 마키다 전 교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마키다 전 교장과 재회의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신끼 교장은 건장한 체구에 선이 굵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만남의 인사를 함께 나누는 것으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전교생이 도열하여 박수로 맞이했다. 악대부 학생들은 환영 음악을 연주했다. 홈스테이 가정 어머니들과 친구들 그리고 관계 선생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식이 열렸다. 신끼 교장은 우리 방문단을 뜨겁게 환영한다는 인사에 이어 두 학교가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우정을 이어가자고 했다. 칙코중학교와 우리 학교 사이에는 나라를 가르는 경계선도, 바다를 넘는 거리도 없다고도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홈스테이 가정과 친구를 소개하며 서로 좋은 인연을 가지라고 격려해 주었다. 환영식이 끝나고 학생들은 일본 친구를 따라 결연 가정으로 흩어졌다.

이튿날은 특별히 마련한 순서에 따라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친선교류회가 베풀어졌다. 교류회가 열리는 강당 전면에는 두 나라의 국기와 함께 '麻城中學校-언제까지나 교류를!(末永い交流お!)-築港中學校'라고 커다랗게 쓴 플래카드를 걸어 놓았다. 양교 교장과 학생 대표의 인사에 이어 전교생이 리코드로 우리 학교의 교가를 연주했다.

그리고 악대부로 하여금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연주하게도 했다. 우리를 환영하기 위한 정성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준비한 선물을 서로 교환하는 것으로 교류회를 끝냈다. 학생들에게는 학교 생활과 오사카 지역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사흘을 오사카에 머무는 동안, 낮에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교류 행사를 하고, 학생들이 홈스테이 가정으로 간 저녁에는 신끼 교장을 비롯한 몇 사람들과 만찬을 늘 함께 했다. 만찬 자리에서 신끼 교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신씨 교장의 말을 많이 들은 편이다.

신끼 교장은 한국서 온 사람들에게 대한 배려를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한국 그리고 한국인과의 인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올해 칙코중학교로 부임하기 전의 임지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 학생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기도 하고, 그가 자주 이용하는 주차장의 관리인이 한국인인데 그와 아주 친하다고도 하고, 자기 집 근처에 비디오 가게의 주인도 한국인이고 그곳에서 한국 영화를 많이 빌려 본다고도 했다. 한국인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중가요를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나훈아의 '갈무리'를 즐겨 부른다고도 했다. 신끼 교장이 나훈아와 좀 닮았다고 했더니 크게 웃었다. 한국인이 작사, 작곡하고 일본 가수가 부른 '진도 이야기'라는 노래도 좋아한다고 했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 진도 앞 바다의 물이 갈라지는 현상을 노래로 부른 것이라 했다.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에 감사 드린다고 말해 주었다.

다음 날의 만찬에서도 그의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졌다. 역사 문제를 이야기했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일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하며, 그것은 일본 국민 전체의 뜻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빠진 몇몇 위정자들의 행위일 뿐이라고 했다. 친선과 우의를 다지기 위한 자리라 서로 불편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을 먼저 화제 삼는다는 것이 조금은 뜻밖이었다. '대한민국과 일본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도, 서로 불행하고 불편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환영식에서의 나의 인사말을 의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웃사촌'이 되어 앞으로는 더욱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이어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에 대해서도 일본인들도 많은 사람이 존경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굳은 애국 신념을 가진 영웅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토요토미 히데요시 군대를 탁월한 전략으로 무찌른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며, 자기 나라의 어떤 장군보다도 더 훌륭한 장군이라고 칭송했다. 우리나라와 우리의 역사에 대해 너무 호의적인 것 같아 오히려 긴장감을 느끼게도 했다. 그는 또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대해서 일본인은 충분히 반성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을 그가 대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이해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며, 우리의 이 만남을 계기로 하여, 두 학교 나아가서는 두 나라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학생들도 그렇게 가르쳐 나가자고 다짐하였다. 

오사카의 유명 관광지 오사카성 관람이 일정 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신끼 교장에게 오사카성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조선의 침략자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기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쌓은 성이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계획에 넣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지난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다시 상기해 보는 것도 뜻 있는 일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렇게 이해해주어 고맙다며 흔쾌히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 안내도 우리를 위한 일이지만, 오사카성 관람을 일정에 넣지 않은 것도 우리를 위한 세심한 배려였던 것 같아 신끼 교장의 자상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을 떠나기 전날 밤, 마지막 만찬을 함께 가졌다. 식사와 함께 노래를 같이 부를 수 있는 자리가 베풀어졌다. 그는 작정한 듯, 나훈아의 '갈무리'를 우리말로 부르고, 일본 여가수 텐도요시미(天童よしみ)가 부른 우리나라 진도를 노래한 '진도 이야기(珍島物語)'라는 노래를 일본어로 불렀다. 통역에게 자막의 내용을 나에게 번역해 주라고 부탁했다.

 

海が割れるのよ 道ができるのよ. /島と島とが つながるの

こちら珍島(チンド)から あちら茅島里(モドリ)まで/ 海の神樣 カムサハムニダ

靈登(ヨンドン)サリの 願いはひとつ/ 散り散りになった 家族の出會い

ねえ わたしここで 祈っているの/ あなたとの 愛よ ふたたびと(下略)

 

바다가 갈라지네요. 길이 생기네요./ 섬과 섬이 이어지네요.

이 곳 진도(珍島)에서 저 건너 모도리(茅島里)까지/ 바다의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영등(靈登)살*의 소원은 단 하나/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과의 만남.

네, 나는 이곳에서 기도하고 있어요./ 당신과의 사랑, 다시 이루어지기를.(하략)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져 길이 열렸을 때를 영(靈)이 승천했을 때로 생각하여 이를 '영등(靈登)살'이라 함.
                                                                                                                  -노래 듣기-

 

이 노래 때문에 우리나라의 진도가 일본인들에게 아주 유명하게 되어 모두들 가보고 싶어한다고 했다. 진도의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처럼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닷물도 갈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사카의 일정이 모두 끝나고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공항에 까지 배웅을 나온 신끼 교장과 내년엔 우리나라에서 만나자며 악수와 포옹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모든 것을 다 털어 내던 신끼 교장의 친한(親韓)-. 그 의미가 무엇일까, 무엇을 남기려 했을까.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라 부르며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위정자들의 행위는 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무튼 그의 그러한 말과 생각은 일본과 우리나라, 칙코중학교와 우리 학교,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한층 가까이 느껴지게 했다.

동해, 그 바다의 파도가 한결 잔잔하고 푸르게 느껴졌다.♣(2006.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