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에 대하여
-상사화를 보며
올해 상사화도 잎이 말라갈 겨를도 없이 무참히 잘리고 말았다. 마을 숲 풀베기하는 이들에겐 상사화 잎도 베어내야 할 한갓 잡풀에 지나지 않았다. 잎이 말라 가는 것도 상사화의 한살이치레다. 초봄에 틔운 움으로 봄내 잎을 피워내다가 봄이 무르익을 무렵부터 말라간다. 다 마른 잎은 여름이 한창일 때 제 난 자리로 스며들 듯 잦아진다.
여름이 고비 넘을 무렵 잎 잦아진 자리에 새로 난 싹이 꽃대로 솟아 그 끝에 홍자색 봉오리 분홍 꽃을 피워낸다. 잎은 꽃을, 꽃은 잎을 볼 수 없어 서로 짝사랑으로만 그리는 사이라 상사화라 했다던가. 치렁하던 잎이 말라가는 것은 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고, 싹 나기 바쁘게 솟구친 꽃대에 서둘러 꽃을 피우는 것은 잎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란 말인가.
채 마르지도 않은 잎이 모질게 잘려나가던 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치 내 그리움이 누군가에 의해 사정없이 참살된 것 같았다. 왜 나는 그리워하면 안 되는가. 누구를 그리워한들 내 심사가 아닌가. 누가 무슨 몹쓸 걸 무찌르듯 내 마음을 도려낼 수 있단 말인가. 상사화의 원성이 밤 하얗게 쟁쟁거리는 것 같았다.
한동안 마을 숲 상사화밭 지나는 길이 두려웠다. 베어진 자리를 보노라면 마음에 예초 날이 날아올 것 같았다. 그렇게 아린 날들이 하루 이틀 가고, 한 달 두 달이 갔다. 그 시간의 끝자락 한더위가 주춤거릴 무렵 뿌리그루에서 숨소리가 색색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 끔찍이 베이고도 저리 내 쉴 숨이 있다니, 비명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상사화는 뿌리에서 싹이 나면 잎 돋는 것도 이내, 꽃 피는 것도 이내다. 잠시 꽃대가 솟아 기다란 꽃술과 함께 여섯 잎 분홍 꽃을 피워낸다. 아무리 베어지고 짓밟혀도 솟음치는 그리움은 누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박탈당했던 내 그리움이 살아나는 것 같다. 이제 그리운 이를 맘껏 그리워할 수 있겠다.
꽃이 그렇게 피어나 그리운 잎을 한껏 그리다가 이승에서 못한 해후를 저승에서라도 이루리라는 듯, 빛깔도 모습도 다 사르고 스러져갔다. 올해 다시 난 잎이 예초기 벼린 칼날에 여지없이 베여도 작년처럼 잠 못 이루지는 않았다.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베어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 사랑도 다시 올 것 같았다. 다시 왔다. 처연히 남은 그루터기에서도 다시 싹이 트고 꽃대가 솟았다. 그 시절들이면 나는 세 차례 탄성을 지르지 않으면 안 된다. 매년 질러야 하는 설지 않은 탄성이지만, 언제라도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곤 한다. 그 탄성들은 감성과 어조가 같을 수가 없다.
첫 번째는 어제만 해도 노란 싹이었던 것이 꽃대가 되어 성큼 솟아오른 걸 보고는 경악한다. 두 번째는 꽃대 위에서 수줍던 봉오리가 하룻밤 새 일매지게 터트린 꽃은 주체할 수 없는 환희를 부른다. 세 번째는 어느 날 보면 가맣게 바래져 가는 빛으로 처연히 고개 숙이고 있는 모습이 찌르는 듯한 비탄에 젖게 한다.
사람에게도 저러한 사랑이 있을까. 얼마나 사무쳤으면 하루 사이에 꽃대가 그리 성큼 솟고, 솟구치기 바쁘게 타오르듯 연정 활짝 피워내더니,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곤혹했는지 화사한 빛과 모습을 저리 쉬 묻어버릴까. 경악하고 환희하고 비탄하는, 그런 탄성의 시절들이 그립다. 그 애틋한 내력이 사무친다.
오늘도 상사화를 만나러 간다. 상사화는 지금 열매 아닌 열매를 무슨 맺힌 한처럼 매단 채 꽃은 이울고 있다. 상사화 앞에 서면 그래도 아늑한 꿈이 있고 포근한 사랑도 있지만, 마침내는 마르고 시들어가야 하는 애끓는 그리움이 먼저 보인다. 어쩌면 나는 그 대상代償의 그리움에 끌려 상사화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허망하다. 저 상사화가 무얼 사랑할 수 있고, 누굴 그리워할 수 있단 말인가. 쇼펜하우어가 말했다던가. “사물 자체는 절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물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영향을 받을 뿐이다.”라고. 저 무심한 것을 두고 나만 속앓이하고 있다는 말인가. 상사화의 그리움이란, 그를 향해 질렀던 탄성이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상사화는 또 어디에 있는가. 내 눈만 감으면 상사화도 없고, 이 세상도 없다. 눈을 뜬들 무엇이 상사화의 제 모습인가. 치렁치렁 솟는 잎이, 형체도 없이 잦아드는 마른 잎이 상사화인가. 다시 솟는 싹이며 꽃대가, 그 꽃대에서 피어난 어여쁜 꽃이 상사화인가, 몰골도 처연히 사그라져 가는 게 상사화인가.
그렇구나,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구나.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진리)를 보리라.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금강경 제5장)" 형상이 아닌 형상을 내가 붙잡고 있었구나. 형상을 움켜쥐면 집착이 되고, 집착은 또 괴로움이 된다 한다.
모르겠다. 괴로움과 그리움은 무엇이 다른가. 괴로움이 그리움으로 화하는 듯도 하고, 그리움이 괴로움으로 변하는 듯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2026.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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