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기

현해탄의 파도를 넘어 -한일 교류기.1

이청산 2006. 8. 14. 15:01

현해탄의 파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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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기·1



오사카를 떠나는 날, 아이들은 공항에서 일본 친구들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탑승장으로 들면서도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손을 흔

들었다. 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사흘 동안, 아이들은 깊은 정이 든 모양이다.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절박감이 더욱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홈스테이를 통해 한 친구와 깊은 인연을 맺기도 했지만, 학교 생활 체험 속에서 많은 친구들과도 사귀게 되었다.

사흘 밤을 함께 먹고 자며 일본 친구의 가정 생활을 체험하기도 하고, 오사카 시내를 다니며 이곳 저곳을 살펴보기도 했다. 둘째 날 밤엔 칙코중학교 인근의 '스미요시대신사'에서 열리는 '스미요시다이샤축제(住吉大神祭)'에 함께 참여하였다. 일본 학생들은 신궁에 들어가 복을 빌기도 하고,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축제 행사와  여러 가지 작품 전시장을 함께 관람하며 즐거움을 나누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모두 '유카다'라는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참여했는데, 홈스테이 가정에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입혀 주었다. 아이들의 색다른 모습이 예뻐 보였다.

학교에서는 일본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수업을 비롯해서 흥미 있는 부서를 찾아 클럽 활동도 함께 했다. 그림 그리기와 공작을 함께 하며 솜씨를 겨루기도 하고, 공을 함께 차며 힘을 겨루기도 했다. 다도(茶道) 동아리에서 실연하는 일본 전통 다도를 함께 체험하기도 했다.

전교생이 참여한 친선교류회에서 일본 교장선생님이 "언어의 차이로 의사가 통하기 어려운 면도 있겠지만, 마음과 마음의 만남과 체험의 공유를 기본으로 교류가 깊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듯이 아이들은 마음과 마음의 만남을 통해 우정을 쌓아갔다.

언어의 차이는 아이들에게 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손짓, 몸짓을 통한 신체 언어는 물론이지만 간간이 섞는 영어로도 의사는 조금씩 소통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슬기로운 의사 소통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번역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컴퓨터로 대화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일한사전, 한일사전을 펼쳐 놓고 말을 주고받았다고도 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던가,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을 헤쳐 가는 지혜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나았다. 어른들은 통역을 옆에 두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이었다. 통역이 있으면 많은 대화를 나누다가도, 통역이 없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계면쩍은 미소만으로 역경(?)을 이겨 나가려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순진한 마음은 그들 사이에 놓인 모든 장벽을 걷어내게 했다. 필담(筆談), 화담(畵談)으로 대화를 나누어도, 사전으로 컴퓨터로 이야기를 주고받아도 아이들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은 즐거운 호기심으로 깔깔거리면서, 장난도 치면서 대화를 주고받고 마음을 서로 나누었다.

어른들은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을 아이들은 체험했던 것이다. 어려움일 수도 있고, 흥미로움일 수도 있는 그들만의 대화법, 사랑법을 통하여 아이들은 마음과 마음이 더욱 가까워지고 우정도 깊어 갔다. 그리하여 헤어질 때는 석별의 안타까운 눈물을 닦아야 했다.

지금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과거사에 관한 문제는 물론, 역사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  EEZ 문제 그리고 최근의 해류 조사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선린 우호 관계에 많은 걸림돌을 가지고 있다.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에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7∼1755)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와 '서로 미워하지 말고, 싸우지 말며, 성심으로 교류하기'를 강조하며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을 주장했던 친한파 외교가다. 지난해 학생들과 함께 우리 학교를 방문했던 칙코중학교의 마키다 전 교장이 아메노모리의 그 정신은 지금도 정말로 필요하다고 강조했었다. 그 정신을 다시 새기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두 나라의 아이들이 성장하여 모두들 아메노모리 호슈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다정히 손을 잡고 마음을 함께 했던 저들의 모습처럼, 저들의 조국도 다정히 어깨를 겯고 함께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하는데 이바지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바람도 가져 본다.

일본에서의 교류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으로 돌아간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다. 눈물을 닦으며 손을 흔들던 일본 친구들도 다들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공항에 비행기가 앉으면 우리 아이들도 곧 모두들 저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현해탄의 험한 파도를 뛰어 넘어 깊게 나누었던 우정만은 오래도록, 아니 영원토록 한 곳에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그 우정으로 불행하고 불편했던 지난 일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좋은 이웃이 되어 서로 정답게 사는 나라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역군들이 되기를 다시 한번 빌어본다.♣(2006.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