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기

오사카의 검약 -한일 교류기.3

이청산 2006. 8. 14. 14:58

오사카의 검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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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기·3



오사카 시가지를 걷는다. 우리나라 어느 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과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다. 길가에 선 가로수들의 종류도, 거리를 걷는 사람의 모습도, 아파트며 빌딩들이 늘어선 풍경도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없지는 않았다.  

오사카는 맑고 깨끗했다. 거리가 잘 정돈되어 있다. 보도를 어지럽히는 입간판도 별로 보이지 않고, 상가의 간판들도 별로 난잡스럽지 않다. 무엇보다도 눈에 뜨이는 것은 차도가 그리 번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산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걸었던 거리가 번화가는 아니어서인가 했더니, 중심지의 번화가도 크게 붐비지는 않는다고 한다.

까닭이 있었다. 자가용 승용차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서서 보아도 승용차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잘 볼 수가 없다. 어쩌다 소형 승용차 한두 대가 지나갈 뿐이다. 안내자에게 일본 사람들은 자가용이 별로 없는 편이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집집마다 자가용은 다 있지만 주로 주말 나들이용이나 휴가용, 혹은 시골로 갈 때에 쓸 뿐, 평소에는 잘 이용하지 않다고 한다. 출퇴근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철(私鐵)과 지하

철이 곳곳으로 뻗쳐져 있어 생활에 별 지장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거리 곳곳에 자전거가 많이 보였다. 특히 전철 역 부근의 길가에 설치된 자전거 보관소에 많은 자전거가 서 있었다. 지하철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거리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경찰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일본 사람들이 자가용을 많이 타지 않는 것은 대중 교통 수단이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검약과 절제가 몸에 배지 않고서는 힘드는 일이다. 대중교통이 아무리 편리하게 되어 있다고 한들, 개개인의 필요를 다 충족시킬 수는 없을 터여서, 자가용보다는 불편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불편쯤은 감수하면서 생활의 절제를 지키는 그들의 태도가 높이 보인다. 골목골목 거리거리마다 자가용이 넘쳐나는, 그래서 번화가일수록 심한 교통 체증에 시달려야 하는 우리네의 사정이 돌아보게 한다.

오사카 칸사이 공항에 내리던 날, 칙코중학교의 신끼 교장을 비롯한 일본측의 마중 나온 사람들과 함께 공항 리무진을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덴보쟌 정류장에 내려 이십여 분을 함께 걸어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서 환영행사를 마친 저녁 답에 다시 삼십 분 가량을 함께 걸어 숙소를 안내 받았다. 그 걸음 덕분에 시가지 구경은 잘 했지만, 우리네 경우라면 어떻게 하든 차편을 마련하여 이동했을 것이다. 그럴 계획은 처음부터 세워져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것은 접빈에 소홀해서가 아니라,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그들의 생활 습관 때문인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칙코중학교는 아예 주차 시설이 없다.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계단이고, 계단을 걸어 오르면 현관으로 통하게 된다. 그리고 운동장 가에는 사방에 안전 펜스가 높다랗게 둘러쳐져 있기 때문에 차량은커녕 사람도 출입할 수 없다. 선생님들은 물론 어떤 사람이 와도 차를 세울 곳이 없으니 학교에는 차를 몰고 올 수가 없고, 몰고 다니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학생들은 모두 걸어 다니고 선생님들은 대부분 지하철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생활화되어 있는 일이기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마다 한 대씩 다 몰고 다닐 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차들이 학교를 들락거리면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우리네 사정과는 사뭇 다르다.

칙코중학교에는 또 신기한 게 있었다. 운동장의 모습이다. 교사(校舍)의 규모에 비해 그리 넓지 않았지만,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하고 말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체육 활동을 위한 시설물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고 평원만이 펼쳐져 있고, 운동장 주위와 교사 전면에 온통 커다란 그물을 둘러쳐 놓았다. 운동장에서 교실 쪽을 보아도 미관을 그르칠 것 같고, 교실에서 운동장을 보아도 풍경이 일그러질 것아 답답하게 보였다.

 

이내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에 운동장을 다시 보니 학생 몇 명이 핸드볼 골대를 들어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철사로 얽은 널따란 이동식 그물망 여럿을 세워 운동장을 갈라 경계 지웠다. 한 쪽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야구공을 던지거나 방망이를 휘두르며 배팅 연습을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공을 주고받으며 핸드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운동장을 넓게 쓰고자 할 때는 시설물들을 다 치웠다가, 필요하면 이동식 시설물을 설치하여 용도에 따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네 안방이 이불을 펴면 침실이 되고, 상을 차리면 식탁이 되고 책상을 놓으면 공부방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하여 좁은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 전면에 그물을 설치한 것은 날아오는 공들을 막아내기 위한 방편인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미관보다는 실용을 택한 것이다. 학교의 그러한 모습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부지불식간에 검소와 절제의 생활 태도가 몸에 밸 것임은 물론이다.

비단 오사카만이랴. 오사카의 검약(儉約)은 바로 일본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 모습이 경제 대국 일본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나, 현재의 정치적인 문제로 보면 일본은 우리가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될 나라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 일본의 검약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바람직한 생활의 자세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넘쳐나는 자동차의 홍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크고 넓고 비싼 것을 선호하는 우리의 의식은 또 무엇인가. 일본의 검약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돌아본다.♣(2006.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