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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 '권력' 이동 점점 빨라진다

이청산 2006. 6. 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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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 '권력' 이동 점점 더 빨라진다
 
[시사저널 2006-06-01 10:20]    
 
“한때 권력자로 길러졌고 권력자로 행세했던 남자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는 지나간 가부장적 권위주의 시대에 ‘권력자의 전설’을 갖고 있었으나, 이제 그 모든 화려했던 전설은 추억 속의 빛 바랜 흑백사진에 불과해졌다. 권력은 대부분 해체되었고 그는 쓸쓸하게 인간의 거울 앞으로 돌아와 누웠다.”(박범신 에세이집 <남자들, 쓸쓸하다> 중에서)

‘강한 여자, 약한 남자’ ‘여성 상위 시대’라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남발되는 것을 보면, 소설가 박범신씨 말대로 이 시대 남성의 권력은 ‘전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를 움직이는 주류는 여전히 남성이다.‘강한 여자와 약한 남자’'남녀평등’은 부분적 사실일 뿐 보편적 현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

특히 남성들이 최고 권력을 행사하던 부부관 계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시사저널>은 부부 권력의 기득권자였던 전국 만 20세 이상 기혼 남성 1천명을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해 전화 조사했다.

 

남성 66% “남편과 아내 평등하다”

 

설문 조사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부부 간 권력 이동은 현재 진행형이며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 내 의사 결정권을 놓고 볼 때 부부 간 권력 구조는 과거 남성 우위에서 부부 평등으로 바뀌는 조짐이 확연했다.‘당신의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위치는 대체로 어떤 편이냐’고 묻는 질문에 26.0%만이 ‘남편이 아내보다 우위에 있다’고 답했다. 남편과 아내가 평등한 관계라고 답한 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66.3%). ‘자녀 수나 자녀 교육에 관련된 결정을 주로 누가 하느냐’는 질문에서는 아내의 결정권(49.2%)이 남편의 결정권(21.5%)보다 높았다.

남편이 결정하는 경우는 부부가 함께 결정하는(28.1) 경우보다도 드물었다. 미디어리서치 윤정숙 과장은 “‘부부 공동’을 예문으로 제시해주지 않았는데도, ‘부부가 함께’라는 답변이 많이 나왔다.만약 부부가 함께 결정한다는 예문을 제시했다면 50~60% 이상이 부부가 함께 결정한다고 답했을 것이다.과거에 비해 부부 관계가 상당히 대등해진 것을 의미한다”라고 분석했다.

‘결혼 후 취득한 재산에 대해 아내가 부부 공동 명의를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도 거의 모든 남편(91.1%)이 아내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대답한 남성은 고작 8.6%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남편들은 ‘아내와 자신이 모든 면에서 대등하다’고 인정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듯하다. 희망하는 아내 유형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가 친구 같은 아내(37.7%)보다 현모양처(41.1%)를 더 많이 꼽았다. 아내의 경제 활동에 대해서도 여전히 보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아내의 경제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가정경제나 자아실현을 위해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고 답한 이는 25.4%에 불과했다.남편 대다수는 ‘돈을 버는 것은 좋지만 가정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39.8%), 경제 활동은 남편의 몫이다(19.1%), ‘직장 생활은 안 하더라도 재테크에는 신경 써야 한다’(14.4%)라고 답했다.


“아내와 ‘권력’ 나눈 뒤 더 행복해졌다”

 

‘곳간 열쇠’도 선뜻 내놓지 않았다. 월급통장은 아내에게 맡기지만 큰돈이 들어가는 일은 남편이 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남편 수입 통장은 누가 관리하느냐’는 질문에 대다수 남편들은 아내가 관리한다(62.7%)고 답했다.  하지만 ‘부동산 구입, 재테크, 자녀 교육 등 큰 돈이 들어가는 소비 활동에 대해서는 남편과 아내 중 누가 결정권을 갖느냐’라는 질문에 절반 이상(55.0%)이 남편 자신이라고 답했다. 아내가 가진 경우(19.8%)는 부부가 함께 결정한다(24.7%)보다 적었다.

‘가정 경제의 책임은 남편이 진다’는 생각 때문에 남편들은 돈을 잘 못 벌어줄 때 아내에게 가장 미안해한다. 아내가 원하는 남편상은 가정적인 남편(49.3%)이라고 예측하면서도 남편들은 집안일을 못 도와주거나(20.7%) 자녀에게 신경 쓰지 못할 때(17.0%)보다 돈을 잘 못 벌어줄 때(25.4%) 아내에게 가장 미안해한다. 행복가정재단 김병후 이사장(정신과 전문의)은 “머리로는 ‘부부는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다.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성장 과정에서 습득한 ‘권력자의 관성과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부부 평등 속도는 앞으로 점점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학력자와 젊은 남성일수록 ‘평등 지수’가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부부 평등이 사회적 대세여서 마지못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더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아내와 함께 권력을 나누는 적극적인 실천자들이어서 전파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인터넷 포털 다음 카페 ‘2030 부부이야기-평등부부 문화’를 운영하는 김용섭(35)·전은경(32) 씨 부부를 보자. 결혼 5년차인 이 부부에게 결혼은 ‘선택', 평등은‘필수’다. 남편은 디지털 트렌드 컨설턴트이고, 아내는 잡지사 디자이너로 일하는데, 일과 가정에서 둘은 더할 나위 없이 끈끈한 파트너이자 친구다. 각자 일할 때는 상대방을 맨 처음 만나는 고객으로 대우하며 자문을 한다. 함께 책을 펴낼 때는 동료가 된다. 김용섭씨는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도 할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싸울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

