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기를 쓰는 까닭
아침에 일어나면 물 마시고 체조하고 변 보고 세수하고, 무엇이든 잠시 글줄을 읽다가 컴퓨터를 연다. 일기장을 불러 ‘몇 시에 누워 무얼 하다가 언제 눈을 감았다.’로 시작하여 소변은 언제 언제 보고, 그렇게 깨고 자고 하는 사이에 무슨 꿈결이 흘러가고, 몇 시에 일어났다며 밤을 정리한다. 그 속에 변비로 어려움을 겪는 배변 정황도 그려 둔다.
이어서 홀로 사는 생활을 도와주는 분이 와서 정성으로 차린 아침 밥상을 함께 마주하는 정경을 적는다. 식후 운동을 겸한 산책으로부터 계속 이어지는 일과를 한 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빠뜨리지 않기를 애쓴다. 가치의 유무는 내 관심 밖이다. 그러다 보니 내 일기장은 매일 같은 말이며 일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온종일 일기장과 함께 지낸다.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마치 실황 중계라도 하듯이 그때그때의 일들을 순행 구성으로 엮어나간다. 굳이 전래의 역사 서술 방법을 빌려 말한다면, 기전체나 기사본말체가 아닌 편년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내 일기 속에는 역사적인 사실이 될 만한 건 없다.
누구의 무슨 일기처럼 깊은 사색을 담은 명상록도 아니고, 누굴 그리워하여 절절한 연심을 풀어내는 고백서도 아니고, 읽은 걸 챙겨두는 독서록도 아니고, 무얼 골똘히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세심히 기록해 나가는 관찰기도 아니고, 시대의 격변기를 겪으며 쓰는 역사적 증언은 더욱 아니다. 오직 일상적인 사건과 줄거리만으로 행을 채울 뿐이다.

사건이라 하지만 별 게 아니다. 어떤 밥 먹고, 무슨 약 먹고, 어디 산책하는 사소한 일은 물론, 누구한테 무슨 전화나 메시지 받고, 나는 무어라 답해주고, 무슨 책이나 글에서 무얼 읽다가, 혹은 어떤 것을 보고 듣다가 무엇이 떠오르고 느껴져, 어떤 글을 쓰기 시작해서 어디까지 썼다고 하는 등의 일들일 뿐이다.
그런 일상을 벗어나 누구를 어디서 만나 무엇을 마시며 무슨 담화를 나누었다면 사건이 될 수 있고, 어디 먼 길 여행이라도 다녀온다면 큰 사건이 될 수도 있고, 몸 어디가 좋지 않아 병원에라도 간다면 그것도 사건이고, 진단받는 병 종류에 따라 아주 큰 사건도 되어 내 일기장의 긴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런 일들을 치르고 겪어낼 때마다 틈틈이 컴퓨터를 연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으면 일과 일 사이에는 언제나 모니터 앞에 앉는다, 길을 나설 때도 가방이나 배낭에는 노트북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게 없으면 중독된 무엇을 억지로 끊었을 때 나타나는 금단 증세나 공황 장애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애써 나를 거쳐 간 일들을 적으려 해도 돌아보면 빠뜨린 일들이 나타나 나중에 끼워 적기도 한다. 컴퓨터 글은 쉽게 끼워 넣을 수 있는 게 편리하다. 어떤 일은 빠뜨린 줄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오랜 뒤에 떠올라 일기장을 열어보니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기억도 희미할 때, 귀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에 젖기도 한다.

내가 이토록 일기에 마음을 바치는 까닭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고, 또 하나는 나를 쏟아내기 위해서다. 돌아보면 일도 탈도 많았던 젊은 날에는 나를 쏟아내는 것으로 일기장을 많이 메꾸었고, 저물어가는 황혼 나그네가 된 지금은 나를 붙잡는 일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 같다. 일기를 쓰면서 얻어지는 문장 수련은 덤이다.
누군들 삶에 희로애락이 없을까만, 내 살아온 세월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무상한 삶의 회비, 고락 속에서, 보람과 자랑을 새길 때도 있었지만 치심과 낭패로 속을 끓이기도 했다. 따뜻한 날도 있었지만 외로움에 떨던 날도 없지 않았다. 화목을 보듬을 때도 있었지만 불화 속의 세월도 치러야 했다. 이러할 때 일기장은 누구보다 정겨운 통화자였다.
자식이며 친구며 주위 사람들이 나의 바람과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서운하고 속도 상할 때가 왜 없겠는가. 그럴 때도 내 모습을 일기장에 쏟아 놓고 나면,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을 보는 듯하여 나를 고쳐 볼 수 있게도 해준다. 일기장은 세상의 어떤 거울보다 내 모습 밝고 맑게 비추어주는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을 흘리다 보니, 가끔씩 내 모습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어디를 걷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 속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존재의 기억이 건사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일기장은 내 삶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외로움과도 아늑한 화해를 불러주기도 한다.
어느 시인은 존재의 기억을 붙들기 위해 세계의 강 이름, 산 이름을 외기도 했었다지만, 그리 안 해도 내 행적을 또박또박 적어 가는 순간만큼은 내 존재를 확실히 붙잡아 준다. 하기야, 지금 내가 이 세상을 비켜선들 어떠하랴. 삶에도 죽음에도 미련 갖지 않아도 될 만한 세월을 안고 있지 않은가. 다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 생각 내가 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일기를 쓴다. 돌려세울 수 없는 그 까닭을 위하여-. ♣(2026.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