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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하면 어때?

이청산 2006. 6. 3. 10:34

[문화비전]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하면 어때?

조선일보

강유정 · 문학· 영화평론가)

 

입력 2006.06.02 19:03 | 수정 2006.06.02 19:03

 

가족은 한 사회의 미세한 특성을 규명하는 효과적 장치 중 하나이다. 최근 한국 문화계는 가족의 동시대적 의미를 재조명하느라 한창이다. ‘아내가 결혼했다’, ‘불량가족’, ‘연애시대’, ‘가족 연애사’, ‘가족의 탄생등 영화·소설·드라마를 통해 가족에 대한 재해석이 제출되고 있는 것이다. 주목을 끄는 것은 가족을 구성하는 관용어구인 아내, 결혼, 가족불량, 연애와 같은 이질적 수식이 부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결코 가족 제도와 공존할 수 없었던 일탈과 부정이 버젓이 가족과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제목의 도발성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박현욱의 장편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성적 계약이자 독점으로서의 결혼을 문제 삼고 있다. 박현욱의 가족에 대한 단상은 해석이라기보다 갱신이나 전복에 가깝다. 버젓이 있는 남편을 두고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한 아내는 우리가 가족의 기본 전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 조건을 무시한다. 남성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이 제안에는 독점 계약으로 성문화된 결혼에 대한 공격이 숨어 있다. 두 명의 남편, 두 명의 아빠라는 발칙한 선언은 결혼을 반칙과 태클이 가능한 게임의 룰로 변모시킨다.

 

이에 비해 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은 새로운 가족의 형태와 본질을 조형해낸다. 남동생이 자기 애인이라며 데려다 놓은 스무 살 연상의 여인과 그 누구의 핏줄도 아닌 딸로 구성된 가족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 그 모두를 비껴나간다. 그들을 가족으로 묶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뿐이다. 두 여자를 모두 엄마로 부르는 소녀의 태도는 호칭에서 비롯된 가족이라는 관습을 가볍게 뒤흔든다. 생물학적 유전자를 공유한 여성을 뜻하던 엄마가 한 개체의 인격적, 사회적 성장의 조력자로 전환되는 것이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또 다른 제안으로는 연애시대가 있다. 아이를 사산한 후 이혼한 부부의 재결합을 다루는 이 드라마는 몇 가지 점에서 선구적인 바가 있다. 하나는 이혼에 대한 현실적 사유이고, 두 번째는 결혼으로부터 분리된 사랑의 진실성에 대한 강변이다. 결혼으로 인해 휘발되었던, 그러니까 제도적 구속이 냉동시켰던 사랑의 감정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벗어나자 다시 충만해진다. 그들은 이혼 후에야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재결합한다.

 

낭만적 연애와 결혼의 결합은 18세기 이후 가속화된 도시화와 산업화의 산물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 가족의 조건이 고작 3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가족은 시대에 따라 늘 다른 형태였고 그래서 시대적 흐름의 방향을 암시해왔다. 자신의 핏줄이 아닌 아이를 받아들이는 아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딸로 키우는 두 엄마, 파기된 결혼이 매개한 사랑과 같은 대중 문화의 상상력은 우리 시대가 더 이상 전통적 인식과 관습으로 해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가족 형태를 제공함으로써 가족의 외연을 넓히는 이 도발들은 신선하고 통찰적인 바가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면서 인간의 오래된 욕망에 대한 긍정이며, 달라진 시대상의 반영이기도 하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에 제시된 가족의 형태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제안들에는 우리 시대가 지닌 문제점의 핵심이 드러나 있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가족은 변질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우려와는 달리 건강하게 확장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가족은 인류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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