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병 일기(9)
-성공의 조건
오늘 치료는 성공했다. 관장 상태도 적절하고 내장된 소변량도 적정하여 치료가 잘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양성자가 목표 위치에 잘 도달하여 제 에너지를 병소에 집중적으로 발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무슨 어려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듯한 안도감이 몸을 녹게 했다.
어제는 실패했었다. 첫 번째 양성자 치료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해주는 자세대로 꼼짝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다가 잠깐 떠보니 원통형 방의 천장이 두 갈래가 져 서로 엇바뀌며 돌고 있고, 내려다보는 기계는 나를 덮을 듯 내려오다 올라가고 했다.
첫 치료 때 소음으로 들렸던 소리들은 천장이 움직이는 소리였던 것 같다. 다시 눈을 감고 치료가 잘되고 있는 상상에 젖었다. 소리가 멎더니 일어나라 했다. 관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치료할 수 없었다며, 약을 받아 관장을 다시 하고 오라 했다. 아득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약을 투입하고 용을 써서 어렵게 관장하고 왔는데,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내 체질은 관장이 왜 그리 어려운 걸까. 약국에서 받아 온 약으로 다시 관장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자세를 잡고 막 투약하려던 순간이었다.
화장실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약을 넣으셨습니까? 아직 안 넣으셨으면 그냥 나오십시오.”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문을 진동시켰다. 내렸던 옷을 고쳐 입고 화장실을 서둘러 나왔다. 치료 기계에 이상이 생겼다며 좀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 했다.
간호사가 치료실과 대기실 사이를 분주히 오가더니 기계가 정상화되려면 5, 6시간 걸려야 할 것 같은데, 그마저도 치료를 재개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했다. 다시 아득했다. 이런 머피의 법칙이 또 있는가. 밤을 사이에 두고 3시간여 길을 다시 어찌 왕복한단 말인가.
양성자 치료 기기는 약 백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각 부품이 최적의 조건에서 작동해야 한다 했다. 온도, 습도 등의 기후 변화에도 민감하게 달라질 수 있어서 상황에 따라 치료가 지연되거나 연기될 수 있으며, 당일 치료를 못 할 수도 있다 했다.
당일 치료를 못 하는 그 상황에 내가 딱 걸리고 말았다. 어디를 보니 어떤 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물리적, 심리적·행동적, 관계적, 환경적 조건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져야 한다 했지만, 양성자 치료의 성공 조건은 딱 두 가지, 관장 상태와 기기의 정상 작동인 것 같다.
하릴없이 집으로 가는 차를 타야 했다. 내일 관장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오늘 밤 어떤 공을 들여야 하며, 내일 아침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차를 달리는 내내 떠나지 않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스트레스로 변해 가는 듯했다.
집에 이르러 배변에 도움이 될 만한 음식이며 약을 찾아 먹기에 애를 썼다. 불안한 아침을 맞이했다. 차 탈 시간을 앞에 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관장을 했다. 기기 관리는 병원의 몫이지만, 관장은 순전히 나의 일이다. 병원도 그 민감한 기기 관리를 잘하려 애쓰고 있을 것이다.
정성스럽게 투약하고 약이 돌기를 기다려 배변을 시도했다. 속이 어느 정도 비워지는 것 같았지만, 걱정이 떠나지 않은 탓인지 그리 시원스럽지를 않은 것 같았다. 그런 기분으로 차를 달려 병원에 이르렀다. 차례를 기다려 치료대에 누웠다. 천장이 돌아가면서 시간이 흘렀다.
“치료가 끝났습니다. 일어나십시오.” 그다음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치료 잘 되었습니다. 다음에 오실 때도 오늘처럼 하고 오십시오,” 치료사가 미소를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치료실의 둥근 천장이 솜뭉치처럼 부드럽게 보였다.
하루건너 또 치료대에 누워야 한다. 어디에서 말해주던 성공의 조건 중에서 심리적·행동적 조건의 충족을 위해서 회복 탄력성이 필요하다 했다. 과정에서 만나는 실패나 난관을 학습의 계기로 삼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마조마하게 치렀던 세 번째 치료도 무사히 끝났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기계가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두 번의 치료가 더 남았지만, 역시 몸속의 모든 환경을 잘 조성해 가며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난병의 치유를 쉽지 않은 치료에 걸고 있는 만큼, 치료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내가 해야 할 노력도 게을리할 수 없는 일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한 시를 살아도 평화로운 마음과 몸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오늘은 아들과 딸 대학생 손녀까지 나와서 나의 성공적인 치료를 반겼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 요리를 맛있게 하는 집으로 가서 금식 후의 늦은 오찬을 정겹게 함께 나누었다. 집으로 가는 차를 타고 가서 내리면, 내 난병을 함께 아려해 주는 정다운 이가 마중을 나오겠다 했다.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따뜻한 성공의 조건을 그리며 집을 향해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간다. 내일은 더욱 최선을 다해 볼 일이다. 삶의 그리운 평화를 위하여-. ♣ (202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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