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10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이 일 배 고작 나흘을 머물다 갔다. 올 때도 무슨 혁명을 하듯 불같이 와락 솟더니 실패한 혁명군이 사라지듯 순식간에 가버렸다. 허무하다. 모든 이목을 뒤집을 듯 이 강둑 현란하게 밝힐 땐 언젠데, 이리 속절없이 가버린단 말인가. 아침마다 걷는 강둑을 향해 나선다. 지난밤 빗방울이 좀 듣기라도 했는가. 구름이 좀 짙게 드리워지긴 했지만, 엊그저께 피어난 꽃이라 오늘도 찬란하겠지. 한 열흘은 못 버티려고-. 강둑이 가까워진다. 아, 이게 무슨 변고인가. 그 찬연한 꽃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가. 십여 년 전 이월 이십육일, 생애의 한 막을 내린 봇짐을 지고 이 마을을 찾아왔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둘러싸인 곳에 삼십여 호가 사는 고요한 마을이다. 그 고요에 잠겨 ..

청우헌수필 2022.04.21

늙기 싫으세요?

늙기 싫으세요? 이 일 배 오늘도 벚나무 줄지어 선 아침 강둑 산책길을 나선다. 아니, 이 무슨 변란인가! 다른 길, 딴 세상을 걷는 것 같다.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아침마다 걷는 길이건만 오늘은 전혀 다른 길이 되어 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줍어 수줍어하며 몽우리 속에서 꼬물꼬물 옥이고만 있던 꽃잎이 한꺼번에 현란하게 터져 별천지를 이루었다. 이 꽃들이 일시에 봉오리를 터뜨리는 순간에는 무슨 기총소사라도 하듯 요란한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을 것 같다. 어라, 이 나무 좀 보게! 온몸에 꽃 이리 화사하고 해사하게 피워놓고 제 몸뚱이는 왜 이 모양인가. 둥치는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불을 뿜다가 버려져 검게 녹슬고 터진 포열 같기도 하고, 껍질은 이곳저곳이 갈라지고 거칠어진 늙은 농군의 ..

청우헌수필 202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