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병 일기(5)
-왜 내 몸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걸까.
병원 양성자치료센터를 찾아갔다. 의사가 내 병에는 수술, 약물치료. 방사선 치료가 있다고 하면서 수술은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사와 투약 치료는 이미 시작했고, 방사선 치료에 관해 상담하고 예약하기 위해서다. 치료센터는 병원 본관과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치료 기관은 전국에서도 몇 곳 안 된다 했다.

차례를 기다려 아들과 함께 의사 옆에 앉았다. 의사는 화면에 뜬 자료를 보면서 말했다.
“전이 된 곳은 없어서 국소 치료만 하면 될 것 같군요. 지난번 주사가 효력을 발휘할 때를 기다렸다가 격일로 다섯 번 정도 치료해 봅시다.”
지난번 내가 맞은 것은 병소 세포의 먹이 공급을 차단해서 굶겨 죽이거나 자라지 못하게 하는 주사였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날을 잡아 생분해성 물질 주입 시술을 해야 하고, 또 한 번 나와서 모의 치료 CT와 MRI를 해야 한다 했다. 그 일정은 담당자와 잡으면 된다 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들은 다 이해를 한 듯 의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보다 양성자 치료가 어떻습니까?”
양성자 치료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의사가 말했다.
“……양성자 치료라고 해서 그 세포를 더 잘 죽이거나 완치율이 월등히 높은 것은 아니지만, 환부 주변 정상 장기의 손상을 최소화하여 장기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유리합니다. 그런데 양성자는 비급여라서 치료비가 아주 비쌉니다.”
“효과가 비슷하다면 방사선 치료로……”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들이 받았다.
“아닙니다. 양성자 치료로 하지요.” 내가 말을 받으려 하자 아들은 내 말을 막았다.
“그러면 이제 나가셔서 일정을 잡고 처방을 받으시면 됩니다.” 진료실을 나와 예약 담당실로 갔다. 담당자가 보호자 의자까지 챙겨 주며 앉으시라 했다.
“시술은 한 달 후에, 양성자 치료는 그다음 달로 하지요.” 하면서 치료 스케줄을 말했다. 달력을 보여주면서 “생분해성 물질 주입술은 이날 하고요, 열흘쯤 뒤에 모의 치료 CT와 MRI를 해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그 준비 과정이며 그 일정을 붉은 밑줄을 쳐 가며 상세하게 안내했다. 그다음 달에 받을 양성자 치료에 대해서도 일정과 치료 방법, 비용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채혈하고 가라는 말을 들으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고 나오는데, 나는 무슨 외계에서 나온 듯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거냐고 아들에게 물으니, 대기실 의자에 좀 앉아보라 하고는 내가 받을 치료에 관해 손으로 모양을 잡으며 설명해 나갔다.
환부에 강한 빛을 쬐면 곁에 있는 장기까지 영향받게 되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했다. 시술은 환부와 그 장기 사이에 약 1cm 정도 임시 공간을 띄워주는 것이라 했다. 나중에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분해되어 사라지는 인체에 무해한 생분해성 물질을 주입하여 그렇게 한다 했다. 그 물질은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그 자리에 남아 방패 역할을 하다가 모두 끝나면 몸속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소변으로 안전하게 배출된단다. 모의 치료 과정은 실제 치료 설계를 위해 실제 치료와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시행해보는 작업으로, 병소의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 정맥에 혈관 조영제를 주사하여 단층 촬영해서 치료에 활용한다고 했다.
아들이 의학과 관계 깊은 일을 하기에 의학 상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건 알았지만, 이런 일까지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저의 의학 상식이 이해를 빠르게 한지도 모르겠다. 아들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앞으로 받아야 할 치료와 그 과정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느낌이 잡혀 오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아득하다.
치료 과정이 어렵고 힘든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들이 짊어져야 할 짐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별 증상이 없는 지금 이대로 지내다가, 말기에 이르러 조금 고통을 받다가 가면 안 될까.
AI에게 최말기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을 물어보았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마침내는 척추 및 골반의 극심한 통증, 하반신 마비, 소변 불능으로 인한 요독증, 전신 장기 기능 부전으로 인해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했다. 무슨 지옥 세상의 아수라같이 끔찍하다. 내가 겪어야 할 고통도 끔찍하지만, 아이들은 내 그런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어차피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 병원에, 아들에게 맡긴 몸이라 여기고 있긴 하지만, 내 몸을 두고 내가 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걸까. 내 생사 문제를 내가 왜 초연히 할 수 없는 걸까. 다음 병원행을 기약하고 헤어지면서 아들에게 고작 이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너무 애쓰지 마라.” ♣(202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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