 
“배우자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가정 행복”

 

이런 생각을 공유한다면 경제권과 가사 노동을 굳이 반반씩 나누려고 용을 쓰지 않아도 된다.둘 가운데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먼저 하면 되기 때문이다.아내가 바쁠 때면 집안일은 몽땅 남편 몫이 되기도 하고, 프리랜서인 남편 수입이 들쭉날쭉할 때는 아내가 가장이 되는 식이다.

김용섭씨는 “부부가 평등해지면 남자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권력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책임이나 부담까지 아내와 나누기 때문에 어깨가 훨씬 가벼워진다. 가장으로서의 부담이 적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와 기회가 생기니 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라고 말했다.

부부 평등 교육 ‘전도사’를 자처하는 한국리더십센터 김경섭(66) 소장도 김용섭씨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김경섭 소장은 “내가 권위 있는 가장으로 군림할 때는 아내나 자식 모두 불만이 많았다. 권위만 내세우는 나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고, 똑똑한 아내와 철없는 자식들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으니 어떻게 화목할 수 있었겠는가. 또 가족 구성원이 불만스러워하는데 나 역시 행복했겠는가. 아내와 자식을 친구로 존중하면서부터 가정도 행복해지고 나도 행복해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부부가 평등하면 남편의 가정 생활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가정 생활에 얼마나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남성 열 명 중 일곱 명 이상(72.1%)이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가정 내 부부 위치로 볼 때 아내 우위(61.6%)나 남편 우위(68.8%)보다 평등한 관계(74.4%)에서 만족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부부 관계가 평등할 때 아내들이 느끼는 만족도도 높다. 일찍부터 평등한 부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자부하는 황명희씨(56·초등학교 교사)는 “가사 부담이 많더라도 내가 하는 일을 남편이 인정해주고, 가정 내에서 내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평등하다고 느낀다. 그런 생각을 안 했다면 지금까지 큰 소리 한번 안 내고 사이좋게 살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부가 평등하고 행복해지려면 무엇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갈등이 많은 부부는 아무리 대등하다고 해도 행복해지기 어렵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이런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미리 ‘예방 백신’을 맞는다. 결혼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부부 교육을 받는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한국리더십센터, 강원도 여성정책개발센터 등 여러 단체에서 시행하는 ‘결혼 아카데미’ ‘가화만사성’과 같은 부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결혼 2년차인 김현주씨(34)는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면 친구나 선배들에게 조언을 청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일방적이어서 오히려 더 갈등이 깊어지게 했다. 김씨는 결혼 생활의 정석을 배워보자는 생각에서 남편 손을 붙잡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결혼 아카데미에 참여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남편 윤준섭씨(37)는 “처음에는 여성 편향적인 교육일 것 같아 꺼렸는데 막상 들어보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남자라서 이해 못했던 아내의 생각과 행동, 또 여자라서 잘 알지 못했던 남자 이야기를 대신 들려줌으로써 부부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라고 말했다.

한국리더십센터 ‘가화만사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박명수(35)씨 역시 교육 덕을 크게 보았다. 결혼 6년차인 박명수씨는 머리 속으로는 ‘아내와 나는 평등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아내를 바꾸려고 했었다. 그러다 보니 힘은 힘대로 들고 갈등만 커졌다. 박명수씨는 “교육을 받고 나서야 아내의 행동과 생각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아내를 바꾸기보다 나를 바꿔 맞추어 주려고 한다. 아내를 내 방식대로 바꾸기 위해 설득하고 싸우는 데 쓰던 시간을 아내와 함께 운동하고 공부하는 데 쓴다. 그러다 보니 훨씬 편하고 여유로워졌다”라고 말했다.

남편을 자기 식대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아내들도 마찬가지다. 결혼 아카데미에 참여했던 한경선씨(29·고교 교사)는 전에는 남편의 행동을 자기 식대로 해석해서 혼자 화내고 서운해하곤 했다. 한경선씨는 “남편이 서운하게 굴면 ‘애정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며 가슴 속에 쌓아두곤 했다. 그러나 교육을 받고 난 뒤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으며 해결책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가정문제 상담사 우애령씨는 “행복한 가정이란 생긴 대로 있어도 좋은 집, 지쳐서도 돌아갈 수 있는 집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을 미리 그려 놓고 배우자를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자기 혼자 그린 꿈은 절대 현실이 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우애령씨는 자기가 그린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배우자를 설득하는 것보다는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배우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은 상대를 남편 또는 아내로 보기 전에 그 역시 나와 똑같은 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평등한 부부가 되고, 남편과 아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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