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이 일 배 고작 나흘을 머물다 갔다. 올 때도 무슨 혁명을 하듯 불같이 와락 솟더니 실패한 혁명군이 사라지듯 순식간에 가버렸다. 허무하다. 모든 이목을 뒤집을 듯 이 강둑 현란하게 밝힐 땐 언젠데, 이리 속절없이 가버린단 말인가. 아침마다 걷는 강둑을 향해 나선다. 지난밤 빗방울이 좀 듣기라도 했는가. 구름이 좀 짙게 드리워지긴 했지만, 엊그저께 피어난 꽃이라 오늘도 찬란하겠지. 한 열흘은 못 버티려고-. 강둑이 가까워진다. 아, 이게 무슨 변고인가. 그 찬연한 꽃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가. 십여 년 전 이월 이십육일, 생애의 한 막을 내린 봇짐을 지고 이 마을을 찾아왔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둘러싸인 곳에 삼십여 호가 사는 고요한 마을이다. 그 고요에 잠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