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시] 유리와 병

이청산 2006. 6. 16. 10:06

유리와 병
                            성 찬 경


유리가 병으로 있는 한 언제까지나 병이다.
인간의 수족이다.
깨져야 유리는 유리가 된다.

병은 기능이요 쓸모다.
소유의 차원이다.
값을 매겨 사고 판다.

파편은 무엇이고 그것 자체다.
쇠는 쇠요 구리는 구리요 은은 은이다.
존재의 차원이다. 무값이다.

에덴 동산이 어디뇨.
있는 것 모두가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나뒹굴면 바로 거기지.

산산조각난 것들이 창궁의 별처럼 모여들어
존임의 왕좌에서 반짝이고 있다.
빛 뿜는 파편의 삼천대천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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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읍 출생.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아이오아대학 및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문학 연구. 1956년 ‘문학예술’ 추천을 통해 등단. ‘60년대 사화집’창립 동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가톨릭문인협회 회장, 성균관대학교 영문학 교수 역임.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시집으로 ‘화형둔주곡’(1966)외 다수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원로 시인의 ‘유리와 병’은 최근 출간된 ‘문학예술’ 여름호에 발표된 시인의 근작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사물의 존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지니게 된다. 유리란 단순한 물질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리병은 ‘인간의 수족’과 같은 필요의 사물이요 요긴한 용기(容器)이다. 현대인은 일상 속에서 물질의 존재와 그 원형을 잃고 오직 사물만을 인식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갖게 됐다. 시인은 어떤 존재가 지니고 있었던 원시적이고 원천적인 원형의 실상이 곧 ‘빛 뿜는 파편의 삼천대천세계’ 임을 일러주고 있다. 李一基(시인∙‘문학예술’발행인)

[대구일보]등록일 : 2006-06-15  20:0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