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기

통역 이수정씨 -한일교류기.4

이청산 2006. 8. 14. 14:57

통역 이수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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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기·4



이수정 씨는 일본 머무는 동안 칙코중학교 측의 부탁을 받아 통역을 맡은 사람이다. 주로 신끼 교장과 나의 대화를 중개하는 역할을 많이 하였지만, 우리 일행이 오사카를 둘러볼 때는 안내인이 되어 보고 싶어하는 곳을 친절하게 안내도 해주었다.  

재일 동포라고 짐작했으나, 일본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학생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학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선생님이었다. 대학의 일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다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학교를 휴직하고 일본으로 왔다는 것이다. 일본서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한국인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매우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열심히 사는' 모습은 통역 활동 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정성스럽게 듣고, 정확하게 옮기기를 애썼다. 가능하면 적확하고도 알아듣기 쉬운 어휘를 찾기 위해 애쓰는 것은 물론, 말하는 사람의 의도나 분위기 같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밝은 얼굴과 고운 미소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온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대화의 내용을 차근차근 옮겨 나가는 모습이 미쁘고도 아름답게 보였다.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매우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을 것 같았다.

오사카 성을 비롯한 고적지이며 시가지 여러 곳을 둘러 볼 때는 통역인만이 아니라 성실한 안내자가 되어 한 가지 정보라도 더 일러 주려고 애썼다. 직업 가이드도 아니요, 통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일본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며 지역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일본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자 한데서 얻은 지식이요, 정보일 것 같았다. 해외를 여행하다가 보면 직업 가이드의 상업적 자세에 실망이나 부담을 느낄 때가 많은데, 이수정 씨에게서는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수고를 많이 시키는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니, 통역과 안내의 과정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며, 살아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일본을 떠나기 전 날, 마지막 만찬 자리의 통역으로 이수정 씨의 임무가 끝났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러나 이수정 씨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칙코중학교와 나흘 간의 교류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많은 시간을 함께 움직이다 보니 카메라 속에는 이수정 씨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다.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주었다. 우리나라 웹사이트에 아이디를 두고 있었다. 칙코중학교 교장선생님에게 환대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우리 글로 써서 그에게 보내며, 번역하여 교장선생님에게 보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녀가 보내온 답신의 제목은 '네 알겠습니다~! ^^ '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일본어 실력이 많이 부족하니 팀 티칭을 함께 하는 교포 한국어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잘 써서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겸손한 자세와 고운 마음씨가 피부에 와 닿는 듯했다. 하루가 지난 뒤에 편지를 잘 보냈다며 알려 왔다. 쉽지 않은 부탁을 기꺼이 들어 주어 고맙다고 하며,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는 감사의 답신을 보내 주었다.

다시 보내온 이수정 씨의 메일은 다시 한번 감동에 젖게 했다. "번역을 하거나 통역을 하는 일은 저에게도 공부가 많이 되는 일이라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할 일입니다. 이번에도 그 편지를 번역하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역시 아무리 공부해도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성실한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껴졌다.

"일본에서의 과정을 잘 마치시고 우리나라에 어서 돌아 오셔서 우리의 교육 발전을 위해 기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선생님과 같은 분이 우리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실 때, 우리 교육의 미래는 한층 밝으리라 생각합니다."라는 답신을 보내 주었다.

그 며칠 뒤 이수정 씨는 칙코중학교 교장선생님의 편지를 나에게 보내 왔다. 나처럼 이수정씨에게 번역을 부탁했던 모양이다. 신끼 교장은 "저에게 여러분들과의 교류는 제가 마성중학교의 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매우 즐거운 시간이 되게 했습니다."라고 했다. 칙코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우리와 한마음이 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이수정 씨의 성심 어린 통역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이수정 씨는 가교(架橋)였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학교와 학교를 이어주고,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었던 아름다운 다리였다. 그 다리가 두 학교 사이의 우의를 더욱 깊어지게 하고, 교류 행사를 더욱 빛나게 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동해의 높은 파도를 넘는 영원한 다리로 남았다. 이수정 씨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들도 잘 풀려 갈 수 있을 것 같다. 독도 앞 바다의 파도도 잔잔해져서 더욱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가 될 것 같다. ♣(2006.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